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ilogue 서른의 잔치는 끝나도 스물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시 중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20대를 치열한 학생운동과 함께 보냈던 이들이 10여 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어 술자리에서 다시 만난 상황을 노래한 시입니다. 시 안에 그려진 풍경은 자못 씁쓸합니다. 국가의 억압에 맞서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던 이들은 이제는 30대가 되어 사회에 적응하고 현실에 자신을 밀어 넣으면서 굴절된 지 오래입니다. 시인은 이런 쓸쓸한 광경을 바라보며 고백합니다. 치열한 투쟁의 시기에 사랑했던 것은 운동 그 자체보다는 운동이 만들어낸 분위기, 사람들, 그 시대적 동질감이었다고 말입니다. 80년대가 주던 시대적 동질감은 90년대와 함께 퇴조하고 있었고 이제 운동도, 잔치도 끝나고 그 시절을 눈물 흘리며 회상하는 것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슬프고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시인의 자조어린 읊조림이 이러한 멜랑콜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1990년대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까요. 이 시를 포함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 베스트셀러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러나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80년대 학번을 살아갔던 이들이 운동을, 잔치를 끝마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면 그 무엇도 시작해보지 못한 오늘날의 20대에게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긴 전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노동유연화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보장 축소, 2000년대를 지나며 완전히 세가 꺾인 경제성장 등의 이유로 오늘날 20대는 생존을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감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스펙들을 갖춰야 한다는 담론이 떠올랐습니다. 학벌부터 성형까지 7종 스펙이니 9종 스펙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모든 스펙들을 관리해도 취직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무언가를 갖추는문제가 아니라 포기하는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 연애 등 갖춰야 할 것들의 리스트만큼이나 포기할 것들의 리스트가 길어지면서 N포세대란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점점 강해지는 경쟁은 비단 20대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모든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상화된 불안이죠. 그러나 운동 혹은 잔치를 끝낼 수 있었던 세대들과 운동은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세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1980년대 운동(잔치)의 시기에는 탄압과 고통으로 힘들었어도 함께 이뤄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기에, 동지가 있기에 강력한 버팀목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호황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잔치를 끝낼 수 있는 출구가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잔치를 끝마치고 났을 때, 그곳에는 아쉬움뿐만 아니라 매력이, 현실의 씁쓸함을 보충하는 낭만적인 회고가 뒤섞인 멜랑콜리가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N포세대는 그 어떤 잔치도 제대로 시작해본 적이 없습니다. 2012년 등록금 투쟁이 좌절됐을 때 청년 세대의 정치적 욕망은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야 했습니다. 이따금씩 2013안녕들하십니까대자보 열풍처럼 억눌렸던 정치적 요구가 분출된 적은 있지만 그것이 유의미한 사회적 의제로 설정된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잔치의 출구는 고사하고 입구조차 찾을 수 없으며 함께할 정치적 동지는 고사하고 고통을 함께 나눌 친구나 애인조차 만들기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의 대학생들, 젊은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멜랑콜리에서 매력과 낭만적인 회고를 빼버리고 남은 것, 즉 일상화된 우울·무기력·냉소뿐입니다.

 

잔치가 아닌, 유예할 수 없는 나의 삶을 위해

  과거의 운동은 거대한 차원에서의 변화를 위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을 유예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유예된 삶의 고통을 보충해주는 부분들이 다름 아닌 시대적인 동질감, 동지들, 분위기들에 대한 낭만화였습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이루는 낭만화된 운동의 상()이 곧 잔치입니다. 그러나 잔치는 끝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오래된 낭만은 깨어지고 자신의 삶을 미뤄두더라도 그 삶이 이후에 안정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습니다.


  이것이 학생회를 더 이상 유지시킬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잔치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날 것 그대로의 경쟁에 던져진 삶뿐입니다. 각자도생의 전쟁을 치르기에 여념이 없으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 정치가 발생할 수 없고, 정치가 존재하지 않으니 정치를 위한 기구들이 사라집니다.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고, 학생회를 견제할 학생들이 없으니 학생자치기구들이 부패하고, 신뢰는 깨지고 제대로 되는 사업은 사라집니다. ‘위기의 학생회에는 이처럼 잔치가 끝났다는 시대적 조건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잔치가 끝난 이후에 우리들은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삶을 유예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대학은 점점 개별 구성원들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만약 삶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인식된다면 사람들은 그 현장 안에 머무르면서 그곳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힘과 지혜를 모으겠죠. 그러나 대학이 현장이 아니라 그저 4년만 지나면 뒤돌아볼 새도 없이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정류장에 불과하다면 누구도 곧 떠나버릴 공간을 위해 자신의 노고를 들이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돌이켜 생각해봅시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이제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이제는 취업만을 바라보며 삶을 유예합니다. 그런데 취업을 하면 우리의 유예된 삶이 돌아올까요? 아니죠. 그때부터는 승진과 봉급을 올리기 위한 경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요? 시시각각 좁혀 들어오는 정년의 위협과 노후대책을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경쟁의 순환 속에서 유예된 삶이 돌아오는 순간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속한 공간 안에서, 그 공간을 현장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내려는 정치적 행위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유예해도 돌아오는 것은 쉼 없는 경쟁과 자기통제뿐이라면 그 짐들을 내려놓고 내 삶을 억압하고 있는 조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서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에서의 삶을 더 이상 유예할 수 없기에 우리는 학생회를 만들고 정치와 운동을 복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생회에게 살아남아라!”라고 외쳐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의 운동은 두 가지의 유예로부터 벗어나 우리들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첫 번째 유예는 과거의 운동이 답습했던 유예입니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니 당장의 삶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호소하는 것이죠. 그러나 역사적 사명감이라는 낭만화 기제를 빼내버리고 나면 그것을 유지시켜줄 동력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체 사회의 변화와 우리들의 삶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연결고리가 없다면 그 누구도 그 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유예는 이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유예입니다. 그런 거대한 사회적 변화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는 허구일 뿐이니 당장의 경쟁에나 집중하라는 지배질서의 정언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따른다고 해도 거기에는 불안한 삶의 굴레만이 이어질 뿐입니다. 결국 그 두 가지 유예 모두로부터 벗어난 운동·정치를 복원할 때 학생회가 비로소 학생사회 안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학생회는 대중추수주의나 조합주의로 빠져서 지엽적인 문제들만을 처리하다가 서비스업체로 전락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엘리트주의에 빠져서 당장의 현실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그 현실에 고통 받는 이들을 단순히 동원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제자리에 머물러서도 안 되지만 멀리 가자고 말만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분투하되 멀리 가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유예할 수 없는 삶에 말을 거는 올바른 방식이자 곧 대중운동이 형성되고 움직이는 방향이 아닐까요? 결국 오늘날 학생회를 하는 우리 모두에게 간절한 것은 학우들의 더는 유예할 수 없는 삶에 말을 거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실천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안타깝게도 그 답을 대학연구네트워크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는 그러한 고민을 더 치열하게 해보고자 합니다. 살아남아라! 학생회!1부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처해있는 위기의 징후들을 스케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학생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현상 차원에서의 간단한 제도적 해결책을 제안해보는 것이었죠. 그러나 앞으로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살아남아라! 학생회!2부를 준비하면서 더 깊이 있는 내용들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대학이란 무엇인지, 과거 학생운동의 지평 안에서 대학담론은 어떠했는지 등을 묻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것들을 계승하고 어떤 것들을 비판하고 기각할지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조만간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추후에 공개 세미나로 돌아올 예정이니 학생회에, 학생운동에 아직 관심이 남아있는 분들이라면 그 세미나에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y 미미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8 열정페이, 극복할 수는 없는 걸까?



  지금까지의 글에서 전술했듯 학생회는 위기상황수 년째 위기상황이라고 말을 하지만에 봉착해있다. 그 이유는 과거와 달리 숙련되고 정제된 인력이 부족하며 예산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력부족과 예산부족, 이 두 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이상 학생회가 학생활동가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비해 (학생정치의 침체로 인해) 학생회 활동은 더 힘들어진 반면 학생회 활동이 제공해주는 메리트는 딱히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학생회 활동은 디메리트가 될 우려마저 있다. 오늘날 취업요건은 훨씬 강화되었으며 학생회활동은 기업에서 그다지 반기지 않는 활동이력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이렇듯 메리트는 적으면서 학생활동가들에게 노동에 뒤따르는 적절한 보상조차 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야, 너희 장학금 받잖아

 

장학금은 '임금'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다수의 학생회는 약소하나마 보상을 제공하기는 한다. 정말 약소해서 문제일 뿐이다. 가장 주된 보상책은 장학금 지급이다. 학생회 임원진에 대해 공로장학금의 명목으로 등록금을 감면해준다거나 혹은 근로장학금 TO를 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지급 주체가 학생회가 아닌 학교라는 점이다. 우선 사실상 활동가들의 노동을 통제하고 그 효과를 보는 사용자는 학생회다. 그런데 현재의 학생회 장학금 제도는 사용자인 학생회가 지급해야 할 급여/비용의 책임을 학교 당국에 전가하는 문제가 있으며사실상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노동이 아니다보니 학교와 학생회의 관계에 따라 언제라도 장학금이 없어지거나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회는 학생들의 자발적 결사체이자 조합으로서 학교당국 혹은 기타 사회의 여러 기관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큰 존재의의인데, 경제적으로 학교에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인 투쟁 전략을 구사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따라서 위의 방식은 적절한 보상 방식이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우리는 학생회비를 통해서 활동비를 충당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금새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회는 재정이 충분하지 않다. 재학생이 2만 여명 되는 4년제 대학의 학생회는 대개 1년에 5000만원 정도의 재정을 실질적으로 운용한다. 이 중에서 총학생회 선거와 차기 학생회에게 이월해줄 금액을 제외하고 나면 많아야 500만원 남짓의 여유가 생길까 말까 한 정도이며,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사안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비로 사용되거나 예산이 부족한 다른 사업에 추가적으로 지원된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로부터 받은 장학금을 쏟아부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마저 볼 수 있을 정도다. 


