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라! 학생회! Ep.1 "왜 살려야 할까?" 어느 학생회장의 의심 



어느 반 학생회장의 고민


"너 후임 학생회장 안 할래?" "안 할래요." "..."


  이번 여름, 선배를 찾아서 부단히도 돌아다녔다. 반 학생회장 임기를 석 달 남기고 차기 출마의 싹수가 보이는 후배가 전무하여 고심하던 시기였다. 학생정치조직에 몸담았던 선배부터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한 전임 학생회장 선배, 타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낸 선배까지 두루 만났다. 그들이라면 정답을 알려줄 것 같았다. 왜 학생회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언제쯤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지. 내 앞에 펼쳐질 전망이 무엇인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잘 정리된 정답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 고민은 어떻게학생회를 살리느냐, 그 방법론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대체 학생회를 살려야 하는지에 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갈려나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로 학생회를 살려야하는 명분이 강력하다면 학생회 재건 방법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나조차 학생회가 왜 필요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할지 곤란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니, 근본적 회의가 필요했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학생회야


   사실 우리는 모든 답을 알고 있다. 왜 학생들이 안 모이고 왜 사업이 실패하는지, 왜 학생회로 역량이 모이지 않는지 다 알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대학생은 바쁘다. 학점, 알바, 동아리, 스펙, 고시 준비로 뿔뿔이 일터와 도서관에 흩어져 있다. 과방에 짱박혀서 호족 노릇하던 고학번 선배도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이것을 경쟁사회의 일면이라 부르고 다른 이는 낭만의 상실이라 하고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적 파편화라 한다. 지칭하는 기표는 다르지만 다 똑같은 것을 가리킨다. 취업난과 생활고, 20대의 생존은 너무도 힘들다.


   이 가운데 학생회는 조직 성격상 당면 과제가 주어지지 않는 한 존재감 자체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입학과 동시에 학생회원이라는 귀속지위가 주어지니, 정당이나 정치단체, 노동조합에 비해 조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수 (예비) 엘리트 계층을 상징하던 과거 대학생의 사회적 신분과 달리, 지금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은 상황에서 대학생은 그리 특별한 계층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는) 독재 타도와 민주화 쟁취를 이뤄낸 지금, 학생회의 일상적 조직 기능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즉 엘리트라 불리기도 멋쩍은 대학생들이, 반독재 투쟁 등 사회적 직무도 없는 마당에, 투쟁기구도 아닌 학생회를 어떻게, 그것보다 왜 유지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학생회 모델이 일명 복지학생회다. 이 학생회 모델은 학생회를 학생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보고, 학내 복지, 거버넌스 조금 더 확장하자면 한국의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이슈파이팅을 하고 학우들을 조직한다. 하지만 권리를 찾아오겠다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많은 경우 학교 행정에 학생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반영되지 않는다.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 보직 교수들은 힘들다, 어렵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학내 주요 의사결정 기구에 학생들은 겨우 참관권이나 아주 일부의 의결권만을 가진다. 교육권리의제 역시 학우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학우 파편화가 또 문제다. 성과가 뒤처지니 학생회는 또 위기를 맞는다.


  이렇듯 학우 대중이 텅 빈 집단이 되고, 의제를 중심으로 학생회의 역량을 모으는데 큰 비용이 드는 현재, 학생회의 정당성과 존재 의미는 옅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는 학우들과 괴리되어 있고 집행부 하는 사람들은 학생회 하는 사람들이라고 명명되어 타자화 된다. 이제 학생회는 학생회장과 집행부뿐 아니라 학생회원 전원과 그 의사결정 구조를 모두 포괄한다는 선언적 수사가 지겨울 정도다. 학내 투쟁기이거나 투표율 50%를 끌어 모아야하는 선거 기간이 아닌 이상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에 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 번 흔들리면 어지럽다


천 번을 흔들리면 그냥 사람들이 짜증나서 떠난다


  대학생이 살아남기 어렵다보니 학우가 안 모인다. 이 점은 학생회를 운영할 때 생기는 애로상황 대부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강연사업을 굴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요. 개강총회에 사람들이 안 와요. 정족수가 안 차요. 등등대중 동원이 어렵다보니 2, 3차 문제들도 생긴다. 학우들의 지지를 힘입어 전개되는 교육 투쟁이든, 학생회 공약사업이든,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니 기획한 입장에선 야속하기만 하다. 이렇게 학생회에 데인 사람들은 집행부를 떠나고, 빈약해진 기획과 미미한 성과에 학우들은 또 등을 돌리고, 잘 해도 욕을 먹고 못 해도 욕을 먹고 더 많은 경우 아무런 피드백도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떠한 성장도 성취도 손에 넣지 못 한 채 학생회를 떠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렇게 학생회를 하기 힘들다보니, 집행부원들은 누굴 위한 사업을 굴리고 누굴 위한 기조를 짜는지 회의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많은 경우 대중 사업의 참석자 대부분이 그것을 기획한 집행부,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며, 결국 사업은 집행부의 부흥회가 되고 만다. 교양 사업을 굴려서 오늘도 집행부의 지식은 향상되지만 대중적 합의지반을 만든 것 같진 않아 씁쓸하다.


