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6 괜찮니? 학생회비 예·결산

  

  지난주, 대학연구네트워크 살아남아라! 학생회!’팀은 학생회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계속 떨어져 가는 납부율, 쉽사리 못 올리고 있는 학생회비, 학생회비를 낸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어도 좋나 등 꽤나 다양한 얘기를 나눴지요.

  이번 글은 학생회비 예·결산에 관해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주어진 학생회비를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확인하는 예·결산은 학생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예·결산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모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 전 죄...송합니다.

 

세칙에 따른 회의비 집행, 그런데 사과?


학생회가 학우들의 소중한 돈을 날름했다?


  최근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회의비(식대) 지출과 관련하여 논란이 발생했고, 이에 총여학생회장이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학내에서 여성주의 운동을 했고, 실제 총여학생회 집행부를 해본 입장에서 안타까웠습니다. 총여학생회가 회의비를 지출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 안타까웠냐고요? 아니요. 세칙을 지켰음에도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회의비 지출에 대해 팩트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총여학생회는 총대의원회로부터 받은 총무 교양 자료를 토대로 회의비(식대) 항목을 확인했고, 이후 이 조항을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15000원 기준의 회의비를 총대의원장의 승인을 받아서 결제했습니다. 세칙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학우분들이 내주신 소중한 학생회비깊은 생각 없이 사용했다고 여겨졌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전 이 상황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그 중 대다수는 장학금도 못 받는)이 일하면서 밥 먹는데 돈 쓰는 거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것이 학생회비 사정에 비해 과하게 지출되었거나, 정당하지 않은 사유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학생회 사업을 굴리면서 사업에 동원되는 인원 밥 먹이는 건 분명 중요한 지출이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 인당 5000원의 밥도 먹이지 못하는 조합조직에 헌신열정을 기대할 순 없다고 봅니다.


학생회비로 신나게 물놀이~ 땅땅땅! 통과~


아무리 여름철 물놀이가 좋다지만...!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는 집행부 회의비(식대) 지출로 인해 회장이 사과하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H대 모 학과 학생회는 학생회비로 수십만 원의 집행부 LT 물놀이(레저)비용을 지출했음에도 결산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당시 그 결산안을 심의하는 학과총회에는 전년도 학생회비를 집행한 학생회장이 휴학했다는 이유로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물놀이 비용과 출석이 문제가 되어 결산안 통과가 한번 부결되어 2차 총회(임시총회)가 공고되었음에도 출석하지 않고 카톡 등 메신저로 답변을 간접적으로(총회 의장과의 카톡) 진행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결산안이 결국 통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 학과 총회에 참석한 당사자의 말에 따르면 이 지출에 관한 질의는 크게 2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는 예산안에 전혀 없었던 항목을 집행한 것에 대한 질의였습니다. 이 질의를 한 당사자는 예산안에 따른 결산지출이 당연하다며 자신이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한 기본적인 예·결산 원칙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회에 몸을 담았던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어디 학생회가 예산대로 비용을 집행하던가요. 학생회를 1년 동안 운영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발생해서 항목에 없던 변동이 발생하는 게 부지기수지요. 갑자기 축제가 취소되어 주점수입이 사라진다거나, 학내 투쟁이 벌어진다거나...등 아무튼 첫 번째 질의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좀 더 길게 다뤄보도록 하고 두 번째 질의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질의는 집행부가 학생회비로 물놀이를 즐긴 것이 온당하냐는 질의였습니다. 해당 질의에 대해 이를 집행한 학생회장은 본인의 선거공약 중 즐거운 학생회라는 내용이 있었고, 물놀이는 이와 같은 공약을 지킨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에 더해 물놀이로 사용된 학생회비는 축제 주점을 진행하면서 예상했던 수익보다 초과해서 얻은 비용으로 진행한 것임으로 물놀이 비용의 집행으로 인해 기존 예산안에 있던 집행에 차질을 빚지 않았다고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이 물놀이 비용 집행이 통과된 가장 큰 이유는 이 공동체가 소규모 학과 공동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공동체기 때문에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이해당사자(회장단 및 집행부)와 연결되고, 이 비용처리를 안 해주면 이해당사자들이 비용을 토해내야 되는 상황에서 서로 얼굴 붉히면서 공개적으로 (비표 들어서) 반대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요. 그리고 소규모 학과 공동체다 보니 단과대학 학생회나 총학생회처럼 따로 학생회비 집행에 관한 세칙을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뭔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진 않는데, 이를 반대할만한 뚜렷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죠.