오늘도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인 학생회의 도비들...

  

  재정 외적인 면에서의 문제도 존재한다. 많은 학생들은 이미 학생회의 존재 의의에 대해 회의적이며 자신들이 납부한 학생회비가 그들만의 리그인 학생회 사람들의 급여로 지출된다는 데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학생사회 내부의 종사자들조차도 학생회는 무급 봉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디자인 등의 전문인력이 필요한 일에도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한다결국 불쌍한 우리의 학생회 도비들은 무급 봉사로 착취당한다. 학생회라는 조직이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회의비, 교통비 등이나 지원받을 수 있으면 다행일 따름이다. 종합해보자면 재정 내적인 면보상을 제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학생회의 재정, 재정 외적인 면학생사회 비/종사자들의 거부반응, 예결산안 처리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문제 해결이 난망하기만 하다.

 

누구도 일하려 하지 않는 학생회


이제 이런 책이 유행이라던데...


  이는 어떠한 문제를 가져오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학생회의 영속성을 파괴한다. 학생회의 존재 의의와 기존 담론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고민하는 학생회는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학생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제 개인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회의를 참석하며 의결기구 혹은 기타 학생단체 내지는 본부와 싸우고, 스트레스를 받고, 밤을 새고, 학업을 포기하고, 억울하게 욕을 먹기도 하고, 1년 동안 모든 일상을 학생회로 대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약간의 성취감과 피폐해진 심신만이 남을 뿐이다. 학생회의 일정을 따라가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과외도 알바도 힘들고 기껏해야 학교의 근로장학금 정도 밖에는 없다. 그런 현실에 노출된 개개인은 회의감을 갖게 되고 많은 경우 1년 이상 몸담지 않고 학생사회를 등지게 된다. 다시 말해 학생사회에 종사하는 것은 더 이상 어떠한 유인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많은 일에 누가 뛰어들겠는가? 개개인의 활동 감소는 재생산의 가장 큰 적이다. 결국 이는 학생회 순환의 흐름을 끊어버리며, 다양한 담론들이 제대로 실현되거나 논의되기 어렵게 만든다. 학생회를 벗어난 의제 중심의 운동(노동권, 성소수자, 여성 등)이 최근 대두된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는 대학본부와의 협의를 통해 확정적이고 안정적인 보상을 확약받는 것이다. 이는 몇몇 대학(학생회의 독립성을 위해 장학금 배정을 거부한)을 제외하면 상당히 많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로는 학생회 재정의 확충 및 활동비 보장이다. Ep.5 학생회비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들에서도 학생회비에 대해 다루었다. 학생회비는 80년대 이후로 재정적 답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다양한 제도적 개선과 인식 변화를 통해 재정 확충을 꾀해 볼 수 있다(물론 필자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나서 활동비 보장 규정(교통비, 숙박비, 식비, 회의비 등)을 통해 최소한의 부분이나마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해결책이라고 말해놓았지만 굉장히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 문제는 학생회에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학생회의 열정페이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짚어보았다. 후일 기회가 된다면,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인식변화/재정변화/사회변화와 함께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 돈 쓰며 갈려나가는 학생회 도비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 언제나 학생사회에 대한 헌신만으로 일하는 그들에게 존중을 보여주길 바란다


by 완도김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7 학생사회 양날의 검, 친목


  우리는 지금껏 학생회 재생산의 실패, 동기부여의 실패, 선거무산, 학생회와 학교당국의 관계에서의 전략 부재, 학생회비 납부율 하락, 학생회 예·결산안의 부실함 등 굵직한 문제들을 다뤄왔다. 이들 문제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학생회의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느낌이 다른, 새로운 문제점 하나를 더 짚고자 한다. 바로 학생회 집행기구의 친목기구화라는 문제다. 누군가의 당혹감이 담긴 질문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 친목이 무슨 대수라는 거야?”

 

학생회의 친목, 나쁠 게 있나?


아니, 친목이 뭐 어쨌다는 건가?


  사실 이러한 반응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친목(親睦)이란 말은 서로 친하여 화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학생회 집행부도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인데 서로 친밀감이 있어서 화목해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만약 집행부 구성원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심해서 제대로 분업이 이뤄지지 않고 각자가 일을 떠맡아서 진행한다면 그 집단의 업무효율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친목은 학생회라는 조직에게 있어서 플러스가 되는, 아니 더 강조하자면 필수불가결한 요소면 요소였지 문제적인 요소라고 생각되기는 곤란할 것이다.


  필자도 어느 정도의 친목이 학생회의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목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단에서는 언제나 양날의 검으로 작동한다. 친목이란 개인의 기호와 공동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친목에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기 마련이며 결국 경험의 코드를 공유할 수 없는 누군가가 소외되는 형태로 집단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전체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친목은 전체집단 내부에 여러 개의 소집단을 만들어 이들 간의 사이에서 충돌을 빚어낼 수도 있다. 결국 규모가 있는 집단에서는 단순한 개인적 기호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동경험을 넘어서서 다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중심축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학생회의 기조가 되고 목표가 된다.


  결국 함께 모여서 일하고 있는 우리 집행부 구성원들이 어떤 학생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동기부여가 없는 상황에서 친목만을 조장하려고 한다면 언제든 그 친목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소집단의 집단사고라는 문제점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공통의 목표가 뚜렷하고 단합이 뛰어난 학생회라 하더라도 친목집단으로 변질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학생회가 처해있는 구조적 조건과 친목집단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만나서 학생회의 크나큰 걸림돌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학생회가 처한 구조적인 조건이란 무엇일까? 첫째 조건은 학생회 집행부에 대한 학우들의 무관심이라는 조건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연재분(1)에서 충분히 다뤘으므로 더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둘째 조건은 학생회 집행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책의 부재이다. 이 역시 바로 지난 에피소드(6)에서 다뤘던 내용이다. 복잡한 예·결산안 처리와 같은 문제에서 학생회 집행부의 활동을 학우들이 혹은 학생 대표자들이 견제하고 감시할만한 제도적 방안들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학생회 집행부의 양심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공적 사안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마치 화약처럼 깔려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넌 아닐 것 같지? ㅎㅎ....


  여기에 도화선을 놓는 것은 바로 집단사고(groupthink)의 문제점이다. 한국심리학회가 2014년 발간한 심리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집단사고란 집단 의사 결정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응집력과 획일성을 강조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의사 결정 양식을 말한다. 이러한 집단사고의 대표적인 예시이자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 외교정책결정과정이론에 한 획을 그은 제니스(Janis, 1982, 1989)의 연구였다. 제니스는 1961년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의 특별자문위원회가 쿠바의 픽스만 침공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가 큰 낭패를 본 사건을 분석했다. 미국 대통령의 정책자문위원회라면 분명히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전문가들이 참가했을 텐데 왜 픽스만 침공이라는 황당한 작전에 만장일치로 찬성을 하게 된 것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제니스는 서로 강한 유대감으로 묶여있는 집단에서 이러한 유대감을 깨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심리적 기제가 반대의견을 위축시키고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집단사고가 비합리적인 정책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규명된 것이다.


  애초에 그 분석의 대상이 정책결정이었던 만큼 이 문제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학생회에게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내부 집단의 결속력이 뛰어난 것도 좋지만 친목집단으로 점점 변화할수록 학생회 집행부 역시 집단사고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집행부 전체 회의를 가정해보자. 다른 부서에서 낸 사업이 맹렬한 비판을 받고 나아가서는 완전백지화까지 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친목과 유대감으로 묶여있는 학생회 집행부라면 실제로 이를 비판하는 정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결국 결함투성이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채 집행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는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관심사와 문제에 대한 비교적 유사한 관점을 공유하는 학생회 집행부에서 야심차게 사업을 준비했지만 학우들의 반응이 차갑기 그지없는 사업들 말이다. 이런 사례는 주로 강연사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연사업을 기획하는 당사자들에게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자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우들에게는 인지도가 부족한 연사를 섭외하는 경우다. 집행부 내부에서의 집단사고가 일반 학우들의 관심사와 괴리된 결정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업으로 좋은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학생회비를 낭비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이렇게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도화선은 곧장 화약과 만나 맹렬하게 폭발한다. 먼저 학생회를 견제할 만한 충분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졸속사업에 투입되고 낭비되는 자원들이 늘어난다. 다음으로 이러한 학생회의 행태가 누적되다가 폭로되거나 터져 나오면서 학우들의 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다시 곤두박질치게 된다.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줄어들고 학생회 집행부는 다시 고립되면서 응원을 받지 못하지만 견제도 받지 않는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학생회 집행부가 내집단의 결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생들과 소통을 단절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로 후퇴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학생회의 집단사고가 불러일으키는 비합리적 정책결정들은 이렇듯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버린다.

