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출구





김현진




































[필자 소개]


김현진

영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학내 언론사인 영대신문기자로 1년간 재직.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에 다년간 참여.

서울과 대구의 전시회에 다수 참여했으며, 경제적 독립 후 대구에서

페미니즘 공부와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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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2018/01/09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

2018/01/2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탈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심기용)

2018/01/30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의 바깥은 없다 (권영민)

2018/02/0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만들어진 2부 리그 (이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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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이번 김현진 작가의 <없는 출구>를 끝으로 <외줄산책: 탈대학>의 대학연구네트워크의 특별연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과 외줄산책에 글과 그림을 게재해주신 필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은 곧 <외줄산책: 탈대학>에 대한 서평공모 사업으로 후속 컨텐츠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이번주에 찾아갈 서평 공모 알림을 기대해주세요!




만들어진 2부 리그




이시훈

 



 

0.

지금 대학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죽어가고 있다. 대학에는 배움과 탐구, 인간 본원의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거대한 사회적 열정과 의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때 해방구이자 자유과 민주의 요람, 혁명의 산파였던 대학은 이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정되고 좋은 자리에 학생들을 내보기 위한 욕망과 생존의 문법에 포획당했다. 불안정하고 유동하는 사회에서 과거와 같이 대학의 존재는 어떤 견고한 지지판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 지금의 대학은 거대한 생존의 공간이다. 우리가 가진 전통적 관념으로 대학은 사라진 채 받아쓰기 기술자와 밤샘 기술자, 문제풀이 기술자만이 자라나는 학습소만 남았다. 대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 소명은 이제 수월성과 돈, 성과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가 알던 대학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신과 신앙의 세계에서 인간 스스로의 이성과 오성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규명하려던 중세 대학의 몰락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대학은 다시 호출된다. 그렇게 재건된 대학의 존재는 국가 체제 내에서 지배 엘리트와 중간층의 생산과 교육이라는 핵심적 역할을 소화하며 국가기구와 비슷한 제도적 지위를 가지면서도 상당한 자율성과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향유하는 특권적 제도이자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런 근대 대학의 존재는 제3세계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반독재 체제의 근거지였으며,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탈물질주의-탈권위주의, 반전 등의 운동과 새로운 문화적 양식을 낳는 산실이었다.

 

그런 빛나던 과거는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부정과 회의, 자조로 바뀌고 있다. 자기 전공에 대한 공부는 해당 전공이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보다는 취업에 더 유리한 전공 여부와 가장 기본 스펙인 학점을 위한 것이고, 그나마도 인문사회 계열은 그 학점조차도 학점 인플레’ ‘문돌이등으로 폄훼당하며 불신받고 있다. 살인적인 등록금과 생활비는 이 생활 자체를 영위하고 이어가기 위한 불안정 노동을 요구하고 강제하고 있으며, 장학금은 어느새 학문과 배움에 대한 장려가 아닌 우수 학생들을 유치/유지하기 위한 대학의 생존 전략으로 전락했다. 삶과 세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 질문과 상상이 상실된 대학에 남은 것은 거대한 먹고사니즘과 생존주의의 논리다. 학생부터 교수와 교직원, 대학 제도 전반에 서려 있는 논리는 어떤 의미로 가장 퇴락한 현실주의에 다름아니다. 이 퇴락한 현실주의는 꿈과 희망, 상상력과 열정의 안온한 보호구역이던 대학을 죽였다. 꿈과 이상은 경멸당했으며, 열정은 어느새 자본의 착취와 탈취를 포장하는 옷감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아직 대학에 남아 있는 오래된 아카데미즘의 망령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고 반발하고 저항하며 자유롭고 살아 있는 대학을 말하지만 이 죽음의 추세를 되돌리기엔 중과부적이다. 대학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향하여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죽음의 속도가 무척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사멸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의 존재는 우리에게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의 흐름은 누군가에게 지연되고 유보되는 데 비해 누군가에겐 그 죽음의 속도는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다. 마치 하나의 차원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양자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른 몇 개의 차원을 사이에 둔 듯하다. 본질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왜 죽음을 향하는 시간의 속도가 상대성을 가지는지는 분명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다. 정녕 그들은 다른 시간의 차원 속에 놓여 있는 것일까?



1.

해방 이후에서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는 군부와 학생, 그중에서도 대학생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적인 교육과 기술, 의식, 사고, 인식을 얻은 집단이었다. 대학은 민립대학 운동, 자강운동, 근대적 국민국가, 민주국가 만들기를 위한 담론과 실천의 요람이었다. 604월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연 역사의 길을 그들의 후예들은 묵묵히 걸었고, 805월을 거쳐 체제에 대한 변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급진적인 운동을 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근대적인 사고와 인식이 자라나는 뿌리였으며, 한국의 독특한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를 지탱하는 기술관료와 기업의 중간 관리자, 기술자층의 근간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이론과 담론의 수용자였고 이를 확산하는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대학생들의 역할과 실천 속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운동들이 자라났다. 만약 한국에서 대학의 존재의미와 기반이 허술했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금 우리가 겪는 시공간과 다른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대학과 그곳을 거치는 이들이 군의 근대성과 경합하며 국가와 정부, 자본과 개별 기업, 갓 자라나기 시작한 시민사회와 여러 문화, 지식 하부구조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의 역사이다.

 

대학은 이 50년의 싸움에서 군이 표상하는 질서와 근대와의 경합에서 승리했지만 최종적 승리를 획득하지 못한 채 역사의 주체에서 탈각되어버렸다. 대학은 더 이상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열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 대학생의 정체성으로 역사를 열던 이들은 다른 옷을 입고 도리어 대학을 옥죄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다움, 대학스러움은 과거 세대의 향수 속에서만 존재하며 대학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선진적이고 전위적인 하위집단을 형성하고 있지도 못한다.

 

비록 현재의 대학과 대학생이 과거처럼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대학과 대학생이라는 주체, 공간, 제도, 문화와 의식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른 의미와 내용, 맥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과 대학생을 둘러싼 관계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역학 관계와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접근은 기존의 제도 정치 중심의 접근과 차별되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2.

서울은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문에서 강력한 표준 권력을 행사하고, 이 표준에 어긋나는 것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권력을 가진 곳이다. 서울은 존엄한 곳이다. 우리는 이 서울의 존엄을 위해 서울 아닌 곳들의 일자리, 청년과 생명, 구매력을 싹 쓸어 담아 서울로 이전한다. 서울은 반짝반짝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아름답다.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림픽대로의 실황을 들으며 한강변의 야경과 그 체증을 연상하는 내 몸은, 정작 대구의 담티 고개나 부산의 대티 언덕을 넘어서고 있다. 서울은 찬란하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의 파라다이스, 21세기 하이 모던의 공간, 메트로폴리탄 그 자체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울과 지방 사이에 이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는다. 오롯이 서울을 동경하고 질투하고 사랑하며 증오하는 서울앓이를 할 뿐이다.

 

서울의 빛남과 잘남, 화려함을 설명하는 대전제는 서울이란 땅이 지정, 지경학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지만은 않으며 동시에 서울 사람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래 가장 지적으로 탁월하다든가 가장 성실하고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한강을 장악하면 한반도의 지배자가 된다고 교과서는 설파하지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입된 이런 미신과 신화, 당위를 걷어내고 서울과 지방 사이의 진짜 관계를 드러내는 역사적 단초를 찾는 일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196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는 신기한 클리셰가 숨어 있다. 이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의 핵심은 경제 성장과 공업화 단계에서 가족 전체의 풍요를 위해 누가 기회와 자원에 접근하고 누가 희생하여 이를 뒷받침하는지에 있다. 가난한 일족을 일으키기 위해 똑똑한 장남에게 모든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자원과 자산을 집중시키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그의 여형제들이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으로 가던 이런 개발 시대의 서사는 놀랍도록 서울과 지방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었다. 물론 여기서 실제 그 장남이 장녀 혹은 다른 누군가보다 명석하고 지적으로 뛰어난지는 불명이다. 가부장적 권력의 상속자로 적장자 남성이 선택받듯이 서울이 이 부()를 분배하고 배치할 권력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드라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경우는 무척 드물다. 하지만 누이들의 희생과 헌신, 양보로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맏이(그가 의사이건 변호사이건 구체적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의 부와 성공이 그의 누이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이양되고 분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집에서는 누군가의 좌절과 희생이 이에 대비되며 내부에서의 갈등을 만들었다.

 

서울 역시 그런 선택과 집중의 산물이다. 동시에 서울은 그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는 권력의 소재지였다. 한반도에 일본에서와 비슷한 근대를 구축하려 하던 식민지 총독부 권력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였을까? 이전의 왕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과 근대적인 행정 지배 체계의 중심으로 서울, 근대적인 문물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회가 가장 먼저 닿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어떤 의미였을까를 상상해보자.

 

이후 군부 권위주의 하에서도 서울은 영남권 해안 도시들과 더불어 불균등 성장 체제의 수혜자였다. 서울은 한국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본사가 소재했고, 그들이 이 압축적인 성장기에 몸을 불리는 동안 같이 살을 찌워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울 아닌 곳들, 이 식민지에 이은 군부 반공 권위주의 발전국가 체제에서 수혜받지 못한 지역들은 우리 모두더 잘 살기 위하여 향유해야 할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유예 당해야 했고, 농산물 가격 통제나 청년 유출을 겪어야 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하고 환란을 극복해도 서울은 자신들에게 편중된 이 성공과 부를 나누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지방을 타자화하고 식민화했다. 지방의 소매 사업은 편의점과 SSM, 대형마트, 백화점의 저인망식 소매 산업에 그 자리를 빼앗겼고, 지방의 공장들은 서울에 소재한 재벌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했다. 자연히 이들은 서울의 필요와 글로벌 경쟁과 지구적 생산 체인의 변화에 따라 그 생사가 나뉘어야 했다. 지방이 이렇게 빈궁해질수록 청년들의 탈 지방은 심화되었고, 이런 이중적인 내부 약탈 구조는 이제 지방의 생명마저 서울의 활기를 위해 탈취하는 구조로 나아갔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정보화, 금융화, 자동화됨에 따라 서울로의 집적과 약탈은 심화되었다. 한때 경북 내륙에 젖과 꿀이 흐르게 했던(낙동강을 화학물질의 바다로도 만들었다) 구미의 전자 산업들은 21세기에 들어 경쟁적으로 서울 근교의 천안과 평택, 파주, 용인 일대로 재배치되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이런 경향과 맞물려 지방의 일자리가 3, 4차 하청 공장의 단순 비숙련 노동이나 프랜차이즈란 이름으로 위장된 서울의 소매산업 지배 구조의 말단에 선 불안정 여성 노동에 대체되도록 했다. 지방에는 더 이상 우리가 전통적으로 인식해온 양질의 일자리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히 지방 청년들의 소망은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 취업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여 서울이나 지경학적 필연성으로 서울로 집적되지 않은 울산, 창원, 부산 등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도리어 지방의 노령화와 활력의 저하, 문화적 퇴행과 폐쇄성을 유발했다.