 

예산과 결산의 상관관계


무엇이 정당한 지출인가를 두고 학우들과 함께 하는 고민과 

학생회 나름의 기조와 계획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 않을까?


  뉴스를 보다 보면 국회에서 예산을 가지고 여당 야당 아웅다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추경 예산안 가지고 꽤 오랫동안 여·야간 아웅다웅 다퉜던 거로 기억합니다. 국회에서 다루는 예산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국가 세금은 예산안 그대로 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이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현 정부의 웃픈 현실 때문이었죠.

  그런데 학생회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초 제출했던 예산과는 다르게 집행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학생회에게 예산안대로 집행하기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학생회들이 예상 수입에 학생회비뿐만 아니라 축제주점 수익, 스폰 수입, 광고 수입 등을 잡고 있어서 수입 자체에 변동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축제주점 수익이 중요한 과학생회 단위의 경우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축제가 취소되자 그해 학생회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출도 변동이 큰 편입니다. 이건 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학생회의 경우 갑자기 학내투쟁이 생긴다거나 하는 변수가 많았다 보니 학생회 관계자들에게 폭넓은 융통성을 허용해주는 편이죠. 이런 이유로 학교별로 다를 수 있으나 대부분의 학생회는 따로 추가경정 예산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기존 예산안과 다른 학생회비 집행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학생회비 운용은 예산안 편성의 필요성마저 무너뜨립니다. 저는 학생회비 예산안은 그 학생회가 어떤 기조를 가지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확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생회에서 과내 여성주의 모임에 지원금을 주거나 관련 사업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해당 학생회가 현존하는 성폭력·성차별에 대해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확인이 되겠지요. 아쉽지만 오늘날 학생회 예산안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함께 처리하는 단위들도 많아졌다고 하네요.

 

학생회비 집행, 심사?

  대부분의 회사는 공금사용을 위해 비용처리지침을 만듭니다. 해당 지침에 따라서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사비로 지출한 비용을 환급해주죠. 그런데 학생회는 어떤가요? 위에 언급한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사례처럼 세칙대로 처리했는데도 사과를 해야 하기도 하고, H대 모 학과 학생회처럼 아예 세칙이 없기도 합니다.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학생회비 집행의 가장 큰 기준은 역시 여론입니다. 전학대회 등 결산안을 심의하는 기구에서 결산안을 통과만 시켜주면 장땡인 것이 대부분 학생회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지난주 어느 분께서 저희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글을 공유하며 공금을 물품을 구매하면 사용 목적, 구매 이유, 구매 과정, 자료 조사 내용 등을 캐묻는 게 맞는 것이지만 실제론 이게 뭔가요?” 정도가 질문이 끝이라며 이것으로 학생회비에 대한 검토는 끝이라고 학생회비 집행의 현주소를 지적해주셨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경험한 6번의 전학대회는 대부분 오후 7시경에 시작해 막차 끊기기 전에 끝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회의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일한 안건에 대해 동일인의 발언 기회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회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회의의 진행상, 회의가 너무 길어지면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의사진행결의안건을 실었음. 안건당 4, 재질의는 2회로한다는 전학대회 의장의 발언이 그대로 전학대회 회의록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회비 결산에 대한 심도 있는 질의 및 고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조금 더 깐깐해집시다


예·결산의 남용(견제의 부족)과 학우들의 관심 하락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

예결산을 꼼꼼히 따지고 검토하는 학생회 제도가 절실하다.