 

동성사회적 사고까지 더해진다면

  그런데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고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흔히 호모소셜(homosocial)’이라고 부르는 동성사회의 폐쇄성이라는 문제이다. 동성사회란 미국의 비평가인 이브 세지윅(Sedgwick, 1985)이 제시한 용어로서 사회적으로 성별이 동일하다고 인정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사회적 유대 내지 연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들 동성사회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젠더 역할을 서로 확인하고 이에 미달하는 이들을 배척하면서 점점 젠더 역할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남톡방 문제를 통해서 불거진 대학사회 내 동성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의 문제


  예컨대 한동안 대학가를 뜨겁게 달궜던 남톡방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남톡방 사건을 통해서 남학생들이 카톡방에 모여서 서로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평가하며, 소위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취향들(ex. 축구, 게임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강화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남성성이 주로 여성에 대한 통제력, 여성에 대한 우위 내지 지도력을 갖추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바로 그 남성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강화해주는 과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성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과정이 폐쇄적인 단톡방의 구조(, 외부에 대한 익명성)와 폭력적인 문화(포르노 등을 통해 재현되는 성폭력에 친화적인 문화)라는 기폭제를 만나 폭력적인 언행들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학생회 집행부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2015년과 2016년을 달궜던 남톡방 사건들 중에서는 학생회에서 인권관련 문제들을 다루던 집행부원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들도 있었다. 이는 친목을 위해 조장한 동성사회적인 유대감이 언제든 폭력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실제로 오늘날 학생회 중에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와 잦은 회의를 거치면서 소위 뒤풀이로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여학생들은 (집에서의 통금시간이라던가 자취금지 등의 이유로) 빨리 귀가해야 하는 반면에 남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술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집행부 안에서의 성비와 무관하게 친목을 다지는 공간에서 남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동성사회적인 유대를 구축하면서 여성들을 배제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사회적인 유대가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로 변화하지 않도록, 언제나 집단 내의 친목문화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신뢰를 주어야 하는 학생회 집행부라면 더더욱 말이다.

 

스스로를 견제하고 성찰하기 위한 제도적 고안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안의 친목이 건강한 것인지 아니면 폭력적인 것인지를 늘 성찰하기 위한 제도적 고안이 필요하다. 제도적 고안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거창한 것들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학생회칙을 개정한다거나 기구를 신설해야만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루틴(routine)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이 느끼고 있을 서로 다른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서로의 문제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을 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뒤풀이를 포함해서 한 주간의 학생회 친목활동에서 불편한 점이 있거나 고민이 드는 점이 있다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이때 일부러 비판점을 제시하는 데블스 어드버킷(Devil's Advocate)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러한 대화의 시간을 통해서 단위 내에서 차별과 소외를 예민하게 느끼는 구성원들(잠수함의 토끼들)이 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학생회 집행부 안의 친목이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니면 친목활동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도맡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그 사람의 취미와 취향을 중심으로 기획된 뒤풀이를 해보는 것도 좋다. 누군가는 보드게임 카페에 가보자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함께 PC방을 가자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군가는 참여할 수 있고 누군가는 참여할 수 없는 형태로 고정된 뒤풀이나 친목모임이 계속 반복되어 타성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 지금 우리 안의 친목은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평등한가? 질문하고 반성하고 대화할 시간이다.


by 미미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6 괜찮니? 학생회비 예·결산

  

  지난주, 대학연구네트워크 살아남아라! 학생회!’팀은 학생회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계속 떨어져 가는 납부율, 쉽사리 못 올리고 있는 학생회비, 학생회비를 낸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어도 좋나 등 꽤나 다양한 얘기를 나눴지요.

  이번 글은 학생회비 예·결산에 관해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주어진 학생회비를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확인하는 예·결산은 학생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예·결산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모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 전 죄...송합니다.

 

세칙에 따른 회의비 집행, 그런데 사과?


학생회가 학우들의 소중한 돈을 날름했다?


  최근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회의비(식대) 지출과 관련하여 논란이 발생했고, 이에 총여학생회장이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학내에서 여성주의 운동을 했고, 실제 총여학생회 집행부를 해본 입장에서 안타까웠습니다. 총여학생회가 회의비를 지출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 안타까웠냐고요? 아니요. 세칙을 지켰음에도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회의비 지출에 대해 팩트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총여학생회는 총대의원회로부터 받은 총무 교양 자료를 토대로 회의비(식대) 항목을 확인했고, 이후 이 조항을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15000원 기준의 회의비를 총대의원장의 승인을 받아서 결제했습니다. 세칙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학우분들이 내주신 소중한 학생회비깊은 생각 없이 사용했다고 여겨졌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전 이 상황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그 중 대다수는 장학금도 못 받는)이 일하면서 밥 먹는데 돈 쓰는 거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것이 학생회비 사정에 비해 과하게 지출되었거나, 정당하지 않은 사유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학생회 사업을 굴리면서 사업에 동원되는 인원 밥 먹이는 건 분명 중요한 지출이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 인당 5000원의 밥도 먹이지 못하는 조합조직에 헌신열정을 기대할 순 없다고 봅니다.


학생회비로 신나게 물놀이~ 땅땅땅! 통과~


아무리 여름철 물놀이가 좋다지만...!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는 집행부 회의비(식대) 지출로 인해 회장이 사과하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H대 모 학과 학생회는 학생회비로 수십만 원의 집행부 LT 물놀이(레저)비용을 지출했음에도 결산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당시 그 결산안을 심의하는 학과총회에는 전년도 학생회비를 집행한 학생회장이 휴학했다는 이유로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물놀이 비용과 출석이 문제가 되어 결산안 통과가 한번 부결되어 2차 총회(임시총회)가 공고되었음에도 출석하지 않고 카톡 등 메신저로 답변을 간접적으로(총회 의장과의 카톡) 진행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결산안이 결국 통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 학과 총회에 참석한 당사자의 말에 따르면 이 지출에 관한 질의는 크게 2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는 예산안에 전혀 없었던 항목을 집행한 것에 대한 질의였습니다. 이 질의를 한 당사자는 예산안에 따른 결산지출이 당연하다며 자신이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한 기본적인 예·결산 원칙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회에 몸을 담았던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어디 학생회가 예산대로 비용을 집행하던가요. 학생회를 1년 동안 운영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발생해서 항목에 없던 변동이 발생하는 게 부지기수지요. 갑자기 축제가 취소되어 주점수입이 사라진다거나, 학내 투쟁이 벌어진다거나...등 아무튼 첫 번째 질의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좀 더 길게 다뤄보도록 하고 두 번째 질의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질의는 집행부가 학생회비로 물놀이를 즐긴 것이 온당하냐는 질의였습니다. 해당 질의에 대해 이를 집행한 학생회장은 본인의 선거공약 중 즐거운 학생회라는 내용이 있었고, 물놀이는 이와 같은 공약을 지킨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에 더해 물놀이로 사용된 학생회비는 축제 주점을 진행하면서 예상했던 수익보다 초과해서 얻은 비용으로 진행한 것임으로 물놀이 비용의 집행으로 인해 기존 예산안에 있던 집행에 차질을 빚지 않았다고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이 물놀이 비용 집행이 통과된 가장 큰 이유는 이 공동체가 소규모 학과 공동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공동체기 때문에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이해당사자(회장단 및 집행부)와 연결되고, 이 비용처리를 안 해주면 이해당사자들이 비용을 토해내야 되는 상황에서 서로 얼굴 붉히면서 공개적으로 (비표 들어서) 반대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요. 그리고 소규모 학과 공동체다 보니 단과대학 학생회나 총학생회처럼 따로 학생회비 집행에 관한 세칙을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뭔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진 않는데, 이를 반대할만한 뚜렷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죠.

 

예산과 결산의 상관관계


무엇이 정당한 지출인가를 두고 학우들과 함께 하는 고민과 

학생회 나름의 기조와 계획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 않을까?


  뉴스를 보다 보면 국회에서 예산을 가지고 여당 야당 아웅다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추경 예산안 가지고 꽤 오랫동안 여·야간 아웅다웅 다퉜던 거로 기억합니다. 국회에서 다루는 예산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국가 세금은 예산안 그대로 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이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현 정부의 웃픈 현실 때문이었죠.

  그런데 학생회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초 제출했던 예산과는 다르게 집행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학생회에게 예산안대로 집행하기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학생회들이 예상 수입에 학생회비뿐만 아니라 축제주점 수익, 스폰 수입, 광고 수입 등을 잡고 있어서 수입 자체에 변동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축제주점 수익이 중요한 과학생회 단위의 경우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축제가 취소되자 그해 학생회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출도 변동이 큰 편입니다. 이건 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학생회의 경우 갑자기 학내투쟁이 생긴다거나 하는 변수가 많았다 보니 학생회 관계자들에게 폭넓은 융통성을 허용해주는 편이죠. 이런 이유로 학교별로 다를 수 있으나 대부분의 학생회는 따로 추가경정 예산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기존 예산안과 다른 학생회비 집행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학생회비 운용은 예산안 편성의 필요성마저 무너뜨립니다. 저는 학생회비 예산안은 그 학생회가 어떤 기조를 가지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확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생회에서 과내 여성주의 모임에 지원금을 주거나 관련 사업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해당 학생회가 현존하는 성폭력·성차별에 대해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확인이 되겠지요. 아쉽지만 오늘날 학생회 예산안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함께 처리하는 단위들도 많아졌다고 하네요.