 

이 약탈적인 식민 구조는 그들의 희생으로 큰 장남의 자식들이 그들의 부와 영광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 상대적으로 덜 세련되고 가난한 고모들의 자식을 촌스럽고 가난하다 혐오하고 경원시하는데 이르렀다. 지역의 사투리들은 표준어 지배 권력에 밀려 촌스러운 것으로 전락했고 유머의 소재로 전락했다. 모두가 그 와중에도 서울 따라잡기, 서울 배우기, 서울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 한편으론 균형발전이니 분권을 말하지만 정작 지방 정부가 권능과 자원을 더 행사한다고 이 내부 식민 구조가 변화하는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그나마도 자신들의 부동산 가치와 미래 수익을 위해 내놓길 거부하는 이들의 반발(관습헌법의 관습이 어디서 나온지 생각하자)에 좌초하기 일쑤였다. 어느새 자신들을 살찌우고 번영으로 이끈 선택과 이를 위해 감내한 양보와 희생의 기억은 마멸되고 과정으로의 불균등이 아닌 그 결과의 불균등만이 의식에 남아버렸다. 그렇게 이 내부 식민지와 서울 제국의 구조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다.

 

 

3.

인류학자 김현경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학벌주의라 불리는 권력 현상/의식을 크게 학력주의와 연고주의, 서열화로 구별해 설명했다. 학력주의는 말 그대로 대학의 진학 및 졸업 여부를 통해 얻는 사회적인 기회와 권력 자원들의 문제를 지칭하며 오랫동안 학벌차별으로 지시되던 의식이다. 그러나 김현경은 이 글을 통해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졸업정원제 폐지 이후 사실상 전통적으로 학벌을 상징하던 학력주의의 위력이 감쇠하고 연고주의와 서열화의 의미가 강화됨을 지적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대학 문제는 학력 차별과 서열화에 있었다. 연고주의란 것이 다양한 매개를 통해 한국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확산되어 있고 이에 대한 관용도 역시 큰 편이었고 지역 연고라는 더 강한 매개 고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학력주의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학벌주의 문제는 사실상 대학을 서열화하고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를 잣대로 사람을 나누는 서열화의 문제로 대체되었다.

 

대입은 늘 전국의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웠고, 좋은 대학이 사실상 우선적으로 그들을 데려갈 자격을 가졌다. 물론 더 좋은 대학은 어떤 명시적 선언으로 규정되지 않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학 간 다툼과 경쟁의 결과도 아니었다. 더 좋은 그곳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서 결정되었다. 이 암묵적인 순위와 서열은 우리가 마음으로 수긍하고 따르는 순간 권력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서열화는 늘 존재했다. 선택에 있어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아마 인류사적인 물음일 것이다. 사실 학벌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특정한 잣대로 평가되고 배치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늘 이를 정당화했다. 약육강식, 우승열패 등 이 서열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은 우리의 이데올로기 깊숙이 존재했고 작동했다. 교육은 한국인들의 입신양명과 출세, 성공이라는 가장 강력한 욕망이 투영되고 있기에 좀 더 나은 곳’, ‘좀 더 잘 될 수 있는 곳에 대한 열망과 평가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식민지와 전쟁, 압축적인 공업화는 늘 실력주의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전통적 지주-사대부 지배 체제의 해체 속에서 당시의 사회는 새로운 엘리트 상을 만들지 못했고, 이 권력의 공백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인정받는 잣대는 공부였다. 공부를 잘해야만 잘 살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 상의 공백 속에서 정승의 아들이 하찮은 건달이 되기도 했고, 머슴의 아들이 고등고시를 붙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실력주의 신화의 핵심에 바로 공부가 있었다. 자연히 대학 진학률이 낮은 시대에 대학에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엘리트 후보생이자 사회적 성공을 의미했고, 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입시 결과들이 학교들을 평가하고 줄세웠다.

 

하지만 이 실력주의 신화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서열화는 시대의 주객관적 조건과 내용이 변화함에도 비판적으로 성찰되지 못한 채 퇴락한 형태로 재생산되었다. 이에 실력주의 신화와 서열 질서는 퇴락한 형식으로 후속 세대와 그 부모들의 욕망과 조응하고 있다. 과거에 대학을 가느냐 아니냐. 고교를 어디로 가느냐가 그랬다면 지금은 취업에 유망한 학과 혹은 취업에 선호하는 여부에 따라 대학과 학과들이 줄 세워졌다.

 

청년 세대에서 지방이 낙오와 못남, 실패와 탈락의 이미지를 갖는 뿌리는 이 서열화에 있다. 특히 외환위기로 인해 들어선 한국의 신자유주의-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노동시장을 극도로 다층화시켰고, 과거의 대학 졸업-좋은 일자리라는 연계 고리를 무너트렸다. 유연하고 불안정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내부 경쟁은 계속 심해졌고, 대학 졸업만으로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 진입이 힘들어지며 대학 간의 서열 경쟁 역시 심화되었다. 어느새 과거 대학이 누리던 변형된 지대효과는 서울의 일부 대학, 그 가운데서도 일부 학과들에만 돌아갔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탈락의 피해를 감내한 것은 과거 실력주의 신화시대의 한 축인 지방의 거점 국립대와 지방 명문 사학들이었다. 이 대학들에서 제공하는 강의의 질이 좋으냐, 교수진의 역량이 어떠한가는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계서의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주며 열등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해주고 더 나은 미래에 접근할 기회와 자격을 부여해준다. 대학의 야구점퍼에 자신의 학교와 학과를 기재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출신 고등학교까지 기재하는 세태는 일견 연고주의적 전략 같지만, 사실 이는 서열화가 낳은 현상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비교적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증명하고 타자를 차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만큼 자명하고 간단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너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는 방법이 있던가? 실력주의 신화가 만든 이 서열은 이제 노동 시장의 구조/서울과 지방의 제국-식민지 구조에 편승하여 타락한 형식으로 발현하고 있다.

 

97년 체제 아래 대학의 변화는 급격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 사회 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곳곳에 편재되고 우리의 맘과 의식, ‘서열 짓기가 조응한 결과다. 그리고 이 조응을 바로 과거의 실력주의와 공부의 신화가 지탱하고 있다. 우승열패의 내용은 이제 대학/비 대학에서 서울의 좋은 대학/지방대의 구조로 변화했다. 물론 이 조응 관계 사이에는 분절적이고 모호한 위칫값을 가진 중간 공간들이 존재한다. 서울에 있으나 서울 내부에서도 2등으로, 실패로 취급받는 그런 대학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중간지대의 존재가 사태의 본질을 변화시키진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대학이 명문지잡으로 양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잡을 만들고 선언하는 서열짓기에 대한 논급이기 때문이다.



4.

재경유능, 재향무능의 시대에서 서울 아닌 곳에 있는 이들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까? 서울이 잘남과 미덕, 훌륭함, 높은 성공 가능성 등을 상징하게 되고 이로써 서울이 서울 아닌 곳들의 젊음과 활기마저 잃어가는 시대에서 무능과 못남, 열패의 위치에 놓인 재향 청년들에겐 몇 가지 독특한 의식의 조류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 살펴볼 때 크게 탈 지방”, “서울병”, “재향 나르시스트”, “혁명가라는 네 범주로 나눠 이들을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탈 지방은 실력주의 신화의 현신이다. 이 중에 으뜸은 역시 지방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왕 지방에 태어난 이상 고등교육을 서울로 받으러 유학 가는 것이다. 그렇게 서울에 가서 서울의 온갖 XX푸어들의 일원이 되는 한이 있어도 지방에 있는 것보단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역시 희망은 지방을 떠나는 것이다. 거기서 잘되면 혹시라도 제주도나 강릉 같은 서울이 사랑하는 지방, 서울의 시선에서 조직되고 소비되는 지방에서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들 다수는 서울 사회의 활력을 공급하고 동시에 서울 제국을 재생산하고 지탱하는 존재들이다. 이들 가운데 간헐적으로 나오는 신화적 삶들은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이데올로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좋은 재료들이다.

 

이에 반해 서울병의 유형은 실력주의 신화에 충실하지 못해 서울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무척 흥미로운 범주인데, 이들에게선 서울 제국주의,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충실한 추종과 실력주의의 불공정함에 대한 자기연민에 가까운 분노, 서울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 등 분열적이고 복합적인 감정과 의식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이들 중 탈 지방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앞서 ‘IN 서울에 성공한 훌륭한 선배들처럼 탈 지방하기를 소망한다. 개중에 일부는 탈 지역에 성공하지만 대개는 지역의 서비스, 소비 산업의 중추가 되거나 하층 공무원 집단에 편입되어 이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살아가게 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문제를 개별적인 지방의 낙후함과 못남의 문제로 치부하며 문제의 해결로 서울로의 탈출 혹은 서울 스타일의 수용, 지방의 서울화를 지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혁명가의 부류는 자기의식과 내면에서 탈 제국을 이뤄낸 이들이다. 이들은 적어도 서울이 만들어내고 유포하는 정상 생활의 기준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다. 이들은 결국 제국 바깥, 변두리, 식민지에 있으면서 이를 통해 중심부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모순을 직시한 이들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이들은 혁명가들이며 가려지고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이들이다. 마치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티나로, 서경식이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로 있음으로 그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바꾸려 하듯이 이들은 저 제국에 편승하지 않고 지방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싸우는 것을 자존으로 하는 이상한 자들이다. 이들은 우리 시대의 불령선인들임에도 진보좌파의 주류는 아니다. 진보좌파들마저도 서울병, 서울 중심주의, 중앙정치 문제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마이너리티이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재향 나르시스트들은 무척 특수한 집단으로 식민지형 자기애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이들은 나르시스즘에 젖은 서울병 부류와 극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지방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삶을 택했다는 것에서 구별된다. 이들은 서울에 갈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권력을 따르는데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이 제국의 구조를 해체하고 폭로할 능력과 용기는 없는 이들이다. 대개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지적 기반이 취약하고 이론과 분석의 정합성과 엄밀함이 떨어진다. 이들의 근본적 이해관계는 이 모순적 구조가 유지되는 데 있으며 탈제국을 이룬 혁명가 부류와 달리 이 체제와 구조 속에서 지방 식민지가 지향하는 변화나 혁신의 흐름(사실상 서울 흉내 내기)에 편승하고 부합하여 거기서 경제적 급부와 사회적 명예를 얻는다. 혁신이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실질적으로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고 그것을 구축할 의지와 역량이 없고 오히려 심정적으로 그것에 거부감을 가진다. 오히려 현재 체제의 존속과 이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그들의 영역이며 그들의 이해이다. 이들의 특이점은 이들이 전통적 학생운동이 소멸한 이후 과거 그들이 수행하던 지방에서의 진보적 시민사회와 정당의 활동가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의 정당과 시민사회 활동, 사회적 경제 등에서 종종 눈에 띄는 이들이다.