  학생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죄스러운 제안이지만, 우리의 학생회비를 위해선 결국 조금 더 깐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영역이지만 적어도 돈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으니까요. 학생회비 집행에 관한 규정(세칙 등)은 꼭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전학대회처럼 한 학기에 한번 딱 결산안을 두둥! 공개하는 것보다는 격주 또는 매달 한 번 온-오프라인으로 결산을 공개하고 관련된 질의를 수시로 받는 것이 필요하겠죠. 더 나아가 일정 비용 이상을 지출할 때는 앞서 언급한 사용 목적, 구매 이유, 구매 과정, 자료 조사 내용 등을 공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예·결산안을 전학대회 1~2주 전부터 공개해서 대의원들에게 충분히 심의를 위한 사전 준비 기간을 둘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1~2주 중에 사전에 질의를 받고 미리미리 답변을 공개한다면 회의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심도 있는 심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어떠한 시도도 학우들의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미리미리 공개해도 안 보면 끝이거든요. 앞 문단에서 제가 한 여러 제안 모두 학우들이 내는 학생회비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전작업들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 지난하겠지만 우리가 학생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과정을 포기할 순 없겠지요.

 

마치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지난 십수년간 지속해온 학생회비 예·결산에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분명 어디선가는 시도했을테고 또 실패했을텐데, 내가 뭐 얼마나 뛰어나다고 뚝딱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글을 과감히 업로드하는 이유는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회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만 늘어나고, 학생회장하면 차 한 대는 뽑는다는 구시대적 색안경이 다시금 출몰하는 이 시점에 무언가를 제안하고 싶었답니다. 우린 알잖아요. 학생회가 얼마나 고생인지, 그 헌신과 열정이, 그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떠나지만 부디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학생회를.

 

+ 번외로 학생회비 횡령이나 사기(보이스피싱) 같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이 얘기를 하다보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서... 추후 기회가 된다면 얘기해보겠습니다.


by 미네노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5 학생회비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들

 

  학생회의 성격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지향해야하는가에 관하여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에 이르러 학생회가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속하는 학생으로 구성된 조합으로 주로 기능하며, 또한 시대의 변화나 역량의 한계로 말미암아 조합으로서의 역할이라도 충실히 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오늘은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여 학생회비에 관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합니다.


학생회비 납부는 의무인가 자율인가


모든 학생들아! 부탁한다!! 제발 부탁이니 학생회비를 납부해줘!!


  조합으로서의 학생회는 학생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을 하게 됩니다. 사업은 새터나 MT 같은 내부 조직 및 교육일 수도 있고, 야식과 같은 내부 공제일 수도 있으며, 대학당국이나 정부를 상대로 학생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조합의 사업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조합의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조합이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대내적으로는 조합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조합은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하는 것이 옳습니다.[각주:1] 따라서 학생회비 납부는 학생회원의 정치적 의무입니다. 만약 회비를 내지 않는다면 학생회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 급부로 학생회에서 임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이나 사업의 수혜권 등 회원으로서의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할 의무도 없어집니다. 극단적으로는 학생회의 내부규정에 따라서 제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닙니다.[각주:2]

  반면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나오는 학생회비 고지서에는 학생회비 납부가 자율이라고 쓰여있으며, 어떤 선배들은 학생회비를 반드시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종종 말합니다. 대학당국이 학생회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서 또는 선배들이 학생회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검토해봅시다.

  조합이 조합원을 상대로 조합비의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둘 중 어느 하나를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는 조합원이 자신의 명시적인 의사로서 조합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조합원과 조합이 권리의무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방은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법에 따라서 조합으로의 가입이 아예 의무화되는 것입니다.[각주:3]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회는 의무가입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각주:4]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입학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히 그 대학이나 학과의 학생회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가법은 학생회 의무가입제도를 규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학생회는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강제적인 방식으로―직접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납자 명단을 제한 없이 공개하는 등의 간접적인 위력 행사도 포함합니다―회비를 징수한다면 오히려 현행 형법상 강요나 공갈의 죄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생회비 납부가 정치적으로는 분명 의무이면서도 국가법적으로는 자율이게 되는 근본적인 까닭입니다.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면, 간부는 어떻게 해야하나


"학생회비 납부 좀..." "나한테 돈 맡겨놨어요?" "...."