 

학생회비 집행, 심사?

  대부분의 회사는 공금사용을 위해 비용처리지침을 만듭니다. 해당 지침에 따라서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사비로 지출한 비용을 환급해주죠. 그런데 학생회는 어떤가요? 위에 언급한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사례처럼 세칙대로 처리했는데도 사과를 해야 하기도 하고, H대 모 학과 학생회처럼 아예 세칙이 없기도 합니다.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학생회비 집행의 가장 큰 기준은 역시 여론입니다. 전학대회 등 결산안을 심의하는 기구에서 결산안을 통과만 시켜주면 장땡인 것이 대부분 학생회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지난주 어느 분께서 저희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글을 공유하며 공금을 물품을 구매하면 사용 목적, 구매 이유, 구매 과정, 자료 조사 내용 등을 캐묻는 게 맞는 것이지만 실제론 이게 뭔가요?” 정도가 질문이 끝이라며 이것으로 학생회비에 대한 검토는 끝이라고 학생회비 집행의 현주소를 지적해주셨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경험한 6번의 전학대회는 대부분 오후 7시경에 시작해 막차 끊기기 전에 끝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회의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일한 안건에 대해 동일인의 발언 기회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회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회의의 진행상, 회의가 너무 길어지면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의사진행결의안건을 실었음. 안건당 4, 재질의는 2회로한다는 전학대회 의장의 발언이 그대로 전학대회 회의록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회비 결산에 대한 심도 있는 질의 및 고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조금 더 깐깐해집시다


예·결산의 남용(견제의 부족)과 학우들의 관심 하락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

예결산을 꼼꼼히 따지고 검토하는 학생회 제도가 절실하다.


  학생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죄스러운 제안이지만, 우리의 학생회비를 위해선 결국 조금 더 깐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영역이지만 적어도 돈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으니까요. 학생회비 집행에 관한 규정(세칙 등)은 꼭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전학대회처럼 한 학기에 한번 딱 결산안을 두둥! 공개하는 것보다는 격주 또는 매달 한 번 온-오프라인으로 결산을 공개하고 관련된 질의를 수시로 받는 것이 필요하겠죠. 더 나아가 일정 비용 이상을 지출할 때는 앞서 언급한 사용 목적, 구매 이유, 구매 과정, 자료 조사 내용 등을 공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예·결산안을 전학대회 1~2주 전부터 공개해서 대의원들에게 충분히 심의를 위한 사전 준비 기간을 둘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1~2주 중에 사전에 질의를 받고 미리미리 답변을 공개한다면 회의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심도 있는 심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어떠한 시도도 학우들의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미리미리 공개해도 안 보면 끝이거든요. 앞 문단에서 제가 한 여러 제안 모두 학우들이 내는 학생회비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전작업들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 지난하겠지만 우리가 학생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과정을 포기할 순 없겠지요.

 

마치며

  이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지난 십수년간 지속해온 학생회비 예·결산에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분명 어디선가는 시도했을테고 또 실패했을텐데, 내가 뭐 얼마나 뛰어나다고 뚝딱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글을 과감히 업로드하는 이유는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회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만 늘어나고, 학생회장하면 차 한 대는 뽑는다는 구시대적 색안경이 다시금 출몰하는 이 시점에 무언가를 제안하고 싶었답니다. 우린 알잖아요. 학생회가 얼마나 고생인지, 그 헌신과 열정이, 그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떠나지만 부디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학생회를.

 

+ 번외로 학생회비 횡령이나 사기(보이스피싱) 같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이 얘기를 하다보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서... 추후 기회가 된다면 얘기해보겠습니다.


by 미네노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5 학생회비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들

 

  학생회의 성격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지향해야하는가에 관하여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에 이르러 학생회가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속하는 학생으로 구성된 조합으로 주로 기능하며, 또한 시대의 변화나 역량의 한계로 말미암아 조합으로서의 역할이라도 충실히 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오늘은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여 학생회비에 관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합니다.


학생회비 납부는 의무인가 자율인가


모든 학생들아! 부탁한다!! 제발 부탁이니 학생회비를 납부해줘!!


  조합으로서의 학생회는 학생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을 하게 됩니다. 사업은 새터나 MT 같은 내부 조직 및 교육일 수도 있고, 야식과 같은 내부 공제일 수도 있으며, 대학당국이나 정부를 상대로 학생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조합의 사업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조합의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조합이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대내적으로는 조합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조합은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하는 것이 옳습니다.[각주:1] 따라서 학생회비 납부는 학생회원의 정치적 의무입니다. 만약 회비를 내지 않는다면 학생회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 급부로 학생회에서 임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이나 사업의 수혜권 등 회원으로서의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할 의무도 없어집니다. 극단적으로는 학생회의 내부규정에 따라서 제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닙니다.[각주:2]

  반면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나오는 학생회비 고지서에는 학생회비 납부가 자율이라고 쓰여있으며, 어떤 선배들은 학생회비를 반드시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종종 말합니다. 대학당국이 학생회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서 또는 선배들이 학생회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검토해봅시다.

  조합이 조합원을 상대로 조합비의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둘 중 어느 하나를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는 조합원이 자신의 명시적인 의사로서 조합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조합원과 조합이 권리의무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방은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법에 따라서 조합으로의 가입이 아예 의무화되는 것입니다.[각주:3]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회는 의무가입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각주:4]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입학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히 그 대학이나 학과의 학생회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가법은 학생회 의무가입제도를 규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학생회는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강제적인 방식으로―직접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납자 명단을 제한 없이 공개하는 등의 간접적인 위력 행사도 포함합니다―회비를 징수한다면 오히려 현행 형법상 강요나 공갈의 죄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생회비 납부가 정치적으로는 분명 의무이면서도 국가법적으로는 자율이게 되는 근본적인 까닭입니다.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면, 간부는 어떻게 해야하나


"학생회비 납부 좀..." "나한테 돈 맡겨놨어요?" "...."


  이제 학생회 간부의 입장에서 학생회비의 납부를 극대화하거나 적어도 이를 합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학생회가 법제화되는 것이겠지만 고등교육에 관한 수 많은 제도 개혁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난망(難望)합니다. 또한 학생회가 법제화되면 권리를 보장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법적 의무와 행정적 규제가 같이 따라오게 되므로 마냥 좋아라 할 해결책은 아닙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학생회를 자율가입제로 바꾸되 가입한 학생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비를 수납하는 것인데, 언뜻 쉽고 간단해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신입생들을 상대로 매년 가입원서를 받아야 하는 행정 상의 부담이 커집니다. 더군다나 많은 학생들이 귀찮음이라든가 효용을 느끼지 못한다는 까닭의 이유로 가입을 꺼리게 되어 학생회의 규모가 축소될 수 있습니다. 학생회 규모의 축소는 운영 가능한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당국과의 대립이 있을 때 투쟁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나의 사업체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듯이 하나의 대학 또는 학과에 복수의 학생회가 설립될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물론 복수의 학생회가 적어도 조합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한다면 학생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만약 대학당국에서 특정 학생회만을 금전적·정치적으로 지원한다면―이른바 어용 학생회를 만드는 것입니다―학생사회는 자율성을 급격히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학우들이 저절로 학생회비를 납부하고 싶게끔 할 수는 없는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하란 말인가? 세 번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원론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허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회의 필요성을 학우들에게 설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설득이라 함은 학기 초마다 홍보를 많이 하는 것 외에, 학우들에게 유의미한 사업의 진행 그리고 투명한 회계 처리를 통하여 학우들의 신뢰를 얻는 것 전체를 포함합니다. 혹시 이것만으로는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 학우들이 무임승차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지 않는 학우에 대해서는 사업 참여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수준의 불이익을 부과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낮은 회비 납부율도 개선하고 “나는 학생회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라는 취지로 빗발치는 회비 환급 요청도 줄어들 것입니다.

 

학생회비,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 하나? 

  학생회비를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하는지도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합비는 조합원들에게 지우는 경제적 부담이므로 그 정도와 방법은 조합원의 의사에 기초해야합니다. 따라서 회비의 액수와 납부방법은 총회를 열든 대표자회의를 열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의결기구가 없는 경우라면 차선책으로 학우 전체를 상대로 하는 공개설문조사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원칙으로 항상 돌아가야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대나무숲 등에서 회비의 징수와 관련하여 흔히 등장하는 문제들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회비 4년치를 일시납하는 제도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국가법적으로 일시납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실무 역량이 제한적인 학생회의 입장에서는 1학년들에게만 회비 납부를 권유해도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납 제도는 1학년에게 일시적으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는 점, 또 학우들이 학생회를 향한 지지 또는 비판을 표시할 중요한 방법을 하나 없앤다는 점에서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다분합니다. 따라서 일시납 제도가 학우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우들을 분납 허용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편입학·자퇴·조기졸업 등으로 말미암아 4년을 전부 채우지 않는 학우들을 환급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시납을 한 1학년들이 4년 동안 학생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인수인계를 잘 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적당한 학생회비의 액수입니다. 학생회비의 액수를 산정하는 문제에는 참으로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기준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회원의 규모: 회원이 많을수록 집행간부나 사업의 규모도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출은 증가합니다만, 회원 증가에 따른 회비 수입 증가분이 집행간부나 사업의 확대에 따른 지출의 증가분보다 높은 경우에는 1인당 회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② 학생회비의 납부율: 회원을 납부하는 회원들이 많아질수록 1인이 부담하는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수입의 규모입니다. 대학당국의 보조금이나 제휴사업의 수입이 많을수록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대학당국과의 분규로 말미암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회비 인상 압력이 커집니다. 네 번째는 사업의 종류와 규모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체계적으로 감안하여 회비의 액수를 책정한다면 정치적 반발이 줄어들 것입니다.