5.

직업훈련소 혹은 공부의 종착지로 입시 기구가 된 대학 내에서도 몇 가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보면 인()-대학, (IN)-대학, ()-대학, ()-대학의 부류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 인()-대학은 말 그대로 대학의 제도와 구조의 모순에 문제를 느끼지 않거나 설사 무제를 인지하더라도 변화 가능성을 포기하고 어쨌든 졸업장 받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기 위해 대학 문제를 감내하는 선택이다. 대학을 출세 혹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입시와 직업훈련의 기구로 전락하게 하는 주류의 인식인 이런 태도에서는 대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교육, 배움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와 실적, 증명 가능한 자격이 더 중시된다. 자연히 인()-대학의 태도 속에서 대학은 목적과 가치보다는 수월성과 쓸모, 유용성으로 평가받는다. 비싼 등록금조차 본인의 삶에서 주는 지대 효과와 성공, 안정의 기회를 위해 견뎌야 할 것이 될 정도로 이들은 대학의 위기 자체에 둔감하고 대학을 그저 미래를 위해 지나치는 과정으로만 인식한다.

 

(in)-대학의 태도는 여전히 대학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가능성을 믿고 대학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개혁을 신뢰하는 태도다. 이는 대학이란 플랫폼을 고수하는 복각의 운동이며, 대학이란 제도와 공간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 가능성을 여전히 신뢰하는 운동이다. 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비판적 교수 집단에서 가장 지배적인 태도이지만 한편에선 과거의 대학상에 갇혀 대학의 존재와 의미를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김예슬 선언으로 대표되는 대학 포기의 흐름은 그간 검토되지 않던 탈()-대학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했다. ()-대학의 핵심은 대학이 더 이상 개인과 사회에 지적, 도덕적 영역에 있어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있다. 이는 현재 대학이 마주한 곪아 버린 문제들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지식과 정보의 유통 매개를 대학이 독점하지 않고 있으며, 대학을 졸업해도 과거처럼 안정적이며 양질인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다. 탈 대학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탈 대학은 단순히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택하라는 조언부터 대학 바깥에서의 배움과 같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 이것이 저항적으로 이뤄지면 아래에 후술될 대()-대학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대개 고졸 9급 공무원 준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의 흐름은 대학 외부에서 과거 아카데미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체하는 사회적 기구를 통해 대학에 대항하고 지식 하부구조와 담론 구조에서 퇴락한 대학과 맞서는 움직임이다. 이는 한편으로 ICT 기술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평생학습 체계의 등장, 유튜브나 MOOC와 같은 고등교육 학습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관련 있다. 이처럼 뉴미디어와 결합한 대학의 대체 플랫폼을 만드는 움직임 외에도, 단순히 배움을 대학이란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 바깥에서 대학에서 나온 연구자와 학생들이 만드는 다양한 학술기구나 학술운동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운동은 대학 내부에서 탈락한 교수자원들 혹은 현재의 대학 체제에 실망하고 분노한 연구자들이 만드는 대학 외부의 대학인 경우가 다수이다. 그만큼 재정적으로 취약하고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대안대학이 정착하고 제도화되긴 무척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학의 퇴락과 느린 죽음에 대처하는 여러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학 자체의 존재 이유와 대학이 하나의 제도이자 공간으로 가지는 역사적 소명에 대한 검토는 무척 부족하다. 동시에 대학이 입신양명의 통로인 상황에서 배움과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지, 대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방대한 지성사적 기획의 가능성 등은 온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그 자체로 지니던 어떤 특권적 지위를 사실상 상실하고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마저 국가와 자본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역할, 규범에 대한 검토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짧은 경험에 대한 술회로는 불가능하며 훨씬 장구한 대학의 역사적 기원과 그 변화 과정에 대한 추적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렇게 재검토되고 고찰된 대학의 역할과 의미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정녕 대학 외부에서 대학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대학 체제 내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공간들은 새로 대학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의 공간이다. 이미 경쟁 체제에서 밀려나는 대학이기에 도리어 이 경쟁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밀려 나가기에 더 경쟁질서와 논리에 충실하려는 정치적 압력을 견디는 힘이다. 만약 대학 내부의 역학 관계에서 합의와 전망을 통해 그런 정치적 내파력을 구축할 수 있다면 지방대학이야말로 대학의 변두리에서 대학을 재건하는 공간, 경제적 출세와 사회적 계서의 상승에 대한 욕구가 아닌 온전한 배움과 비판, 비평의 공간으로 대학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 현재의 대학 세계를 움직이고 규정하는 권력의 변방에 기회가 있다. 오래된 아카데미주의자들이 갈망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를 넘어, 직업 훈련소와 최종적 공부의 종착지, 청년 노동의 공급자, 수월성 교육의 현장을 넘어선 새로운 변화와 실험, 그 모태로 변두리를 상상하고 검토해야만 한다. 이런 실험과 변화를 통해 대학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현재의 대학과 구별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면 이는 우리가 새로운 대학을 상상하는 뿌리가 될 것이다.



re:0.


지방 대학은 한국 사회에서 잘남과 못남, 성공과 실패, 올라감과 떨어짐을 결정하는 이중의 잣대 아래에서 못나고 실패하고 떨어지는 배역을 맡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실질적인 역량이나 의식, 철학, 인품 등 인격적 요소와는 무관하게 지방대학에 다니고 지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자존을 갉아먹고, 자신을 부정과 비관의 파도에 내던지게 한다.

 

동시에 지방대학을 다니는 것은 자기 삶의 공간을 한국 사회의 2부 리그로 정하는 일이다. 개중에 가끔 놀라운 경쟁과 노력으로 1부 리그에 올라가 온갖 불안정함(그 노력과 경쟁의 결과가 생을 가로지르는 불안정이라니)에 닿곤 하지만 대개 2부 리그에 있다는 건 그의 미래 역시 평균적으로 2부 리그 안팎을 배회함을 뜻한다. 그들 대부분은 지방의 서비스 산업의 사원이나 하청 네트워크의 하급 관리자, 엔지니어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삶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1부 리그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겸허히 거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들의 부모가 원전과 공장, 전깃줄에 땅을 빼앗기듯 그들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과 활기, 먹고 사는 모든 것들을 서울이 상징하는 중앙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 자존감과 행복마저 차압당한 지방, 지방대의 현실이지만 정작 지방으로부터의 저항의 기운은 요원해 보인다. 학벌주의 반대 운동의 핵심이 이 구조에서 수난받는 지방대생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거나 그 출신들이 다수란 사실은 이 운동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킨다.

 

지방에 있음은 단순히 무능하고 떨어지고 탈락한 삶을 뜻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실력주의와 실적주의의 신화 속에서 이런 말은 그저 막막하고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중앙에 서 있지 않기에, 서울에 살지 않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시선이 존재한다. 변두리, 변방에 선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재향 청년은 훌륭한 혁명적 계보학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 그들을 규율하고 옥죄고 제한하는 이 권력이 어디로부터 연원하고 있는지 그들은 누구보다 잘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들의 수난은 서울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고, 지방+청년이란 단어의 결합이 만드는 길항작용은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방에 있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단지 문화적으로 서울에 비해 공연이나 전시가 좀 적거나 없고, 경제적으로 취업이 힘들고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 정도로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내부 식민지화된 지방의 위상, 서열화된 대학,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청년, 이 세 가지의 화학적 결합은 한국 사회에서 무척 독특한 형태의 지잡대생이란 결합물을 낳았다.

 

지잡의 미래는 서울을 따라가는 데에 있을 수 없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서울 따라하기의 실패자들이고 낙오자들이다. 서울과 대학 서열 모두에서 실패한 이 이중의 낙오자들에게 다시 서울을 좇고, 더 높은 서열을 위해 노력하길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비극이다. 우린 이들에게서 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 경계를 오가고,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에게서만 자랄 수 있는 그 마음, 그 감각, 그 시선으로부터 서울에 있었다면, 좋은 서열의 대학에 다녔다면 할 수 없는 일들, 상상할 수 없는 담대한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지잡의 위치에 있기에 이 구조적 모순의 뿌리를 직시할 수 있는 것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도출해내야 한다. 전통적인 대학, 이미 퇴락해버렸고 죽어가는 대학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자존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대학을 지방으로부터 상상해보자. 그것만이 이 이중의 억압과 지배의 구조를 넘어서는 길이다. 주류에 기입되지 못한 자들이 연대하고 함께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자. 이를 자존 삼아 그 주류를 넘어서는 상상을 해보자. 혁명은 원래 그런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국의 잡놈 만세, 만국의 촌놈 만세. 변화의 담지자 만세.


 

도움받은 책들

 

강준만, 2008, 지방은 식민지다, 개마고원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서경식 외, 2007, 교양 모든 것의 시작, 노마드북스.

서동진, 2009,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배게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요시미 순야, 2014, 대학이란 무엇인가, 글항아리.

지주형, 2011, 한국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기원, 책세상.


[필자 소개]


이시훈

대구에서 20대를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언저리 라이프로 보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 공동 창립자와 대표를 맡았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공동 설립 제안자를 맡고 있다.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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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2018/01/09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

2018/01/2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탈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심기용)

2018/01/30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의 바깥은 없다 (권영민)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해당 글은 <대학연구네트워크(준)>과 더불어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대학의 바깥은 없다




권영민




, 비참하게 죄를 덮어쓴 무고한 자여! 너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 즉 교양제도를 너희가 얻지 못했기 때문이지. 즉 너희에게 목표를 설정해주고 스승들을 마련해주며, 방법을 알려주고 귀감이 될 만한 인물들, 동지들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 마음을 고양시키는 숨결을 그들에게 뿜어낼 수 있는 그런 교양제도 말이야.” 