근데 넌 왜 해?


  작년 겨울, 내가 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했을 때는 우연한 불행에 빠져 방치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학생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에게 직면한 문제를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공동체가 함께 대안을 모색하거나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업 문제든 인권 문제든 혹은 좀 더 거대한 이야기든 개인이 해결하긴 어려우니까. 학생회가 의제도 생산하고 시스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일단 내 기층 단위가 상상된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 제일 먼저 부딪혔다. 반 사람들은 소속감도 없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집행부 친구들만 애쓰고 상처받았다. 우리가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했고 개선도 많이 하려 했다. 원래도 나이주의와 권위주의를 경계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더욱 조심했다.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마음껏 했고 TF팀도 굴려서 참여 벽도 낮췄다. 근데 운영위원회든 회의든 사람들이 오질 않았다. 학생회가 무너진 것의 여파인지 뭔지, 학회도 같이 쓰러져갔다. 시스템을 만들고 의제를 굴려봐야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과/반 등 기층 단위 학생회의 경우 학생회장과 집행부원들이 학생회원들을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차적 신뢰 형성이 자치의 기본이다. 때문에 돈과 시간 등 가용 자원이 많고 진로에 관해 큰 걱정이 없거나 없어도 되는 처지의 사람들, 활동 증명서가 발급되는지 안 되는지, 스펙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불분명한 학생회 활동에 자신의 여유를 투자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것들을 희생시킬 결의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학생회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은 얼마 없다. 따라서 소수의 사람들이 갈려나가게 되고, 특히 학생회장에게 가중되는 부담은 점점 심해진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잠수를 타거나, 임기 중에 다른 활동을 모색함으로써 자아를 찾으러 가거나, 모든 것을 꾹 참고 안고 가는 선택지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학생회장의 고단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리고 대중 참여가 거의 없는 부흥회가 지겨운 사람들은 차마 다음 학생회를 꿈꿀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되거나 최소한의 기능만을 유지하는 형식 학생회만 남게 된다.


   근데 문제는 여기다. 그럼 학생회의 부재나 최소한의 학생회가 남은 것이 나쁘냐는 것이다. 사실 나는 소수의 인원을 갈아 넣고 고통에 빠트려서라도 학생회가 존속되어야할 가치가 있는지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투사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며, 그저 함께 모여 무언가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기획 회의 몇 번 잡고 밤새 준비해서 새맞이 행사를 잡아도 1학년들은 재미없을 것 같다며 단체로 따로 저녁 먹으러 가고, 그렇다고 사업에 잘 참여하자고 독려하면 꼰대 소리, 운동권 소리 들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앞서 밝혔듯이 우리 반에는 차기 학생회장으로 나갈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비대위장 내지는 학회장을 맡아서, 차차기 학생회 재건의 기반을 다져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짓도 학생회의 기능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고민해보겠지만, 학생회를 왜 굴려야 하냐는 질문은 너무 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낼 줄 알았지?


훈훈하게 막 그렇게 끝낼 줄 알았지?


  뭐 그래도 몇 달 고민해보니 파편적으로나마 두 가지 잠정적 결론을 낼 수 있었다. 1) 단과대, 총학생회의 하위 기구로서, 학내 의제와 교육 투쟁의 힘을 싣기 위한 기층 조직으로서 과/반 학생회는 필요하다. 2) 적어도 기층 학생회만큼은, 실적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서의 동반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 있는, 이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공동체다. (혹은 그럴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결론도 얼마 안 가 깨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결론이 반드시 학생회 존속 내지는 부흥의 필요성에 무게를 실어주지는 않는다. 이 질문들이 도전받는 그 순간, 또 다시 나는 데카르트마냥 회의의 심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실 그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학생회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거나, 학생회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하거나. 후자의 경우 각자 자교의 역대 선거 홍보물을 보신다면 다 비슷비슷한 대안을 내놓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보면 사실 우리의 선배라고 해서 뾰족한 정답을 찾은 것 같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제 학생회 선거철도 슬슬 다가오고 하니 학생회를 어떻게살릴 것인지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회를 굴리는 게 너무 힘든데도 살려야 하는지 한 번 고민해보자. 관성적으로 학생회장 세우느니, 각 잡고 마주앉아 왜 학생회를 해야 하는지 집행부원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도움 될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한 번쯤 거대한 전제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by 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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