 

  실은 쓰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집행간부의 인건비를 주어야 하는지, 주어야 한다면 학생회 재정 특히 학생회비 재정에서 지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다루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되거니와, 이 연재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부디 이 글이 학생회비에 관하여 고민이 많은 학생회의 간부와 일반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y 위키



  1.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회가 재정 부족으로 대학당국으로부터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지원금을 들여오기는 하지만, 교육투쟁이 있을 때 잠재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당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아쓰는데에는 본래 신중해야합니다. [본문으로]
  2. 예컨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상의 조합은 같은 법 제19조에 의하여 출자금 또는 경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을 총회의 결의에 따라 제명할 수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2조는 노동조합이 규약으로써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3. 왜 국가법적으로 보호받는 의무가입제도를 실시하려면 이를 법률로 정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결사를 형성하거나 가입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고(헌법재판소 2008. 7. 31. 결정 2006헌마666 등), 결사의 자유는 해석상 국가와 국민 뿐만 아니라 시민 간의 관계에서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국가는 스스로 국민에게 특정한 조합으로의 의무가입을 강제하거나, 어떠한 조합이 다른 시민을 상대로 가입을 강제하는 경우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의 해석상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전부 인정될 때에는 입법으로써 의무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사례가 바로 「변호사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입니다. 예컨대 「변호사법」 제7조는 변호사로 개업한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국가적 차원의 조합에 등록하도록 규정합니다. 변호사가 되는 순간 조합원의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이므로, 만약 협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관으로 변호사들에게 회비를 납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를 준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집행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2호는 특정한 노동조합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3분의 2 이상을 대표하며 미리 단체협약으로 정한 때에는 새로이 채용되는 노동자가 그 노동조합에 의무가입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4. 1980년대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민주적인 학생회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대학당국을 상대로 내부적인 교육투쟁을 전개하거나 외부적인 사회정치운동을 할 때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생긴 규정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본문으로]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4 학생회는 평화로운 임기의 꿈을 꾸는가



캐릭터 생성을 축하합니다


이제 열렙하는 일만 남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추석 연휴를 앞두면, 찬바람이 잠깐 불어오고 사람들이 옷깃을 여밀 때면, 으레 학생회실은 한산해지고 빈 공간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 생긴다. 11월에 있을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는 선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기조는 당연하게도 선본의 기반이다. 선본들이 인권, 생활복지, 교육권, 사회참여 등의 다양한 기조를 내걸고 움직이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적어도 ‘학생사회’에서는─단연 대학본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움직일지에 대한 것이다. 학생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견은 학생회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적어도 학생회가 학생들의 자치기구임은 공통적이었으며, 필연적으로 대학공간의 4주체(교원-직원-학생-본부) 중 학생과 본부는 끊임없이 아웅다웅 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이다.


아무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는 당신의 몫이다. 선거에서 당선된 당신, 캐릭터 생성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최종컨텐츠의 결말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내 맘을 들었다놨다

 

당신의 캐릭터-집행부가 좋을지 나쁠지는 당신이 선택한 길에 달렸다. 시대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좋은선택이었을 수도, 안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학생회의 대본부 노선을 크고 거칠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투쟁이라는 한 축과 협력/개량이라는 나머지 한 축이다.(그 외 어용은 단호하게 무시하도록 하자) 2000년대 비권과 반권이 대두되었을 때에서야 협력노선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역사는 해방공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47년의 국대안 정국에서부터 시작하여, 4·19의 와중에도, 군사정권과 학원자율화의 수많은 격변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때의 논의를 지금과 그대로 비교하며 맥락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반민주세력이라는 거악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역량도 한미해졌다. 수 년 동안 언급되어온 ‘학생회의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대중들은 탈정치화·파편화되었고 과거의 경험들은 실전, 활동가의 재생산도 언제나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많은 학생회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역량은 줄었고 시대의 요구는 바뀌었으니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텐데 전인미답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학교당국은 투쟁현안을 뿌려라!!


수많은 부침 속에서 ‘고맙게도’ 대학본부와 정부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반-자치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학생회를 견인한다. 국정화 교과서, 학사 엄정화, 사학비리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서 결집된 학생 주체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며 학생조직을 소생시키고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물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와해시키려 하지만, 그럴수록 학생자치와 학생조직의 몸집을 키워내기 일쑤이다. 여러 사학재단이 그런 길을 걸었다. 상지대나 동국대와 같은 곳에서 사학비리는 시대를 역행하여 기층조직을 활성화하고 학생회의 지속에 분명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와는 다르게, 대학본부가 사고─제2캠퍼스를 지으려 한다든가 학사제도를 개악한다든가─를 안 쳤을 때, 좋든 싫든 학내의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학생회는 무엇을 해야하는가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다시 말해 강제로 주어진 사명이 존재하지 않으니 스스로 개척하고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보통의 학생회는 공통의 의견을 구성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거악은 사라졌다. 모두가 염원하던 민주화는 이루어졌고 이전보다 세상은 많이 나아진 듯 하다. 또한 대학생이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보편적인 신분이 됨에 따라 이해관계도 다를뿐더러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제2캠퍼스를 짓는 게 학교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학생에게 부담이 전가될지, 페미니즘과 정체성정치에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낮은 등록금을 선택할지 좀더 부담하여 좋은 교육환경을 누릴지 등의 문제가 대표적일 것이다.


학교당국의 지원없이 무엇 하나 굴리기 힘든 복지행사 및 축제...


탈정치를 요구받는 시대의 많은 비권 학생회는 이 상황에서 학내복지 혹은 오락적 행사라는 길을 쉽게 택할 수 있다. 단과대 학생회, 총학생회의 많은 수가 간식행사, 축제, 초청강연, 시설개선 등을 공약하고 당선되어 추진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대학본부에 의존해야만 한다. 자치공간 확충, 동아리지원금, 축제 예산, 셔틀버스 운영비 등 돈은 들어가고 실무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은 한도 끝도 없는데 학생회의 재정은 튼실하기는커녕 본부의 협조없이는 징수조차 힘들고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본부와의 친밀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 아니 능력이 된다. 특히 스스로 재생산에 성공해낸 선본이라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논의들과 협력을 이어가서 쉽게 공약을 이행하곤 한다. 더욱이 단과대, 학과 단위로 내려가며 작아지면서 공약 이행의 많은 부분을 학교측에 의지하게 되며, 사실상 행정실의 부속기구화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항상 학생회의 자체적인 역량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작게는 학생회원 명부에서부터 학생회비, 공간 이용 등 절대적인 부분은 최종적으론 학교에 권한이 있다. 학생회원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고 조직하고 결집하지 않은 채로, 협력의 꿀맛에 길들여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지속되면 어느샌가 예속되어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학교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문화·복지·시설 사업이 주축이 된 학생회를 말이다. 투쟁의 과업이 주어지게 된다면, 누가 쉬이 투쟁을 위해 나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을 포기하고 언제나 대립각을 세우는 학생회가 지속적으로 학우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한다. 1) 고전적 관계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과 역량에서, 2) 극도로 다원화되고 탈정치화되고 무관심한 학생대중의 여론에서, 3) 본부와의 긴밀한 협조라는 양날의 검을 앞에 두고, 4) 담론을 재생산하고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그래서 어쩌라고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


뭔가 앞에서 거창하게 말을 했지만, 나도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랬으면 제가 회장을 했겠죠….) 다만 우리가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언급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이미 숱하게 반복된 문제들이다. 학생회 위기론은 등장한지 꽤 됐으며, 사회참여-반동-복지-교육권리-대학참정권-인권 등의 순으로 등장하는 담론들도 이미 십여 년 전에 등장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학습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기록해야 할 뿐이다. 맥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진 이유를 찾아내고, 현실에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소속 단위의 자치가 완전히 망가졌다면, 본부와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해나가며 학생회의 역량을 몇 년에 걸쳐 강화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학생자치가 활성화된 단위라면 이를 기반으로 대본부 투쟁사업을 기획할 수도 있다. 선택의 자유는 여러분의 몫이다. 그저 길들여지지만 않으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평화로운 임기를 꿈꾼다. 당신의 한 해 임기는 어떨 것인가. 단 꿈을 꿀 것인가, 현실에 있을 것인가, 꿈을 꾸되 현실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인가.


by 완도김


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3 선거무산의 늪

 