  이제 학생회 간부의 입장에서 학생회비의 납부를 극대화하거나 적어도 이를 합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학생회가 법제화되는 것이겠지만 고등교육에 관한 수 많은 제도 개혁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난망(難望)합니다. 또한 학생회가 법제화되면 권리를 보장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법적 의무와 행정적 규제가 같이 따라오게 되므로 마냥 좋아라 할 해결책은 아닙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학생회를 자율가입제로 바꾸되 가입한 학생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비를 수납하는 것인데, 언뜻 쉽고 간단해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신입생들을 상대로 매년 가입원서를 받아야 하는 행정 상의 부담이 커집니다. 더군다나 많은 학생들이 귀찮음이라든가 효용을 느끼지 못한다는 까닭의 이유로 가입을 꺼리게 되어 학생회의 규모가 축소될 수 있습니다. 학생회 규모의 축소는 운영 가능한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당국과의 대립이 있을 때 투쟁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나의 사업체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듯이 하나의 대학 또는 학과에 복수의 학생회가 설립될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물론 복수의 학생회가 적어도 조합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한다면 학생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만약 대학당국에서 특정 학생회만을 금전적·정치적으로 지원한다면―이른바 어용 학생회를 만드는 것입니다―학생사회는 자율성을 급격히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학우들이 저절로 학생회비를 납부하고 싶게끔 할 수는 없는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하란 말인가? 세 번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원론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허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회의 필요성을 학우들에게 설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설득이라 함은 학기 초마다 홍보를 많이 하는 것 외에, 학우들에게 유의미한 사업의 진행 그리고 투명한 회계 처리를 통하여 학우들의 신뢰를 얻는 것 전체를 포함합니다. 혹시 이것만으로는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 학우들이 무임승차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지 않는 학우에 대해서는 사업 참여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수준의 불이익을 부과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낮은 회비 납부율도 개선하고 “나는 학생회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라는 취지로 빗발치는 회비 환급 요청도 줄어들 것입니다.

 

학생회비,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 하나? 

  학생회비를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하는지도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합비는 조합원들에게 지우는 경제적 부담이므로 그 정도와 방법은 조합원의 의사에 기초해야합니다. 따라서 회비의 액수와 납부방법은 총회를 열든 대표자회의를 열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의결기구가 없는 경우라면 차선책으로 학우 전체를 상대로 하는 공개설문조사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원칙으로 항상 돌아가야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대나무숲 등에서 회비의 징수와 관련하여 흔히 등장하는 문제들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회비 4년치를 일시납하는 제도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국가법적으로 일시납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실무 역량이 제한적인 학생회의 입장에서는 1학년들에게만 회비 납부를 권유해도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납 제도는 1학년에게 일시적으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는 점, 또 학우들이 학생회를 향한 지지 또는 비판을 표시할 중요한 방법을 하나 없앤다는 점에서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다분합니다. 따라서 일시납 제도가 학우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우들을 분납 허용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편입학·자퇴·조기졸업 등으로 말미암아 4년을 전부 채우지 않는 학우들을 환급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시납을 한 1학년들이 4년 동안 학생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인수인계를 잘 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적당한 학생회비의 액수입니다. 학생회비의 액수를 산정하는 문제에는 참으로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기준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회원의 규모: 회원이 많을수록 집행간부나 사업의 규모도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출은 증가합니다만, 회원 증가에 따른 회비 수입 증가분이 집행간부나 사업의 확대에 따른 지출의 증가분보다 높은 경우에는 1인당 회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② 학생회비의 납부율: 회원을 납부하는 회원들이 많아질수록 1인이 부담하는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수입의 규모입니다. 대학당국의 보조금이나 제휴사업의 수입이 많을수록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대학당국과의 분규로 말미암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회비 인상 압력이 커집니다. 네 번째는 사업의 종류와 규모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체계적으로 감안하여 회비의 액수를 책정한다면 정치적 반발이 줄어들 것입니다.