- 니체,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



대학의 위기이다. 그건 대학의 위기인 동시에, ‘위기의 대학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젝-데리다식 농담은 어떤가? 대학은 항상-이미위기였고, 따라서 위기라는 대학의 불가능성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항상-이미대학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농담 속에 전도된 (혹은 도착적/왜상적) 진리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의 가능성의 조건항상-이미대학의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대학은 위기라는 쓰레기 더미를 양분으로 해서만 피어나는 괴물 같은 꽃, 혹은 꽃 같은 괴물이다. 왜 그런가? 후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의 위기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진정한 학문적 성격(echte Wissenschaftlichkeit), 즉 학문이 자신의 과제를 세우고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가 문제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각주:1] 후설에 따르면, ‘학문의 위기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문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의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우선 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우리가 그것을 문제시할 때 학문의 위기는 더 이상 학문의 불가능성의 조건이 아닌 가능성의 조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학문은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980a)[각주:2] 그런데 이 앎은 두 가지 방식의 앎으로 나뉜다. ‘필요anankaia’를 위한 앎과 여가의 삶diagōgē’을 위한 앎(981a). 이 두 가지 앎의 방식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뒤의 기술[여가의 삶을 위한 앎]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앞의 기술[필요를 위한 앎]들을 발견한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여러 가지 인식은 유용한 쓰임chrēsis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앎, 혹은 더 지혜로운 앎은 필요와 상관없이’(980a)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와 상관없이아는 것은 대체 무엇을 아는 것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앎에다 더 지혜롭다는 면류관을 씌우는 것일까? 그 면류관의 자격은 원인들prōta aitia’과 원리들‘archai’을 아는 것이다. “지혜라고 불리는 것은 원인들과 원리들에 관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론적인 지식들은 실천적인 것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어떤 원리들과 원인들에 대한 학문적인 인식임이 분명하다.”(982a) 더 나아가 이런 원리들과 원인들에 대한 학문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자격을 얻는다. 왜냐하면 원인들에 대해 가르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더 지혜롭기때문에 지혜로운 자는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내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그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학문하는 공간대학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에 대한 출생증명서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은 자신의 출생을 얼마나 배반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원리들과 원인들에 대한 학문적인 인식’, 보편적인 학문katholou epistēmē’(982a) 대신 필요를 위한 앎을 얻기 위한 공간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학문은 주로 첫째가는 것들ta prōta을 다루는 학문들이 학문들 가운데 가장 엄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학문이 추구하는 대상인 첫째가는 것들과 원인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인식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대학은 필요를 위한 앎에 종속되어 저급한 수준의 인식만을 반복하는 공간이 된 것이 아닌가? 급기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학문이 신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신은 모든 것을 주재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며 어떤 원리이기 때문이다. 즉 대학은 신적인 학문, 혹은 학문의 신인 고귀한학문의 전당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필요와 상관없이’, 즉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앎의 목적, 앎을 위한 앎이라는 목적 때문에 신적인 것의 지위에 있던 형이상학-인문학은 19세기 계몽주의의 완성자인 칸트에 이르자 낮은자리로 내려온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필요에 의한 앎과 필요와 상관없는앎을 나누는데, 이것은 칸트가 당시 산업사회의 노동개념인 노동의 분업[각주:3]을 학문 혹은 대학의 이념에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 유명한 칸트의 이성의 분업’,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분업도 마찬가지이다.) 학문의 분업은 세 개의 고귀한higher/übern’ 학문(신학, 법학, 의학)과 하나의 낮은lower/untern’ 학문(철학) 사이의 분업인데, ‘고귀한학문은 공적인 일, 즉 정부와 관련을 맺는 학문이고 낮은학문은 그 자체에 대한 흥미만을 추구하는 학문이다(CP 25). 하지만 칸트가 철학 - 요즘의 교양교육 -낮은혹은 저급한학문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우리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낮은자리는 여전히 아무도 그 자리를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자리, 자율성’(CP 23)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교양교육이라는 고독한 짐승의 영역표시이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정부는, 정부와 관련을 맺는 고귀한학문들을 규제할 권리가 있지만 학문 그 자체에 대한 흥미만을 추구하는 낮은학문에 관련한 문제는 학자의 이성에 맡겨야 한다(CP 27). 이성은 본성상 자유롭기 때문에, 정부는 어떤 것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없다. 즉 진리는 명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학문은 정부의 어떤 명령도 받지 않는 자율성의 공간이다. 여전히 교양교육은 이성을 통해서 진리를 밝히고 독점할 저급한학문이다. “여기에서 철학[교양교육]과 정부 사이에 하나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철학[교양교육]은 정부의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철학[교양교육] 고유의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었고, 반면 정부는 철학[교양교육]이 순수한 사색에만 집중하고 실천적인 문제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똑같이 이성적인요구를 할 수 있었다.”[각주:4]


그렇다면 과연 형이상학-교양교육은 필요와 상관없는학문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철학-교양교육의 자율성이라는 칸트적 이념은 정당한 것인가? 대학에서 학문의 분업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칸트적 이념에 대해서 니체는 한 세기 뒤에 다음과 같이 통렬히 비판한다. “우리 학자들의 편협한 전문성을, 그리고 이들이 올바른 교양에서 점점 더 멀리 벗어나 헤매고 있어도 그것을 [사람들은] 도덕적 현상으로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사소한 것에의 충실’, ‘육체노동자적 성실은 호화 주제이며, 전공을 넘어선 분야에서의 무지는 고귀한 자족의 표시로 널리 전시됩니다. (...) 학문에서의 분업은 (...) 언젠가 [학문의] 분신자살이라는 파국을 불러올 것입니다.”[각주:5] 그렇다면 대학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율성의 공간인가? 그러나 오늘날 대학 혹은 교양교육의 순수성을 유지하여 대학이 실천적-정치적 관심사에 뒤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신념은 하나의 허구일 뿐이다.[각주:6] 그리고 니체는 오히려 이러한 대학, 더 구체적으로 대학 내 교양교육의 자율성이라는 환상이 대학과 대학에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의 학문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선생은 이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하지. 그 밖에 그가 사유하고 행위하는 것과 학생들이 지각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가로지르고 있지. 종종 학생이 말하는 동안 교수는 읽는다네. 일반적으로 교수는 그런 청중이 되도록 많이 왔으면 좋겠고, 정 안 되면 몇 명으로도 만족하지만, 한명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네. 말하는 입 하나와 아주 많은 귀들, 그 반쯤 되는 수의 필기하는 손들 - 이것이 학술 기구의 외양이고, 작동하는 대학의 교양기계라네. 게다가 이 입의 주인은 많은 귀들의 소유자들과 분리되고 무관하네. 이 이중적 의미에서 자율성을 사람들은 감격하게 학술적 자유라고 칭송하지. 그런데 그 한 사람은 - 더 많은 자유를 위해 -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충 말하고, 다른 이는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충 듣지. 다만 이 두 집단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국가가 긴장된 감독관의 표정으로 서서 가끔 자신이 그 특이한 말하기와 듣기 과정의 목적이고 목표이며 본질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야(교육기관276-277).[각주:7]


그렇다면 대학의 바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데리다는 현재의 군수산업의 예를 들면서, 대학이 추구해온 자율성의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학의 바깥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교양교육은 더 이상 필요와 상관없이하는 신적인 학문이 아니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인 학문도 아니며, 그래서 대학도 신적인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과 국가적, 국제적 안보에 도움이 된다면, [군수사업의] 연구 프로그램은 모든 정보 분야, 즉 언어와 모든 의미론적 체계의 본질, 번역, 암호화와 암호 해독, 현전과 부재의 유희, 해석학, 의미론, 구조 언어학과 생성 언어학, 화용론, 수사학 등의 모든 지식의 축적을 포함할 것이다. (...) 군사 예산은 다소 이익을 늦게 보더라도 그 어떤 것 - ‘기초학문들, 인문학, 문학이론, 철학 에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8] 오늘, 대학의 바깥은 없다.


그럼 이제 바깥이 안이고 안이 바깥이 된 대학(“연구의 정향orientation’은 제한이 없다” (PR 13))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물론 우리는 어느 누구도 우리 교양의 미래와 그와 관련된 우리 교육수단 및 방법의 미래에 관한 의견을 예언의 목소리로 말해서는 안 된다.”( 교육기관167)는 니체의 전언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대학의 미래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 비판이며 동시에 비판하는 기관으로서의 대학’, ‘비판으로서의 교양교육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교육제도에 가장 적합한 예언이 된 다음과 같은 니체의 비판처럼 말이다.


소득과 가능한 한 최대의 화폐수입이 교양의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이 방향에서는 교양은 대략 사람이 자기 시대의 정점위에서 존속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길을 알려주고, 사람들과 민족들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모든 수단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통찰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 방향에 따르면 원래 교양의 과제는, 우리가 보통 동전을 쿠란트라 부르듯이, 가능한 한 쿠란트적 인간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민족은 더욱 행복하게 됩니다. 개개인을 그의 본성적 성향보다 더 금전적이 되도록 장려하는 것, 그가 자신이 가진 인식과 지식의 양으로부터 되도록 많은 양의 행복과 이익을 얻어내도록 교육시키는 것, 그것이 근대 교육기관의 목적입니다.”(교육기관194-195)

 