특급 난이도의 최종미션, 선거


너무 어렵잖아... ㅠㅠ


학생회 집행부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이 시기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학생회 선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활동을 전개하는 학생회의 특성상 10월 중순에서 11월이 되면 차기 학생회장단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진행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거리가 몰려들어오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고민거리는 선거 진행에 들어가는 집행력이다. 특히 학생회장단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가 여럿일 경우에는 선본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룰미팅을 두고 여러 차례 회의를 해야 되거니와 각 선본이나 학생들로부터 이의제기가 들어올 경우에 적절한 조처를 취하기 위한 집행력을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투표 당일에도 무효표가 많이 나오지 않도록 선거에 참여하는 학우들에게 투표용지와 투표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고 투표함과 투표소를 지켜야 한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이것저것 들어가는 인력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고민거리는 선거 운영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단순히 집행력이 있다고 해서 선거를 잘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무척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선본들 간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고, 선본이 아닌 사람이 선거운동에 개입하는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무효표가 많이 나와서 기껏 개표까지 했는데 선거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선거운영에 있어서는 원칙과 그 원칙의 적절한 적용,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신경 쓸 부분은 많아지고 스트레스는 늘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큰 세 번째 고민거리는 바로 선거무산의 압박이다. 앞선 두 가지 고민거리는 어쩌면 행복한고민거리일수도 있다. 아예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없어서 기존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미봉책으로 뒷수습을 한 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들어서는 것보다야 몇 주 동안 열심히 고생해서 번듯한 차기 학생회를 세우는 것이 훨씬 더 마음편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 중에서 학생회장을 맡으려는 사람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한때는 치열한 경선 끝에 당선되던 총학생회장 선거마저 단선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니 선거를 앞둔 학생회 집행부의 고민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



선거무산이라는 늪


으아니! 챠! 왜 입후보를 안 하는그야!


사실 여러 가지 고민거리 중에서도 선거무산이 가장 큰 고민거리를 차지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한 번 선거무산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 학생회가 다시 헤어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기존 집행부의 입장에서는 집행력을 온존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시 선거를 치르기가 힘들어진다. 학생회 집행부들은 학생회의 1년 활동주기에 맞춰서 자신의 학교생활을 조절한다. 예컨대 학생회의 일이 집중되는 기간에 맞춰서 휴학을 하거나 수업을 적게 듣는 식이다. 그런데 1년 주기를 적절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선거가 무산이 되면 집행부원들은 자동적으로 학교생활 계획에 혼선이 빚어지게 된다. 보통 10-11월 선거가 무산이 되면 기말고사와 방학 등의 이유로 겨울 동안에는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3월 개강에 맞춰 보궐선거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공백기 동안 기존 집행부원들이 각자의 사정(ex. 군대, 복학 등)으로 흩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에는 선거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한 집행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 차례의 선거무산은 다음 차례의 선거 진행에 필연적으로 부담을 준다.


다음으로 선거무산은 그 자체로 새로 시작하게 될 집행부에게도 부담을 안겨준다. 앞서 말했듯이 선거무산이 이뤄지면 보궐선거는 학사일정에 따라서 학우들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는 3월에나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당선이 된 학생회는 당장 한 달여 남짓한 기간 동안 4월과 5월부터 시작되는 각종 행사와 사업들을 준비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3-4월에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관된 연례행사들(ex. 여성의 날, 국제 인종차별 철폐의 날, 세월호 참사,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메이데이 전야제 등)이 있고 이외에도 중간고사를 대비한 복지 사업들(ex. 간식행사, 독서실 대관 문제 등)을 준비해야 한다. 5월에는 축제기간이 돌아오므로 이에 맞는 사업들(ex. 주점 사업 등)을 또 준비해야 한다. 당선된 지 채 한 달조차 안 돼서 몰려드는 사업들과 씨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러니 양질의 사업을 준비하기가 힘들어지고 학생회의 1년 사업주기에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시무시한 상황은 앞선 두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계속해서 번번이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다. 3월 보궐선거에서조차 입후보자가 없거나 선거가 무효가 되는 바람에 선거에 대한 학우들의 불신이 심화되고 긴 시간 동안 학생회의 자리가 공백이 되는 경우다. 이 공백이 끊임없이 길어질 경우에는 한 학과, 한 단과대, 심각한 경우에는 총학생회의 맥이 끊기는 경우조차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학생들은 학교당국과 협상하고 교육권과 관련된 의제들을 전달할 창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학생자치기구들은 학생회가 새로 서지 않을 경우에 비대위를 운영한다. 기존의 집행부나 학생회에 소속된 학생들 중 일부가 모여 학생회의 기능을 하는 임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각주:1]이다. 그러나 비대위 체제의 가장 큰 단점은 학생들로부터 승인된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활동에 제약이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그만큼 비대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의욕이 감퇴될 수밖에 없다. 결국 비대위는 한시적으로는 학생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선거무산은 이처럼 한 번 그 늪에 발을 들이면 학생회에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하며 학생회의 전체 사업주기에 지대한 부담을 가져다준다. 그러면 도대체 선거무산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선거가 흥하지 못하고 망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크게 학생회 집행부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먼저 집행부 외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집행부 외적인 측면은 주로 입후보의 문제와 관련된다. , 아예 입후보를 하지 않아서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에 대부분의 원인은 집행부 외적인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각주:2] 이것은 앞선 두 에피소드들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이 위축된 영향이 크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경쟁이 심화되면서 학우들에게는 학생회와 같은 여분의(extra)’ 활동을 할 여유가 없다. 여기서 활동을 여분의것인지 아니면 핵심적인것인지를 나누는 것은 구직활동에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이다. 그래서 같은 동아리라도 사회과학학회는 보통 여분의 것이 되는 반면 가치투자학회는 핵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학생회는 여분의 활동이 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학우들이 직접 나서서 집행부를 꾸리거나 학생회장단이 되려는 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


특히 학생들의 무관심이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일종의 악순환을 낳기 때문이다.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은 학생회 집행부를 고립시킨다. 그리고 고립된 학생회 집행부는 외부로부터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활동의 보람도 느끼지 못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 고립되어 고통 받는 학생회 집행부를 보면서 그나마 실낱같은 관심을 갖던 학생들조차 고개를 내젓는다. “어휴, 학생회가 저렇게 고생하는 일이구나. 나는 못하겠어.” 결국 학생회장에 입후보할 사람은 더더욱 적어지고 학생회의 기능적 쇠퇴 속에서 무관심이 확대된다.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 기억날 것 같은데... 뭐였더라... 잠깐만 기다려봐...


그렇다면 집행부 내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이 부분은 주로 선거운영의 미숙함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정말로 기술적(technic)인 부분인데 학교마다 선거운영에 관련된 회칙은 다 다르니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해보자. 왜 선거운영의 미숙함이 발생할까? 답은 간단하게 나올 것 같다. 대부분의 학생회에게 선거운영은 '생소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운영되는 기간 중에 비교적 여러 차례 시범적으로 사업을 진행해볼 수 있는 각종 형태의 사업들(ex. 강연사업, 간식사업 등)과는 달리 선거는 한 학생회가 단 한 번 치루는 사업이다. 그러니 익숙해지거나 요령이 생기길 기대하기는 무리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1년이라는 기간이다. 선거를 한 번 치르고 나면 1년 동안은 선거를 진행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바로 이 1년이라는 기간은 지난 선거의 기억들을 흐릿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막상 선거 준비 기간에 닥쳐서 선거에서 어떤 점들이 문제로 제기되었는지, 선거를 운영할 때 어떤 것이 좋은 모범사례인지 등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기억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특히 선거운영은 허겁지겁 바쁘게 움직이는 일들의 연속이고 그러다보니 문제점들을 정리하여 아카이빙을 할 여력도 부족하다. 특히 선거를 마치고 나면 학생회 구성원들은 이제 학생회 활동으로부터 떠난다는 마음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더더욱 선거에 대한 인수인계는 소홀히 되기 쉽다. 결국 대부분의 학생회들이 백지부터 새로운 글을 써내려가는 마음으로 선거 운영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황과 조건에 따라, 집행부에 학생사회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선거 운영이 복불복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다면 집행부 내외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선거무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정책 패키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완벽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학생회의 모든 문제들이 사실 이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문제들을 이루고 있는 측면들이 워낙 복합적이기에 하나의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완화시킬해답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먼저 첫째로 선거와 관련된 학우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폭넓게 수렴할 수 있는 공론장의 형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학우들의 무관심은 근본적으로는 구조적인 조건의 영향 아래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회가 소통에 둔감하다고 여겨진다면 이는 무관심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집행부는 집행부 회의도 공개해놓고 오프라인 공청회도 여는데요? 여기에는 주로 두 가지의 맹점이 존재한다.