 

  실은 쓰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집행간부의 인건비를 주어야 하는지, 주어야 한다면 학생회 재정 특히 학생회비 재정에서 지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다루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되거니와, 이 연재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부디 이 글이 학생회비에 관하여 고민이 많은 학생회의 간부와 일반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y 위키



  1.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회가 재정 부족으로 대학당국으로부터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지원금을 들여오기는 하지만, 교육투쟁이 있을 때 잠재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당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아쓰는데에는 본래 신중해야합니다. [본문으로]
  2. 예컨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상의 조합은 같은 법 제19조에 의하여 출자금 또는 경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을 총회의 결의에 따라 제명할 수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2조는 노동조합이 규약으로써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3. 왜 국가법적으로 보호받는 의무가입제도를 실시하려면 이를 법률로 정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결사를 형성하거나 가입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고(헌법재판소 2008. 7. 31. 결정 2006헌마666 등), 결사의 자유는 해석상 국가와 국민 뿐만 아니라 시민 간의 관계에서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국가는 스스로 국민에게 특정한 조합으로의 의무가입을 강제하거나, 어떠한 조합이 다른 시민을 상대로 가입을 강제하는 경우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의 해석상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전부 인정될 때에는 입법으로써 의무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사례가 바로 「변호사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입니다. 예컨대 「변호사법」 제7조는 변호사로 개업한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국가적 차원의 조합에 등록하도록 규정합니다. 변호사가 되는 순간 조합원의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이므로, 만약 협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관으로 변호사들에게 회비를 납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를 준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집행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2호는 특정한 노동조합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3분의 2 이상을 대표하며 미리 단체협약으로 정한 때에는 새로이 채용되는 노동자가 그 노동조합에 의무가입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4. 1980년대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민주적인 학생회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대학당국을 상대로 내부적인 교육투쟁을 전개하거나 외부적인 사회정치운동을 할 때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생긴 규정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본문으로]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4 학생회는 평화로운 임기의 꿈을 꾸는가



캐릭터 생성을 축하합니다


이제 열렙하는 일만 남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추석 연휴를 앞두면, 찬바람이 잠깐 불어오고 사람들이 옷깃을 여밀 때면, 으레 학생회실은 한산해지고 빈 공간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 생긴다. 11월에 있을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는 선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기조는 당연하게도 선본의 기반이다. 선본들이 인권, 생활복지, 교육권, 사회참여 등의 다양한 기조를 내걸고 움직이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적어도 ‘학생사회’에서는─단연 대학본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움직일지에 대한 것이다. 학생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견은 학생회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적어도 학생회가 학생들의 자치기구임은 공통적이었으며, 필연적으로 대학공간의 4주체(교원-직원-학생-본부) 중 학생과 본부는 끊임없이 아웅다웅 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이다.


아무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는 당신의 몫이다. 선거에서 당선된 당신, 캐릭터 생성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최종컨텐츠의 결말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내 맘을 들었다놨다

 

당신의 캐릭터-집행부가 좋을지 나쁠지는 당신이 선택한 길에 달렸다. 시대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좋은선택이었을 수도, 안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학생회의 대본부 노선을 크고 거칠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투쟁이라는 한 축과 협력/개량이라는 나머지 한 축이다.(그 외 어용은 단호하게 무시하도록 하자) 2000년대 비권과 반권이 대두되었을 때에서야 협력노선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역사는 해방공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47년의 국대안 정국에서부터 시작하여, 4·19의 와중에도, 군사정권과 학원자율화의 수많은 격변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때의 논의를 지금과 그대로 비교하며 맥락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반민주세력이라는 거악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역량도 한미해졌다. 수 년 동안 언급되어온 ‘학생회의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대중들은 탈정치화·파편화되었고 과거의 경험들은 실전, 활동가의 재생산도 언제나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많은 학생회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역량은 줄었고 시대의 요구는 바뀌었으니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텐데 전인미답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학교당국은 투쟁현안을 뿌려라!!