비판은 무조건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판은 자기음미이다.[각주:9] 그렇다면 비판으로서의 교양교육’, ‘비판하는 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자기음미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유이다. 하지만 이 때 사유는 더 이상 행동의 반명제로서의 사유가 아니다. 오히려 사유개념행동’, ‘개념응용’, 이론적 견해와 실천, 이론과 기술 사이의 개념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사유이다.(PR 9) 니체는 무릇 사람은 자신의 관점만 가져서 되는 게 아니라 생각도 할 줄 알아야지![Man muss nicht nur Standpunkte, sondern auch Gedanken haben!]”(교육기관183)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필요와 상관없이하는 사유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기존의 원리들과 원인들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대학이 실용교육에 빠진 채 필요와 상관 없는교양교육을 등한시하고, ‘사유를 도외시하며 기초학문을 무시한다고 화낼 필요가 없다. 그런 자율성은 없다. 그 대신 이제 말했듯 대학의 바깥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대학을 지배하는 이러한 원리들과 원인들’, 온갖 종류의 질서들, 권력들, 자본들, 욕망들, 인간들을 사유를 통해 문제시하는 것, 거듭 말하자면 비판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대학의 위기. 후설에 따르면 학문의 위기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진정한 학문적 성격echte Wissenschaftlichkeit, 즉 학문이 자신의 과제를 세우고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가 문제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대학의 위기의 ()가능성은 항상-이미’ ‘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문제시하는 것이다. 즉 대학을 지탱시켰던 자율성이라는 환상, ‘필요와 상관없이’ ‘원리들과 원인들을 탐구하는 신적인 학문의 전당이라는 환상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비판으로서의 대학자기음미이다. 자기음미비합리주의’, 혹은 지젝의 표현대로 뉴에이지 반계몽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이 비판으로서의 교양교육이중적 제스처’(PR 17)를 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문의 전통을 준수하고 전문적 자질을 기르면서 그 전통 안에 존재하는 심연사유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비판공간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유는 단지 문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글쓰기 방식, 교육적 접근, 아카데미의 교환 과정, 언어와의 관계, 다른 학문과의 관계, 혹은 제도 일반과의 관계를 변형시키는 것”(PR 17)이다.[각주:10]


대학은 죽어가고 있는가? 지방대학은 죽어가고 있는가? 편집자가 내게 원고를 청탁하며 던진 질문이다. ‘필요와 무관한 앎을 얻었는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율성을 확보했는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학은 죽었다. 하지만 대학이 필요와 무관한 앎을 얻는 공간도 아니고, ‘자율성을 확보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면? 원래 대학이란 공간은 니체의 말처럼 쿠란트적 인간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데리다의 저 유명한 텍스트 밖은 없다라는 말을 비틀어 대학의 바깥도 없다고 한다면, ‘필요를 위한 앎이라는 목적에 종속되어 자율성이란 없는 지금의 대학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니체도, 데리다도 이것이 대학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학이 쿠란트적 인간을 키우는 공간이라는 것을 전제로, 대학이 지금 존재하는 방식인 쿠란트적 인간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지금의 방식을 비판하려고 해야 한다. 만약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면 비판 대신 예언만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너무 칸트적이거나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으로의 비판에만 길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가 수행해야 할 비판은 비판을 넘은 비판, -구축de-construction의 비판이다. 대학 바깥에서의 비판만으로는 대학의 탈-구축이 가능할리 없다. 대학에서의 글쓰기, 수업 방식, 입시, 서열화, 계급과 직업의 배분 관계 전체를 변형시켜야 하는 어려운 외줄타기의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외줄 타는 사람들, 다시 말해 희망에 가득찬 사람들이 있다.

 


““자명한 사람들과 고독한 사람들 사이에는 싸우는 투사들, 다시 말해 희망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

-니체,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 


[필자 소개]


권영민

작가.

대학원에서 현상학을 전공했다.

저서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 공저셀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속 대담의 대담자 중 한 사람.

한국일보와 매일신문에 정기칼럼을 썼고, 쓰고 있다.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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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2018/01/09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

2018/01/2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탈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심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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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대학연구네트워크(준)>과 더불어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이틀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1. 에드문트 후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사, 1997, p.61. [본문으로]
  2.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2004, 문예출판사, p.50, 이하 이 책의 인용은 본문 중에 Bekker판의 쪽수만 기입한다. [본문으로]
  3. Immanuel Kant, The Conflict of the Faculties/Der Streit der Fakultäte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79, p.23(이하 이 책의 내용은 약호 CP로 본문 중에 인용함). [본문으로]
  4. 크리스토퍼 노리스, 『데리다』, 시공사, 1999, p.239(번역은 인용자가 일부수정). [본문으로]
  5.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유고(1870년~1873년)』, 책세상, 2001, pp.197-198(이하 이 책의 내용은 약호 「교육기관」으로 본문 중에 인용, [] 안의 내용은 인용자가 삽입). [본문으로]
  6. 크리스토퍼 노리스, 앞의 책, p.239. [본문으로]
  7. 우리의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는 필요를 위한 앎, 즉 경영대, 사범대, 의학 등 필요를 위한 앎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타락했고, 칸트적 관점에서는 교양교육도 영어교육으로 전치되어 버렸고, 니체적 관점에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슬프게도 지방대의 경우 ‘취업전체주의’라 부를만한 영향 하에 이러한 양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본문으로]
  8. Jacques Derrida, “The Principle of Reason: The University in the Eyes of Its Pupils”, Diacritics Vol. 13, No. 3. (Autumn, 1983), p.8(이하 이 논문의 인용은 약호 PR로 본문 중에 인용함): 니체에 따르면 ‘자율성의 최대의 적’은 자신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가장 어렵고 진지한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어, 그가 올바른 방식으로 이 문제들에 접근하여 제때 강렬한 철학적 경외심에 빠질 때, 이를 토대로 해서만, 즉 비옥한 지층 위에서만 심오하고 고귀한 교양이 자라날 수 있는 법이지. (...) 이 나이에 인간은 이끌어주는 손을 가장 필요로 한다네. (...) 남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상태, 즉 이 자연스러운 상태는 현대의 교양 있는 젊은이들이 교육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인 저 인기 있는 자율성의 최대의 적”(「교육기관」278-279쪽, 강조는 인용자). [본문으로]
  9.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2005, p.15. [본문으로]
  10. 이것이 바로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의 일반전략’이다. (자크 데리다, 『입장들』, 솔, 1996, p.65.) 데리다에 따르면, 이러한 ‘비판으로서의 교양교육’의 ‘사유’의 “해체의 운동들은 바깥으로부터 구조들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 구조들 안에 들어앉음으로써만 가능하고 효율적이며, 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구조들 안에 들어앉음으로써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그 속에 들어와 있고, 우리가 이를 알아채지 못할 때는 더욱더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해체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내부로부터 작용하고, 옛 구조로부터 전복의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모든 수단들을 빌린다.”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동문선, 2004, p.52). [본문으로]



탈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심기용



 

아마, 우리는 탈대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여러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미래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며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학인입니다."

 

각 대학의 슬로건들은 언제나 듣기 좋다. 대학들이 슬로건처럼 운영되는가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대학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학의 의미는 대학이 사회의 취업관문처럼 기능할 때부터 많은 부분 상실되었다. 대학은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 발전을 이끄는 기관이 아니라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거쳐야 할 길목이 되었다. 별다른 삶의 비전 없이 막연하게 가야 하는 곳. 많은 학생들이 그런 기관에서 졸업하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돈을 내가며 다니고 있다. 의미도 상실되고 빚까지 지는 이 상황에서 탈대학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물론 탈대학을 상상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 탈대학부터가 무엇일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라는 것일까? 대학을 자퇴하라는 얘길까? 아니면 대학의 기능을 대안적인 공동체 형성을 통하여 대체해야 한다는 것일까? 대학 졸업장 없이 잘살아 보자는 것일까? 탈대학이란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 개인들이 천문학적인 자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얻는 것은 막연한 미래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인으로 성장하면서도 그 중 대다수가 사회담론과 괴리되어 있거나 기여하지 못한다. 구조가 비합리적인 비용을 과도하게 발생시키고 있으면서도 이 구조가 아니고서는 다른 사회적인 구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작금의 상황은 참 모순적이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비판이 대학의 폐기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대학의 기능하지 않음, 효용감 없음, 또는 의미 없음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반드시 대학을 폐기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대학이라는 훌륭한 인프라를 다시 전유해야 한다. 이미 구성된 것을 다시 다른 맥락에 배치하는 것을 재전유라고 한다면, 탈대학의 진정한 의미는 대학의 재전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반동적인 폐기는 풍성함보다는 삭막함과 빈곤을 형성할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유하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학문을 요구하는 존재인 한, 대학의 필요성은 유령처럼 이 사회를 배회할 것이다. 대학의 폐기는 어차피 또 다른 대학의 구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인 반달리즘은 유효하다고 보기 힘들다.

 

대안적 상상력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현재의 대학교 기능은 고등학교 수준에서 해소하도록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대한민국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고등학교 기간을 대학교 입시를 위한 3년의 기간으로 설정할 것이 아니라 아예 대학 강의 수준을 조정해서 고등학교를 현재의 대학 과정처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사회적 시간 낭비를 줄이면서도, 현재의 대학들을 대학원의 개념으로 운용해 사회적 리더 양성과 학문 연구를 깊이 있게 진행할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진로선택 과정에서 대학원을 선택하는 것만큼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것이 신중한 일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문제들이 선결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 해결을 막는 장애물은 밖보다는 안에 있다. 두 가지. 대학생들이 돈이 되지 않아서 인문학에 관심이 없다거나 가난하기에 탈정치화 되었다거나 하는 분석은 현재 상황을 낭만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이 두 분석은 역으로 뒤엎어 생각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정치가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된 것인지 말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태만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자. 단순히 대학교를 대학원처럼 만드는 것이 대학 재전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이 담론 생성과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특히 대학생 사회에서 주목받는 소통의 코드는 취업 시장에서의 생존 또는 연애 정도다. 대학 생활을 다루는 웹툰들만 보아도, 그 두 가지만이 작가들이 읽어내는 현실의 대학 코드이다. 그것은 낭만화되거나 비극화되며 대학의 주요한 사회성으로서 인정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어떤 고갈과 갈증을 느끼면서도, 대학 사회가 잘못된 예감으로 이 현상을 호명해왔다는 것이다.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호들갑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중들이 인문학적으로 사유할 여유가 없고, 인문학적 텍스트와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거나, 생산되어도 소비되지 않는 현실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문학이 대중과 유리된 특별한 것이고 특정한 인물들의 글과 말만이 인문학적으로 유효한 것이라는 오만함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인문 분야에 연구지원이 빈약해지거나 인문연구서에 대한 소비가 왕성하지 않은 것은 인문 연구자들의 위기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정은 모두가 비슷한데, 인문학을 경시한다며 불특정 대중을 비난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지적 도피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은 모두가 나름의 수준에서 사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인문 연구자의 것이 아니다. 인문 연구자의 경제적 위기가 곧 인문학 자체의 위기라곤 할 수 없다.

 

대학의 위기를 인문학의 위기라는 분석과 연관 짓는 것은 위험하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극복된다고 대학의 위기가 극복되는 것인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인문학 시장이 확보되는 것이 인문학 위기의 극복인가? 그래서 결국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은 취업시장에서 인문학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허구적 기대감뿐이었다. "구글과 애플이 창의력을 본다고 하니 창의력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창의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유가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그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인문학의 시장성을 어필할 때, 그것은 취업관문으로서의 대학이라는 위치를 더 강고히 만들 뿐이다. 그것은 도리어 현재의 대학 문제를 심화하는 일이다.