첫째로 오프라인 의견수렴에는 오늘날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정말 바쁘다. 학생들마다 각기 다른 과외 및 알바 일정, 동아리 일정, 각종 활동 일정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가장 참여율이 높은 날짜와 시간대와 장소를 콕 집어서 오프라인 회의를 잡기란 쉽지가 않다. 결국 온라인 의견수렴의 장이 병행이 되어야만 한다


둘째로 모든 의견수렴은 백지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거시적인 주제나 큰 틀만 잡아놓고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학생들에게 묻는 것은 사실 전혀 의미가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은 사업의 구체적인 기획에 투여되는 수고로움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아무도 그런 불분명하고 무엇을 답해야할지 모르겠는 열린 질문에 답변하는 수고로움은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생회가 준비하는 사업들의 로드맵이나 구체적인 방안들을 놓고 이것이 좋은지 아닌지, 안 좋다면 어디가 안 좋은지를 두고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인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때는 구체적인 방안이 응답자인 학생들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짚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는 홍보물 매수에 제한을 둘 건데요. 이것은 입후보자들의 소득수준의 차이가 곧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그렇다면 애당초 선거공영기금을 마련해서 그 안에서만 선거운동에 필요한 돈을 쓰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학생들에게 백지를 내놓고 채우라는 식의 의견수렴은 의견수렴이 아니라 귀찮은 과제를 하나 더 내주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비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공론장을 형성하는데 주력하되 그만큼 선거운영의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서 학생회가 준비를 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찬반의 양론이 나뉘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토론 끝에 완성되어가는 선거 과정을 만들어진다면 적어도 차게 식었던 학생들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릴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기록이 정말 중요하다


문제는 그러면 어떻게 구체적인 선거운영방안을 마련할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것은 아카이빙과 평가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론(正論)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이를 평가로 남겨두어야 한다. 특히 속기록의 형태로 구구절절이 길게 문건을 남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 상황들과 그에 대한 학생회의 대응을 중심으로 요약된 자료가 필요하다. 이런 자료들이 남아있어야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도 학생회가 선거를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지반이 마련이 된다. 특히 과거 한 차례 발생했던 문제가 몇 년이 지나서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학생회는 아카이빙 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생들 내지는 선본과 선거운영방식을 토론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구성할 수 있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빙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선거에서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어서 이번 선거운영 방법은 이러저러하게 구성했습니다.”라는 분명한 시작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를 준비할 모든 학생회장들을 응원하며


선거무산만큼 학생회를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특히 이런 문제가 2010년대를 지나면서 더더욱 불거졌다는 점은 학생회가 위기에 처했다는 징후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학생회의 존립 자체를 포기하는 쉬운 답을 택함으로써 치러야 할 비용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그 답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발밑에 존재하는 사실들로부터 구해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참고할만한 기록도 자료도 선배도 찾을 수가 없다면 최소한 우리부터라도 그 사실들을 남겨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전진했고 얼마만큼 성공했는지, 얼마만큼 실패했는지를 기록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 기록들을 나침반 삼아 항해할 뒤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각주:3]


By 미미





  1. 혹은 단과대학처럼 여러 개의 학생단위가 모여서 이룬 단위의 경우에는 개별 단위의 대표자들의 연석회의체가 비대위가 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2. 물론 학생회 집행부가 하는 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학생회에 대한 기대감이나 신뢰가 뚝 떨어진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오로지 이 부분이 문제라면 오히려 학생회를 바로잡기 위해 출마하는 학생들의 경우를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더 큰 차원에서 학생회장이 되기 싫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본문으로]
  3.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최악을 향하여(Worstward ho)』 중에서 [본문으로]


살아남아라! 학생회!

Ep.2 “운동을 떠난 학생회는 불가능할까?” 어느 방랑자의 고백


나는 소수의 인원을 갈아 넣고 고통에 빠트려서라도 

학생회가 존속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 《살아남아라! 학생회!》 Ep.1 "왜 살려야 할까?" 중에서

 

들어가며


 이제 학교가 지겹다. 아니, 정확히는 학생사회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겹다. 그런데 그만둘 수 없다. 이유는 모른다. 입학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그 전해에 구성되지 못한 학생회 선거를 뛰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아주 약간의 의심만 있었더라도, 아니 왜 학생회장이 안 뽑혔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5년이란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쓸 수 있었을 텐데, 19살 어린 아이였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러러 볼 선배가 없는 5학년이 되었고, 술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서 건강도 망가졌다. 이룬 것은 없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많이 흘러버렸다.

 

  이전 글에서 포포는 “소수의 인원을 갈아 넣고 고통에 빠트려서라도 학생회가 존속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왜 학생회를 살려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그 앞의 전제조건에 대한 고민을 던져보려 한다. ‘운동을 떠난 학생회는 불가능한가? 그리고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학생회가 아니어도 우리의 운동은 계속될 수 있고, 계속되어만 한다고.

 

  만약 당신이 속한 학교에서, 당신의 공동체(단대, 학과 등)에서 당신이 속한 모임(조직)이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면 이 글을 가볍게 스킵하기 바란다. 이 글은 학생회의 재생산조차 해내지 못한 어느 방랑자가 학생회를 떠나서 고군분투한 기록이다.


학생회가 운동 그 자체인 시대는 지났다


비록 선배들이 피땀으로 일궈낸 학생회지만 학생운동의 헤게모니가 사라진 지금

운동으로서 '학생회'라는 양식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입학하자마자 학생회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동기들로부터 ‘너 운동권이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운동권이었고, 그 정체화에 약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운동권이며 내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최근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그런데 우리 학교 학생회의 주류들은 달랐다. 비슷한 질문에 그들의 답변은 ‘부정’ 또는 ‘요즘 세상에 그런 도식은 무의미하다’는 등...의 모호함으로 일관했다.

 

 이 연재를 시작하며 ‘본래 학생회는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 학원민주화운동과 함께 시작된 단체입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학생회는 태생적으로 ‘운동적’ 요소가 있음에도 요즘 보면 ‘우리 운동권 학생회에요~’라며 당당히 말하는 학생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단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 속한 대학의 총학생회는 분명 운동권임에도 본인들은 운동권 총학생회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실제로 내가 속한 모임의 새내기가 총학생회장과 밥을 먹으며 ‘듣기로 이번 총학생회 운동권이라던데...’라고 얘기를 꺼내자 그 총학생회장이 양손을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학생회의 지속적인 수권을 위해서 위에 언급한 운동권 부정과 모호한 입장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동권은 학생회 수권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내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재 스스로의 공간에서 마주치고 있는 학생대중의 뿌리 깊은 운동 혐오 정서를 돌파해낼 수 없다면, 왜 꼭 축제기획, 민원처리 등으로 활동가들의 역량을 소모해가면서까지 학생회 수권에 목을 매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10학번이 아직까지 군대도 못가고 학생회에 남아서 집행부를 하고, 07학번이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와서도 학생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들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탄하나, ‘그렇게까지 하면서 학생회를 수권해야 하나?’ 묻고 싶다.


우리의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 학생회는 필요하다?

 

학생회를 할 수록 늘어나는 건 희망이 아니라 뱃살이다(...)


우리 모임은 ‘학생회’의 재생산에 실패했다. 별 탈 없이 무난하게 2년간 잘 했음에도 그렇다. 학생회 재생산에 실패한 후 우리 모임은 학생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했고, 학교에 홀로 남은 나는 학생회는커녕 당장 모임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했다. 선배들이 원망스러웠다. 왜 학생회를 해가지고...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 학생회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누구나 주지하고 있듯이 학생회는 망하고 있고, 그 ‘망함’의 형태는 사람이 안 모이고, 유의미한 의제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달력사업[각주:1]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학생회를 통해서 학생대중과 호흡한다고 하지만 더 이상 학생대중은 운동적인 의제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아니 조금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야유를 보낸다. 학생회를 찾아와서 함께 하고자 하는 집행부들은 어찌어찌 구해진다 할지라도, 당장 우리 집행부들을 조직해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 아닌가? 집행부조차 해당 학생회의 운동적 가치나 미래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학생대중을 만나겠다고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학생회는 바쁘다. 임기 시작하자마자 중앙단위는 등록금심의로 바쁘고, 산하 단위들은 새로배움터 준비로 바쁘다. 이뿐인가? 축제, 농활, 개강, 종강, 전학대회, 확대간부수련회 등 학생회의 명맥이 유지되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관례적인’ 사업들이 많다. 운동적으로 유의미한 실천을 하고자 하는 학생회 관계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사업들을 위해서 소모되고 있다. 저 사업들을 통해 약간의 운동적 가치를 전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운동적 가치는 전혀 없거나, 그 아주 약간의 운동적 가치에 조소를 보내는 학우들을 접하게 된다. 이쯤 되면 다시 물어봐야 한다. 정말로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 학생회가 필요한 것인지. 학생회를 통해서 단순하게 지인이나 관계자를 많이 만드는 것을 넘어선 조직의 재생산이 가능은 한 건지 다시 물어봐야 한다. 오히려 그나마 남아있는 활동가들을 관례적인 사업에 투입함으로써 그들의 운동적 실천이나 역량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1994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민중가요와 몸짓은 '이상한 문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남들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했다. 17살부터 시작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내 자그마한 헌신은 그만큼 일찍 지치게 했다. 19살, 동기 새내기들은 수습집행부를 할 때 나는 새내기지만 국장을 맡았고, 20살엔 속한 모임에서 사실상 리더가 되었다. 21살엔 학생회내 모 특위 위원장이 되었고. 나는 지쳤고, 도망치고 싶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는 응당 많은 로망을 가지고 대학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 미팅을 꿈꾸기도 하고, 선배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선배 밥 사주세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도 싶다.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는 날엔 공기 좋은 공원에 가서 낮술도 하고, 공강 날에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도 싶다. 그런데, 학생회를 하는 사람들에겐 이 모든 것이 사치다. 크게는 세상의 진전, 적게는 학생자치의 활성화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희생’이 강요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생회는 학생대중과 호흡하며 그들을 조직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학생회를 함께하자며 나보다 6학번 위인 선배가 내게 해준 말이다. 물론 나는 그 선배가 속한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와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 말은 꽤 오랜 시간 내가 학생회에 자발적으로 나를 갈아 넣을 동력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딱 2년이었다. 2년 동안 학생회에 나를 갈아 넣고 나니 같은 모임의 선배들이 모두 학교를 졸업했고, 내게 남은 건 3학년이지만 여전히 모임의 막내라는 난센스와 학교에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이었다.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 학생회는 필요하다고 한 선배들은 떠났고, 동지는 간데없고 홀로 깃발만 지키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고난의 행군, 황무지 개간 그리고 수확

 

 27개월. 학교에 혼자 남은 1인 모임 상황에서 새로운 신입이 들어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대자보를 붙이고 각종 연서명에 함께했다. 심지어는 외국에 교환학생을 가 있는 동안에도 외국에서 대자보를 작성해 과 후배를 동원해 인쇄랑 부착까지 부탁했다. 그렇게까지 하다 보니 이제 어느덧 15명이나 되었다.  