수많은 부침 속에서 ‘고맙게도’ 대학본부와 정부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반-자치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학생회를 견인한다. 국정화 교과서, 학사 엄정화, 사학비리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서 결집된 학생 주체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며 학생조직을 소생시키고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물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와해시키려 하지만, 그럴수록 학생자치와 학생조직의 몸집을 키워내기 일쑤이다. 여러 사학재단이 그런 길을 걸었다. 상지대나 동국대와 같은 곳에서 사학비리는 시대를 역행하여 기층조직을 활성화하고 학생회의 지속에 분명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와는 다르게, 대학본부가 사고─제2캠퍼스를 지으려 한다든가 학사제도를 개악한다든가─를 안 쳤을 때, 좋든 싫든 학내의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학생회는 무엇을 해야하는가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다시 말해 강제로 주어진 사명이 존재하지 않으니 스스로 개척하고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보통의 학생회는 공통의 의견을 구성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거악은 사라졌다. 모두가 염원하던 민주화는 이루어졌고 이전보다 세상은 많이 나아진 듯 하다. 또한 대학생이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보편적인 신분이 됨에 따라 이해관계도 다를뿐더러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제2캠퍼스를 짓는 게 학교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학생에게 부담이 전가될지, 페미니즘과 정체성정치에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낮은 등록금을 선택할지 좀더 부담하여 좋은 교육환경을 누릴지 등의 문제가 대표적일 것이다.


학교당국의 지원없이 무엇 하나 굴리기 힘든 복지행사 및 축제...


탈정치를 요구받는 시대의 많은 비권 학생회는 이 상황에서 학내복지 혹은 오락적 행사라는 길을 쉽게 택할 수 있다. 단과대 학생회, 총학생회의 많은 수가 간식행사, 축제, 초청강연, 시설개선 등을 공약하고 당선되어 추진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대학본부에 의존해야만 한다. 자치공간 확충, 동아리지원금, 축제 예산, 셔틀버스 운영비 등 돈은 들어가고 실무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은 한도 끝도 없는데 학생회의 재정은 튼실하기는커녕 본부의 협조없이는 징수조차 힘들고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본부와의 친밀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 아니 능력이 된다. 특히 스스로 재생산에 성공해낸 선본이라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논의들과 협력을 이어가서 쉽게 공약을 이행하곤 한다. 더욱이 단과대, 학과 단위로 내려가며 작아지면서 공약 이행의 많은 부분을 학교측에 의지하게 되며, 사실상 행정실의 부속기구화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항상 학생회의 자체적인 역량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작게는 학생회원 명부에서부터 학생회비, 공간 이용 등 절대적인 부분은 최종적으론 학교에 권한이 있다. 학생회원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고 조직하고 결집하지 않은 채로, 협력의 꿀맛에 길들여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지속되면 어느샌가 예속되어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학교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문화·복지·시설 사업이 주축이 된 학생회를 말이다. 투쟁의 과업이 주어지게 된다면, 누가 쉬이 투쟁을 위해 나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을 포기하고 언제나 대립각을 세우는 학생회가 지속적으로 학우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한다. 1) 고전적 관계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과 역량에서, 2) 극도로 다원화되고 탈정치화되고 무관심한 학생대중의 여론에서, 3) 본부와의 긴밀한 협조라는 양날의 검을 앞에 두고, 4) 담론을 재생산하고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그래서 어쩌라고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


뭔가 앞에서 거창하게 말을 했지만, 나도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랬으면 제가 회장을 했겠죠….) 다만 우리가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언급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이미 숱하게 반복된 문제들이다. 학생회 위기론은 등장한지 꽤 됐으며, 사회참여-반동-복지-교육권리-대학참정권-인권 등의 순으로 등장하는 담론들도 이미 십여 년 전에 등장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학습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기록해야 할 뿐이다. 맥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진 이유를 찾아내고, 현실에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소속 단위의 자치가 완전히 망가졌다면, 본부와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해나가며 학생회의 역량을 몇 년에 걸쳐 강화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학생자치가 활성화된 단위라면 이를 기반으로 대본부 투쟁사업을 기획할 수도 있다. 선택의 자유는 여러분의 몫이다. 그저 길들여지지만 않으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평화로운 임기를 꿈꾼다. 당신의 한 해 임기는 어떨 것인가. 단 꿈을 꿀 것인가, 현실에 있을 것인가, 꿈을 꾸되 현실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인가.


by 완도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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