 

 

탈정치의 정치



대학인이 인문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나오는 것이 대학인의 탈정치적 성격이다. "저희 총학생회는 학우 분들을 위한 학생회로, 정치적 성격을 띠지 않습니다"는 식의 중립성 주장에서 대표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경향이다. 처음엔 탈정치라는 말을 수용해서 사용했지만, 몇 년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한 후로 나는 이것을 탈정치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주로 이런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영리함에서 나온 정치성일 뿐이다.

 

이런 정치성은 주로 매카시즘을 정치적 방식으로써 차용한다. 동국대학교 2017년도 총학생회장은 지난 9월 대뜸 기자회견을 열어 전 총학생회, 학내 사회주의 정당 활동을 하는 학생들, 기존에 학교 본부에 투쟁하던 학생들, 그리고 한 자치언론을 싸잡아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단단히 연결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학우 분들을 대의하면서 정파적 이해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냐고 몰아붙였다. 재밌는 것은 이것이 총학생회장이 장학금 특혜 의혹이 터진 것에 해명하면서 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나한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불순한 단체가 소유한 언론이다! 라는 주장과 함께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역시나, 나는 순수하다는 것이다. 총학생회장이기 이전에 한 개인임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것을 순결 정치나 순수 정치라고 부른다.

 

또 하나 유형은 총학생회가 모든 갈등을 방관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연대, 학내 갈등 사안, 사회 이슈 등에 대해서 함구한다. 이들이 하는 것은 시설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 축제를 무난히 여는 것, 간식 사업을 진행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경우 총학생회는 대부분 무능한 민원기구가 되어 간다. 이렇게 학생회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갈등을 겪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갈등을 겪어가면서 권력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함구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함구 정치는 때로 유용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반쪽짜리 학생회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는 성장하지 않으며, 학생들이 오히려 정치적 공백만을 심하게 느껴 학생사회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권력 유지 자체가 정치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난 이들의 정치성과 연결망들을 적극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의 정치성은 나름의 사회성을 대학 안에 구축하고 있다. 이 사회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대학의 생존 미학으로서 구성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학생 계층의 성격을 미리 규정하고 비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관일 뿐이다. 수많은 대학 내 사회성들의 재편이 필요하다. 순수 정치, 함구 정치 등의 작동을 알고, 그것이 문제적이라면 사회망 내부에서 고장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동감 있는 현장과의 열렬한 교감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 대학 사회성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차용하고 재전유하면서 착취하는 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현장의 생동감을 통해 욕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대학인의 지도그리기: 현장을 가지는 일



나는 탈대학이 대학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어떤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학은 현장을 다시 찾아야 한다. 현장을 구성하고, 현장에 개입하고, 현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인문학 담론의 활성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다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현장은 대학 밖의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자신이 긴밀히 호흡하는 어떤 배치를 의미한다. 관계망, 공동체, 담론의 지형 등. 학문이 질문하고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것들의 총합이라면, 우리는 좋은 문제의식들을 발전시킬 자극들이 필요하다. 현장이란 그런 자극들의 현장이다. 담론의 지형을 파악하고 지형 안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적절히 위치시키는 일도 역시 현장성을 갖는 일이다. 어떤 현장으로부터 문제의식이 발현될 수도 있으며, 현장의 문제의식을 종합해내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장성이야말로 대학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예를 들어, 위안부에 대해 의미 있는 주장을 하거나 연구를 한다면 위안부와 관련 있는 현장 속에 대학인들이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한다면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질문들을 발전시키고 또 그것으로 기여할 수 있는 현장을 가져야 한다. 즉 어떤 판 속에 대학인이 자신을 위치시켜야 한다. 판에 자극되어야 하며, 새롭게 판의 현상을 포착하고, 개념을 생산하거나 유효한 분석을 판에서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그러한 대학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회망이 되어야 한다.

 

최근의 페미니즘에 대한 열망들이 바로 현장의 발생으로부터 발화되었던 점을 기억해보자. 수년간 여성운동가들의 기여가 있었지만 메갈리아 커뮤니티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의 여성운동은 그 확장성이 남달랐다. 대학가에도 페미니즘이 주요한 담론으로서 수용되었다. 유효하게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담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난파선마냥 홀로 주목받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을 위치시키고 발화하고 행동했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 숨쉬는 이야기,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호기심과 질문들을 현장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이 유통되거나 생산되었다. 담론 생산자로서의 대학인은 그런 배치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유행하고 주류적인, 지금 당장의 현안에 대해서만 대학인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제의 긴박함이나 중요도와 별개로 대학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사유함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인들이 그 문제의식에 맞는 현장을 구성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의식에 생동감을 부여해야 한다. 의례적인 질문들만 반복되고 계승되면 학문은 생동감을 잃고 문제의식은 발전하지 않는다. 현장은 그런 생동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세상을 뻔하게 바라보지 않게 해주는 배치. 그 배치 안에서 대학인은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지금 대학은 질문의 생동성을 잃어버린 사막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대학의 위기는 그 점에서부터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극복의 실마리가 막연한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학인들, 학교의 불통 행정을 비판하고 행동하는 대학인들, 어떻게든 대학과 사회 현안을 연결해 목소리를 내려는 작고 큰 움직임들, 생동감 있는 현장을 살아내는 대학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대학은 대학의 순위, 대학의 시장성, 대학의 국제적 평점에 더 큰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 생동감의 현장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인들의 현장을 지원하는 사회망이 되어주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현장을 되찾을 수 있을 때, 이 현장들과 함께 숨 쉴 수 있을 때 대학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심기용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게이로서 살아가다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 중.

동국대학교 큗 초대 회장.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7대 의장.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공동저자.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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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2018/01/09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해당 글은 <대학연구네트워크(준)>과 더불어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한 주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외줄산책 편집장)





1.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는 예산권편집권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동국대학교 학생 자치언론기구로, 1986년부터 교지 東國(이하 동국교지)을 발행해 왔다.[각주:1] 교지는 한 학기 동안의 학내외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출판물로 1년에 두 차례, 3월과 9월에 발간된다. 최근에는 필요한 경우 속보성을 위해 페이스북으로 단신 보도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각주:2]


나는 2014년에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발간했다. 마지막 교지 편집후기에 다시 돌아와 잡지를 만들 생각이라고 적은지 2년이 지나 잡지 <외줄산책> 창간호에 교지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잡지를 함께 하는 편집진인 심기용과 박규민은 대학교 1학년 때 각각 학과와 교지를 통해 만난 가까운 친구들로, 오랫동안 글과 말로 교류해온 사이다. 우리의 잡지는, 나의 입장에서 단적으로 말해보자면 교지를 만들 때 느꼈던 한계에서 시작됐다. 학내 언론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을 담아야만 한다는 당위는 굳건히 설 지반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머물러야 할 곳이 구획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 그 영역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장의 현실이었다.



2.


2014, 교지 출판에 온 힘을 쏟았던 그 한 해를 떠올리면,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가려고 했던 어린 내가 기억의 중심에 있다. 편집장은 그다음 학기 초에 배포하게 되는 교지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수습편집위원들을 이끌어가고, 교지가 완성되면 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잡다한 일 모두를 처리해야 했다.) 수습위원을 모집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첫 과제였다.


조지오웰은 썼죠. 나는 왜 쓰는가. 왜 우리는 글을 쓸까요? 당신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인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중 어느 것에 끌리셨나요? 잘 모르겠어도 상관없어요. 어느 이유가 먼저인지도 상관없어요. 교지는 당신 그 자체로 만들어진답니다. 즐겁게 글을 써요!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왜 쓰고 싶은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봅시다.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들어와도 되는 거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들어와도 되는 거예요. (룰루) 그저 잉여력이 쩔어서 들어오고 싶어도 괜찮아요. 그 잉여력을 으로 쓰고 싶다면요.


20143월 동국교지 수습위원 모집 공고문 내용 발췌


쓰고 싶은 글을 쓰자고 외치며 사람들을 모았고, 어떤 목적으로 들어오든 개개인 자체가 한 학기 동안 함께 어우러져서 한 권의 교지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앓는 소리를 내는 청년담론이 아직 신선하게 느껴지던 대학교 1, 2학년 때에도, 신자유주의 체제에 몰려 생존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불행한 청년세대를 지칭하기 위한 용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공고에 쓴 잉여도 그중 하나였다. 최태섭의 잉여사회[각주:3]를 읽고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각주:4]을 기웃거리던 시절이었다.[각주:5]


자소서에 쓸 스펙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학교로부터 출판비용은 물론이고 장학금도 받지 못하는 학생 독립언론이었기에 동국교지는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을 선택해왔다. 불과 몇 년 전에 사람이 없어 폐간될 위기를 겪은 적 있었기에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아무 보상 없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정도에 머무르자 싶었고 대의를 위해 희생할 사람도, 책임지지 못한다면 희생시킬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동국교지는 막 30줄에 들어서려고 하는 교내 유일의 학생 독립언론기구이기도 했다. 편집장이 된 나는 교내외 담론이 있다면 싣고, 동국대를 비롯한 대학가의 소식을 전하고, 학교와 학생회를 감시하는 학내 언론기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따라가기 벅찼었다고, 이제야 고백한다. 스스로부터도 단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과 잡지의 방향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윗대 선배들은 그깟 교지 안 나와도 된다, 너희가 즐겁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일렀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어느 새부터인가 약해져버린 학내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싶었다.


