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구네트워크 정기연재 프로젝트 : 살아남아라! 학생회!


들어가며


  학생회, 이 말을 들으면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가나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남은 공동체일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힘들었지만 보람찬 활동으로 기억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학생회라는 말은 아무런 생각이나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멀기만 한 대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점 치열해지는 취업경쟁 속에서 이제 대학생들에게 있어 대학은 자신들의 활동이 지속되는 현장이 아니라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후에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발판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학생들이 처해있는 현실이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동안 학생회라는 조직이 이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측면도 존재합니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학생회들은 전체사회의 변화라는 큰 목표와 당장의 학생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 해결을 충분히 연결·조화시키지 못하면서 외면 받았습니다. 반대로 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학생들의 이권을 지키겠다고 출범했던 학생회들 역시 오히려 소소한 복지사업들에만 천착하면서 경직성 비용[각주:1]에 파묻히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결국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회의 패러다임 변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학생회와 학생들 사이의 거리는 차츰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학생회를 하는 사람들은 눈물 좀 닦고...

 

  이렇게 보면 현재 학생회라는 조직 혹은 운동이 처해있는 현실이 결코 밝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러면 학생회는 사회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조직일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학생회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학생회는 도대체 어떤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학도호국단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건전한 학생자치단체입니다!

 

  본래 학생회는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 학원민주화운동과 함께 시작된 단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승만 독재정권은 사상통일과 애국심 함양이라는 명분하에서 중등교육 이상의 학교들에 어용 학생자치조직인 학도호국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상통일은 말이야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승만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반공주의 이념을 모든 학생들에게 주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도호국단은 군사문화를 바탕에 두고 교련과 같은 군사교육을 수행하는 기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이승만의 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은 커져갔고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학생들의 총의를 모으고 정치운동에 학생들을 결집시키는 단체를 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생회의 뿌리입니다. 당시 제대로 된 근대교육을 이수한 사람 자체가 희소했던 상황에서 학생들은 억압받는 대중들의 현실을 설명하고 운동을 직접 조직할 수 있는 주체들로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이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과 더불어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와 학생운동의 성장은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 독재정권의 역사를 따라 이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학생회라는 조직의 탄생과 성장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희생된 절대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과 시민들과 함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더 평등한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열망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따라서 운동의 언어를 구축할 지성인의 역할이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 오늘날 학생회는 더 이상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사회가 불평등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운동이나 정치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되어도 학생회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2011년 만평인데 2017년에도 적용되는 건 무슨 상황...?

(출처 : 201161일자 한겨레 만평)

 

  학생회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에 입각해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당위적인 측면에서 대학 역시 민주주의의 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란 그 조어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demos)의 자기통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학교 역시 민주주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구성원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소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학생회라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필요의 측면에서 여전히 학생들이 당사자로서 직접 피부로 느끼는 사회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민주화나 관료제적 합리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학생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이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여전히 학생사회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인권침해문제의 경우에는 (학교당국이 운영하는 인권센터들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구제·처벌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학생들의 직접적인 의견교환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사건의 재발을 막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운동, 등록금을 낮춤으로써 좀 더 많은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어내는 운동 등은 누군가가 대리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학생회와 같은 정치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대학이 갖는 전사회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교육기관임과 동시에 한 국가의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대학이라는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는 곧 지식과 기술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확산되며 실현됩니다. 따라서 대학을 지배하는 논리를 두고 토론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정치적인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단기적인 이윤의 논리에 의해서만 대학이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단기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학문과 예술들은 점점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위축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는 학문·예술의 자유와 다양성은 위축되어버리겠죠.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함께 논의를 통해 극복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시민들, 즉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조직으로서 학생회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다. 한동안 유행을 끌었던 이 게임이 제목의 모티브다.

 

  결국 정치의 필요성과 그 공간이자 현장으로서의 대학이 갖는 중요성·특수성들이 겹쳐질 때 그곳에서 학생회의 필요성이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중요한 학생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개복치 마냥 돌연사하는 학생회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도대체 문제가 뭘까요?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자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남아라! 학생회!>에서는 앞으로 총 3부에 걸쳐서 연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1위기의 학생회에서는 학생회가 제대로 설립조차 되지 않거나 재생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학생회장단 투표가 무산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워본 경험이 있는 많은 학우들에게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무기력한 학생회에서는 학생회는 여차저차 세워졌더라도 운영에 있어서의 미숙함이나 실패가 학생회의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3오늘날의 학생회에서는 사례를 중심으로 학생회의 역할과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이제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경직성 경비(uncontrollable expenditures). 행정기관 등의 조직에서 과거에 진행했던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음대로 삭감하거나 조정할 수 없는 경비를 말한다. 예컨대 과거에 간식사업을 진행했다면 매년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지출을 간식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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