그렇게 모은 수습위원들의 글쓰기 실력은 차이가 컸고, 교지를 읽어본 적 없거나 글을 써본 적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같은 취미를 공유한 학생들이 모이는 동아리에서처럼 사람을 만나고 싶어 온 친구들이 많았다. 교지 내부에는 수습위원들에게 저널리즘, 기사작성과 콘텐츠 기획을 가르쳐줄 능력 있는 선배나 잘 짜인 교육체계가 없었다. 회의하는 동안에는 뭐라도 시켜 먹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편집위원들의 회비를 걷었다. 학번이 훌쩍 높은 선배들과 일 년에 두 번씩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말씀드렸더니 모금을 해주셔서 운영비를 댈 수 있었다. 광고대행회사는 광고비를 몇 달씩 늦게 주기 일쑤여서 디자인회사(발행까지 담당했다)와 광고대행회사 사이에서 끙끙거려야 했다. 장학금에 미국 연수까지 보내주는 다른 학내 언론 기구와 동국교지를 비교하며 불만을 터트리는 친구가 있으면, 마치 내 잘못인 것인 마냥 움츠러들었다. 비판에는 욕이 날아들었다. 내 생일날 한 단과대 학생회장이 흥분했는지 맞춤법을 틀려가며 욕이 섞인 문자를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전화를 주시거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더니 그 이후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한 학기와 이어진 방학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낡은 학생회관의 1층 교지편집실에서는 긴 회색 책상을 둘러싸고 회의가 열렸다.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는데 왜 시간과 돈을 바쳐가며 했는지, 우리가 만드는 이 교지가 왜 굳이 학내 언론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했는지에 대한 답을 하라면 명확한 것은 없다. 그냥 좋아서 했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전통과 의무감, 당위는 그다음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집장인 나에게는 교지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질문이 던져 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글은 교지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지점에서의 답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대학언론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대학 언론이 기성 언론이나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SNS와 달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대학언론의 시대적 역할은 무엇인가?



3.


그것을 말하기 위해 20149, 두 번째 교지를 만드는 중에 동국교지의 이름으로 대자보를 붙였다. 동국교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학 내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수행할 가장 좋은 매체는 글이기에, 학내언론이야말로 공론장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내 언론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동국대 언론 간담회를 열고 범 동국대 언론 연대체를 만들려고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함께 하려고 하는 다른 독립 언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술이나 먹자고 하거나, 처음부터 단칼에 거절하는 곳도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각자 자기 언론 매체에 대한 알량한 자존심만이 있었지 대학 언론의 역할이나 위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없었다.


동국대학교 교지는 학교 건물 입구의 가판대에 배치되어 무인 배포되는데, 주 독자층은 동국대학교 학생이다. 당시 나는 교지의 경쟁자가 교내의 학보 및 독립 잡지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동국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이하 대나무숲)[각주:6]의 기세를 넘볼 학내 언론은 없어 보인다.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인 페이스북에서, 대나무숲은 익명의 제보자와 관리자로 운영되는 공론장이다. 대나무숲이 정식 언론기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요즘 시대에 학우들의 의견을 모으고 전파하는데 가장 적합한 매체가 아닌가. 투고 글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 학기 주기의 출판물을 존재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동국 교지는 기록의 역할에 특화된 매체다.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페이스북 보도에 힘을 싣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고, 그것을 2017년의 교지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내 문제들이 소비되고 논의되는 주된 공간이 된 페이스북 자체는 현실의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적 소통 채널이기에, 학생들이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단순히 개인적인 삶의 불평과 불만으로만 사고하고 소비하는 경향에 일조하고 만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문제의식이 희박한 사회에서, 대학교의 주권을 가지는 학생으로서의 주인의식이 얼마나 생성될 수 있고, 그리고 생성되어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윤리와 규범, 가치와 정의를 대학과 사회 문제와 연결해 논하는 대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교내 언론, 특히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짧지 않은 맥락을 지닌 책을 펴내는 교지편집위원회는 그런 학생들을 기르는 현장의 공간이자, 그 지점들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줄 수 있는 담론의 장이 될 수 있다. 동국대학교의 종단개입 사태와 이에 저항하고자 몇 년째 분투하는 구성원들에 대해, 시간이 얼마나 흐르더라도 논의하고 정리하고 기록할 힘은 분명 교지만이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이들은 한 학기 한 권 출판에도 휘청거린다. 대학언론은 기성 언론과 분명 다르다. 그러나 어떻게 다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그 대학의 학생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대학가의 이슈를 주로 다룬다는 형식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의 대학, 대학 내에서의 언론이라는 관계에 따르는 역할과 위치를 고찰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때의 교지는 학생 운동을 위한 담론을 수입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국교지 편집실 한쪽의 벽을 다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학생들에게 빌려주곤 했다던 인문학사회과학 서적들이 빼곡히 차 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은 더 이상 이러한 담론들이 필요한 운동의 현장이 아니다. 내가 교지편집위에 몸담고 있을 때 서울대학교 교지 관악의 폐간호를 받았으니 당시 다른 교지들의 상황 역시 동국교지와 다른 바 없었다고 보이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와 대학 본부와의 공간 배정 문제는 최근에 일단락되었고, 교지 연합체는 뚜렷한 조직체계 없이 페이스북 그룹으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 언론이 박근혜 국정농단에 낸 의견서와 기자회견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고, 대학 학보 연합이 취재할 수 있었던 대선 후보는 심상정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교지를 비롯한 대학 언론이 생존에 실패한 것인가? 라는 질문 대신, 이는 대학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4.


사회현실과 척을 두고 대립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대학이 과연 지금 존재하는가? 사회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와 무기로서의 학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학문은 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가? (실상 그것들은 대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의 주인은 어디에 있나? 조용하고 성실히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가는 대다수 학생들 외에도 지금의 학생운동에서 당장의 싸움 너머에 새로운 대학과 사회상에 대한 지향점과 상상력을 가진 것이 얼마나 있는지, 대학 내부에 페미니즘과 퀴어 이외의 주제로 세미나나 행사가 얼마나 열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절망적이다. 교지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 내부에서의 사유의 실종과 파편화된 학생 사회 내 정치적 주체임을 자각하지 못한 개인들의 사이에서 허물어져 가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첫 번째 교지의 머리말에 적었듯,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가 여전히 눈감고 귀막지 않으면 비명이 들려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본부 역시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기업의 논리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 머리말에 나는 이 시대의 교지를 프리모 레비에 빗대어 썼다.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겪은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덕분이었다고. 꽤 비장한 결심이었다. 그러나 6개월 뒤 발간한 두 번째 교지의 머리말에는 그런 결심과 노력에 되돌아오는 비난들이 힘겹고 무거웠다고 썼다. 그래도 우리의 고발이 동국교지의 막다른 길이 아니라, 독자들의 더 깊은 소통과 연대로 이어지길바랐다. 두 번째 교지의 제호는 이상과 현실 사이였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는 지금도 살아있다.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바로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필자 소개]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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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한 주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1. 1981년 학도호국단 산하 문예반에서 매년 겨울방학에 모여 교지를 내는 임시기구였다가 1986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상설 기구로 변경, 1988년 교지편집위원회와 총학생회, 학교 간 삼자 합의로 학생회비와 별도로 교지대를 걷으면서 정식 언론기구가 되었다. 그러나 교지 배포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는 2007년 1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교지대 항목을 삭제했고,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교지편집위를 학내 언론사와 자치기구로 인정하지 않으며 언론사 통합과정에서도 제외되었다고 통보했다. 이후 광고비로 출판비를 충당하고, 교지 선배들의 모금과 편집위원들의 회비로 운영비를 대고 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노란 책을 들고 편집실을 찾은 사람들”, 『東國』 72집, 2015.03, p.93. [본문으로]
  2. 동국대학교 대학 미디어센터 산하에 소속된 학내 언론사는 <동대신문>, 교육방송국 , 영자신문사 , 동국대학원신문이 있다. 이외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와 학생자치언론 <앞담화>가 현재 활동하고 있다. (2017년 9월 기준) [본문으로]
  3. 2013년 9월 출간. [본문으로]
  4. 2013년 11월 개봉 [본문으로]
  5. 첫 교지 역시 그 고민에서 나온 산물로, ‘노답’이라는 제호 아래 대학의 의미, 아르바이트와 최저임금 1만 원, 우울과 학생 상담센터, 취업 문제를 한데 묶어 다뤘다 [본문으로]
  6. 2013년 12월 서울대를 필두로 대학마다 생기기 시작했다. ‘동국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비롯한 동국대의 대나무숲 부류의 페이지는 2014년 말에 생겼다. 기성 언론들 역시 2014년 말부터 카드뉴스를 앞다투어 제작하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실패한 인터뷰 몽상





박규민





졸업반 K는 협박에 면역이 된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유년기를 거쳐 서로의 변화를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우린 학교가 파하면 습관적으로 음반 가게로 가서는 음악에 대해 온종일 떠들곤 했다. 나는 얼마 뒤 문학에 빠져서 활자와 활자를 연결하는 일에만 골몰했으나 K는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음악을 섭렵, 패션과 미술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다방면의 문화를 체득했다.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하자 그는 나를 이태원으로 불러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K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이태원 거리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인간의 머리털로 구현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빡빡 밀었고 열대 우림에서나 어울릴 법한 반팔 셔츠, 그리고 쇠 장식이 매달린 까만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이 년 만이었나? 오래된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긴 간격을 두고 만난 참이었다. 어떻게 지냈냐, 오랜만이다 하는 통상적인 인사들을 빠르게 나누자마자 그는 좋은 술집을 알고 있다면서 어느 골목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이태원에는 커다랗고 높은 건물에 한 잔에 최소 만 원은 하는 비싼 펍들만 즐비한 줄 알았는데, 그는 자신이 그 동네에서 구른 경력을 증명하듯 뒷골목 구석에서 생맥주를 싼값에 파는 술집을 찾아냈다. 워낙에 복잡한 길목을 수차례 꺾어 들어갔으므로 나는 거길 다시 찾아가진 못할 듯하다. 이 글은 그곳에서 나눈 취중 대화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K가 무슨 협박을 듣고 살았느냐고? 그에 대해 더 상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그는 대학에서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전공했다. K의 대학 생활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시쳇말로 현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와 노래를 좋아해서 어느 노래패에 가입했더니 거긴 알고 보니 민중가요를 부르는 곳이었다. 그가 노래를 퍽 잘하는 걸 보고는 80년대 끝자락에 길거리에서 경찰이랑 백병전을 펼쳤던, 명절마다 무덤을 향해 대장정을 펼치는 한국인들처럼 여전히 대학에 얼굴을 비추는 선배들의 의식화가 시작되었다. K는 도대체 이 인간들이 뭘 경험했길래 이렇게 열을 내나 싶은 궁금증에 열심히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NL이니 PD니 하는 거대한 계보를 그때 알게 되었고, 도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 살기 힘든지가 궁금해졌다. 그 문제에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이러다가는 국보법으로 잡혀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갖 반국가적인 책과 논문을 읽어댔다. 하지만 K는 어느 순간 자기만의 망상에 빠지는 것 같다는 자각이 들어서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로부터 멀어졌다. 이후 페미니즘에도 탐닉했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즉 혼자 이루어지지 않을 변혁을 상상하는 기분이 씁쓸해서 사상에의 관심을 끊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K의 인생을 걱정해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남 걱정해주는 인간들이 많은데 왜 사회는 이 모양인가 싶을 정도로 풍부한 충고, 대놓고 말하면 꼰대질을 겪은 것이었다. 가령 문과가 취업할 길은 어차피 없으니 학점 따위 챙길 필요 없다는 선배들의 낭만적인 자조라든지 반대로 저렇듯 불만만 많은 놈들이나 안 되지 스펙을 잘 챙기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너도 좀 더 노력해서 살아보라는 질책, 혹은 우리 때만 해도 대자보도 좀 활발하게 붙이고 했는데 니네는 SNS에나 빠져 있으니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고학번 화석들의 힐난 같은 것. K는 그 걱정을 빙자한 협박들에 휘둘린 적도 있으나 결국은 다 쓸모없는 소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학에서의 시간들은 그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으니까.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사실 왜 대학을 와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었거든.” K는 그냥 중산층의 자식으로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대학에 와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 중에서 못나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 대학은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학문을 붙들겠다는 열의는커녕 그냥 대학에 가면 노는 줄 아는 연놈들이 태반이었고, 그러니까 수업 시간이 되면 신입생들은 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게 쓸모가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말은 비약이겠지만, 다양한 아카데미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유튜브로 언어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이 유일한 학문적 창구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K는 현재 서브컬쳐와 관련된 매거진에서 필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는 마지막 학기만 남긴 채 무한정 휴학 상태였고, 타투나 마이너 음악 같은 소수 문화에 대해 글을 쓰노라면 학교를 졸업하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다고 했다.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물론 학위는 받겠지. 그런데?” 나는 K가 지금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혼자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에 감정이 격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묘한 반항심이 일었다. 애당초 이 인터뷰의 주제는어차피 의미가 없어졌으니 본문에도 언급하지 않았지만당신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인가를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K는 대학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줄창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의 면전에서 대학을 변호하고 싶었다. 아주 무의미하고 허무한 공간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책 없이 대학의 쓸모없음만을 주장하는 건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만 해도 총장과 이사진의 비리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누군가는 단식 투쟁을 했고, 어떤 이는 45일간 고공 농성을 치렀다. K의 말대로 이제는 대학이 단지 제도권 교육 경쟁의 승리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 가는 축하 파티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괜한 희생을 치렀다는 건가?

 

K의 웃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웃느냐고 묻자 그는 내 표정이 행사 때마다 학교에 찾아오던 노래패 선배들의 그것과 비슷했다고 대답했다. 가끔 사람들이 대학에 대해 품고 있는 기대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어마어마해서 놀랄 때가 많다고 K는 또 말했다. 어느 쪽에서는 대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인재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다른 쪽에선 사회를 뒤집어놓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사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애들은 무슨 담론을 만들고 예전처럼 사회에 저항하는 따위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데 많은 이들은 대학이 기능을 못한다느니 어쩌느니 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왜 꼭 대학에서 그런 걸 해야 되냐?” K는 술값을 계산하면서 말했다. 원하는 인터뷰이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이제는 그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진보적 담론이나 사회 저항의 문제만 놓고 본다 해도 굳이 그런 걸 대학에서 실현하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니냐고. 대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이고 또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지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꼭 대학에서만 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나는 약간 취기에 오른 채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나도 어지간한 꼰대일지도 몰랐다.

 

대학은 그냥 거대한 안방 같은 거야. 다 같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 거지.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거나, 스타트업을 한다거나, 아니면 뭐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입시의 터널을 통과한 인간들이 꼴같잖은 자신감에 취해서 공상을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꼴이지. 아침이 다 지나가버린 시각에 잠에서 깨면 수습할 길 없는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K는 담배를 피워물며 마치 그날의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이태원의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K가 그토록 대학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술을 마시던 중에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냈었고, 임기 중에 학생총회를 소집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불발된 적이 있었다. 무슨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단지 낮잠이나 실컷 자려고 모인 인간들의 집합소. K는 서브컬쳐판에 몸담고 살다가 학교는 가능한 늦게 졸업할 예정이었다. 학교를 비로소 떠났을 때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일 것 같아서 두렵다고.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게으른 오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전부 패배주의자가 되어 있는 현실이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필자 소개]


박규민

1993년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영문과 재학.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등단.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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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말




이재임(외줄산책 편집장)


 

잡지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다. 산책자는 마주치는 것들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고 관찰하는 자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하나에 몰두하다가 갈 길을 잊지 않고, 감정과 사념들에 휩쓸려 주저앉지 않고, 권위나 원칙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지 않기를 바랐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고 오랫동안 몸담아 온 곳인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데 절박함을 느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다. 이 모호한 제호를 권영민 선생님의 글이 잘 규명해주신 듯하다. 결국 대학의 바깥은 없으며 탈구축으로서의 비판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빌려 머리말에 적는다. 심기용 편집위원은 글에서 탈대학이란 대학의 폐기보다는 대학의 재전유가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으니 필진들 간은 물론 잡지 전반적으로 공유된 취지라고 할 수 있겠다.

 

글들은 각각이 어느 하루의 시간대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실었다. 그것이 분명히 드러난 건 첫 번째와 마지막 원고이고, 묘하게도 겹쳐 보이지만 다른 패배주의를 이 잡지의 전체 분위기로 가져오게 되었다. 박규민 편집위원의 대학 졸업이란 마치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게으른 오전과 같다는 묘사에서 시작해서, 늦은 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해있는 지방대생의 이야기까지. 대학이라는 주제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슬픔, 좌절감이 깃들 수밖에 없는 듯하다. 두 번째 글에서 다룬 것처럼, 우리의 대학에서는 학내 언론 기구가 쓰러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일 수 있지만, 서울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에서 고민하는 지점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보았고, 오히려 지방 대학에서 하는 고민들이 대학의 문제들을 더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시훈 선생님의 글은 한정된 지면에도 불구하고 (지방) 대학 및 (지방) 대학생과 한국 현대사와의 관계와 그 변화를 고찰하면서 대학과 지방대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하기도 한 김현진 편집위원의 원고는 서울 수도권 대학생들과 지방대생들이 어떤 출구를 앞에 두고 마주하고 있기만 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출구는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마냥 읽기 쉽지는 않지만, 필진들이 오랫동안 해온 고민들을 압축적으로 풀어낸 원고들이다.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한다.

 



[필자 소개]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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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연재취지문]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10월에 발간된 독립잡지 <외줄산책: 탈대학>(이하 <외줄산책>)은 이 시대 대학과 대학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잡지이다. 탈대학이라는 도발적인 부제가 달렸음에도 <외줄산책>은 대학 외부로 부터의 변화나 대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다시 한번 새롭게 대학을 생각하기 위한 온기와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시대 대학은 쓸모없음의 쓸모마저 증명해야하는 수월성으로부터의 공세와 순수한 대학이라는 낡은 관념의 냉소 사이에서 무력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대학을 가득 채웠던 배움과 탐구를 통한 해방과 자유에 대한 열정도, 세계의 변화를 위해 시대를 몸으로 받아내던 투지도, 사회적 역동성과 성공에 대한 활기도 지금의 대학에선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거대한 받아쓰기 학원과 패배와 냉소, 회의, 빚의 행렬 하지만 그런데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짜증 섞인 강박감이 우리의 대학 위를 부유하고 있다. 대학은 대학생에게 어떠한 구체적인 상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들 스스로가 그렇듯 가토 슈이치의 표현처럼 기계적인 노예의 삶, 아주 성공한 기계적 노예의 삶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 누구도 우리가 거쳐 왔고 지금도 발 딛고 있는 이 공간의 퇴락에 대해 말하거나 묻거나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질문하고 비판하고 성찰하기보단 받아들이고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대학의 본령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대신 대학 포위한 수월성 우선주의와 타락한 실력주의의 신화가 이 물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지에 대한 물음보다 이것이 무슨 쓸모와 미래 소득을 주는지 모두가 그 질문에 매달릴 뿐이다.

 

  이처럼 퇴락하고 죽어가는 대학, 대학사회, 교육의 위기를 명분으로 한동안 많은 이들이 대학으로 벗어나기 전략을 대안적이라 여겨왔다. 김예슬 선언이 대표하는 대학자퇴 운동, 소장파 비전임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대학 외부의 지식과 학문을 위한 대안공간 운동 같은 것들이 바로 이 탈-대학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탈 대학은 대학 바깥에 해방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대학을 둘러싼 거대한 인식의 지층들에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대학이라는 지층을 쌓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이 싸움은 구체적 전선도, 후방도, 적도 아군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잔디밭과 카페의 테라스에서, 우리의 마음과 의식 속에서, 너와 나의 만남 속에서 지층을 새로 쌓고 기존의 퇴적층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외줄산책: 탈대학>은 세상에 딱 200부만이 존재하는 아주 작은 독립출판물이다. 그렇기에 접하기도,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지나쳐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출판물이다. 이에 대학을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대학연구네트워크>란 공간을 통해 <외줄산책>의 고민과 모색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연재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떠들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연재의 가장 중요한 취지이며 목표일 것이다. 이번 <외줄산책> 연재가 강의실과 잔디밭과 카페에서 함께 싸울 우리에게 공동의 발판이자 서로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본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에 <대학연구네트워크>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연재 될 <외줄산책>에 많은 응답과 관심을!


by 시훈

 

 

[연재 계획]

 

20171218머리말(이재임)

201712251. 실패한 인터뷰 몽상(박규민)

2018112.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이재임)

2018183. 현장으로의 초대(심기용)

20181154. 외줄타기_대학 바깥은 없다(권영민)

20181225. 만들어진 2부리그(이시훈)

20181296. 없는 출구(김현진)

201825맺음말(이재임)

 

[외줄산책 소개]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 wonderinglee@gmail.com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pg/singlelinewalk

 

 

[필자 소개]

 

박규민

1993년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영문과 재학.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등단.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심기용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게이로서 살아가다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 중.

동국대학교 큗 초대 회장.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7대 의장.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공동저자.

 

권영민

작가.

대학원에서 현상학을 전공했다.

저서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 공저셀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속 대담의 대담자 중 한 사람.

한국일보와 매일신문에 정기칼럼을 썼고, 쓰고 있다.

 

이시훈

대구에서 20대를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언저리 라이프로 보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 공동 창립자와 대표를 맡았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공동 설립 제안자를 맡고 있다.

 

김현진

영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학내 언론사인 영대신문기자로 1년간 재직.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에 다년간 참여.

서울과 대구의 전시회에 다수 참여했으며, 경제적 독립 후 대구에서

페미니즘 공부와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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