 

  학생회를 버리고 난 운동은 분명 고통스러웠다. A1 사이즈로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던 대자보의 사이즈가 A3까지 줄어들었고, 한 건물에도 두어 장씩 붙이던 대자보를 한 건물에 한 장씩 붙이는 것도 참 부담스러워졌다. 컬러로 포스터 뽑을 돈이 없어서 애초부터 포토샵으로 흑과 백 두 색으로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자유로웠다. 그놈의 ‘학생대중’이 두려워서 쓰지 못했던 성명서도 맘껏 쓸 수 있었고, 그 어떤 운동적 의미도 찾을 수 없던 축제의 연예인 섭외나 시험기간 간식 사업 등에 우리의 역량을 소모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이게 전망이 있나?’라는 의심도 있었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나의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홀로 이 운동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우리 모임의 존재를 알려내고, 남들이 말하지 않는 공동체 내의 불편함을 공론화하고, 우리 모임의 목소리와 함께 해주는 이들을 확보해나가는 것만이 척박한 토양의 학교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한 최소조건이라고 판단했다.


  처음엔 이 길이 맞나 싶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이쯤 되면 그만둬야지 싶을 때가 돼서야 신입이 들어왔다. 그 신입과 함께 또 다른 사업을 벌이고, 그 사업을 통해서 또 다른 신입이 들어오고, 그 과정을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이젠 15명이 우리 모임과 함께하고 있다.

 

운동을 버리고, 학생회를 살려라

 

운동은 새로운 플랫폼을 찾고 학생회는 학생회 고유의 가치를 찾자


  앞의 많은 내용에서 본인은 학생회를 버려야 운동이 살아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운동의 재생산을 위해서 학생회 수권이 필요하다던 지난 세월동안 이어져왔던 전술이 이미 실효했으며, 오히려 학생회 운영에 수반되는 달력사업으로 인해 우리 운동의 역량을 갉아먹고 있기에, 학생회라는 껍데기를 버리는 것이 우리 운동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반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학생회’를 살리기 위해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말이다. 사실 답은 나왔다. ‘운동’을 버리면 학생회가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대학사회에서 흥행하고 있는 동아리나 소모임을 보면 대게 일치되고 있는 2가지 특징이 있다. 밴드부나 축구동아리처럼 ‘즐거움’이 있거나, 취업동아리나 브랜드 서포터즈처럼 ‘스펙’이 되는 공동체들은 이 척박한 상황에서도 흥행을 유지하고 있다. 학생회가 왜 즐거움이 사라지고 스펙이 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대게 학생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운동적’ 색채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학생회가 운동적 정체성을 지우려는 시도 또는 감추려는 시도는 이미 다양한 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많은 학생회도 이를 인지하고 수습 집행부 모집 공고나 홍보에 있어서 운동의 색채를 지우고 ‘선배와의 돈독한 관계’를 얘기하거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놀기도 잘 논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수많은 학생회들이 스스로가 운동권이라는 점을 부인하거나, 실제 운동권이 아닌 이들이 학생회를 수권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원대나 동국대의 사례처럼 학생회가 ‘어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어용’에 가깝다는 본인의 주관적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분명 우리는 운동을 떠난 학생회 조직들이 ‘어용’으로 전락하진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학생회가 운동을 버리고, 운동이 학생회를 버리라는 얘기가 곧 운동과 학생사회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학생사회와 학생회는 다르고, 학생회를 떠나도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고, 학생회 조직들이 ‘어용’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바로 그 때가 운동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실제 수원대의 경우 자생적으로 생겨난 ‘수원대학교 프리미디어’라는 자치언론이 지속적으로 학생회를 견제하다 올해 ‘수원대 권리회복 민주학생운동’이 출범하여 ‘총장 비리’를 비롯한 학내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며. 학생회를 버리고 광야로 나가자

 

  나는 2017년의 학생회가 이제 더 이상 운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학생회 수권이 핵심 활동가들에게 좋은 경력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어디 운동이 ‘스펙 쌓기’던가... 운동을 지향하는 학생조직들이 지난 세월 ‘학생회 수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만큼 우리의 운동이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요즘 우리의 대학에서 운동적인 의제를 던지고 확산시키는 주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주체들이 학생회던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적 의제를 던지고 그 의제를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은 대게 학생회보다는 운동 조직, 학회, 내지는 소모임들이다. 여성주의 소모임들이 지난 몇 년간 대학 내 확산시킨 여성주의 의제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을 떠난 학생회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등록금심의나 공간,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와의 충돌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운동을 떠난 학생회가 제 역할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제 역할도 잘 못하는 학생회는 학생대중의 판단에 따라서 재생산에 실패하여 도태되기 마련이다. 스스로가 운동권이라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기를 바란다. 학생회를 버리고, 우리의 운동을 살리자. 학생회가 잘못 가고 있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학생사회를, 우리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을 믿자. 우리가 학생회와 함께하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주는 학우들이 있을 것이고, 학생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우리의 운동을 통해 학생회의 기조를 바꿔 낼수도 있다.

 

  학생회를 버리면 당장은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학생회비로 뽑아내던 포스터도, 아주 가끔 붙이는 대자보의 인쇄비용도, 24시간 우리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던 학생회실도, 수습집행부를 모집하면 꼬박꼬박 들어오던 새내기들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학생회를 버리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운동적 실천에 앞장설 수 있다. 박근혜가 싫으면 박근혜가 싫다고 대자보를 붙이고, 문재인의 정책이 싫으면 싫다고 성명서를 내고,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가고, 그 무엇이든 연예인을 초청하는 축제 업무에 치이는 것보다는 유의미한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운동과는 괴리된 집행부가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와 가치에 공감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동지’들이 만들어지고, 또 다시 그들과 유의미한 실천들이 가능해지진 않을까?

 

  우리 이제 운동을 떠난 학생회, 학생회를 떠난 운동권을 상상하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우리의 학생회를, 우리의 운동을


by 미네노

  1. 달력사업: 새터, 등심위, 농활, 축제 등 학생회가 관례적으로 해야 하는 사업을 표현하는 은어 [본문으로]

살아남아라! 학생회! Ep.1 "왜 살려야 할까?" 어느 학생회장의 의심 



어느 반 학생회장의 고민


"너 후임 학생회장 안 할래?" "안 할래요." "..."


  이번 여름, 선배를 찾아서 부단히도 돌아다녔다. 반 학생회장 임기를 석 달 남기고 차기 출마의 싹수가 보이는 후배가 전무하여 고심하던 시기였다. 학생정치조직에 몸담았던 선배부터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한 전임 학생회장 선배, 타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낸 선배까지 두루 만났다. 그들이라면 정답을 알려줄 것 같았다. 왜 학생회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언제쯤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지. 내 앞에 펼쳐질 전망이 무엇인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잘 정리된 정답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 고민은 어떻게학생회를 살리느냐, 그 방법론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대체 학생회를 살려야 하는지에 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갈려나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정도로 학생회를 살려야하는 명분이 강력하다면 학생회 재건 방법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나조차 학생회가 왜 필요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할지 곤란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니, 근본적 회의가 필요했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학생회야


   사실 우리는 모든 답을 알고 있다. 왜 학생들이 안 모이고 왜 사업이 실패하는지, 왜 학생회로 역량이 모이지 않는지 다 알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대학생은 바쁘다. 학점, 알바, 동아리, 스펙, 고시 준비로 뿔뿔이 일터와 도서관에 흩어져 있다. 과방에 짱박혀서 호족 노릇하던 고학번 선배도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이것을 경쟁사회의 일면이라 부르고 다른 이는 낭만의 상실이라 하고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적 파편화라 한다. 지칭하는 기표는 다르지만 다 똑같은 것을 가리킨다. 취업난과 생활고, 20대의 생존은 너무도 힘들다.


   이 가운데 학생회는 조직 성격상 당면 과제가 주어지지 않는 한 존재감 자체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입학과 동시에 학생회원이라는 귀속지위가 주어지니, 정당이나 정치단체, 노동조합에 비해 조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수 (예비) 엘리트 계층을 상징하던 과거 대학생의 사회적 신분과 달리, 지금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은 상황에서 대학생은 그리 특별한 계층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는) 독재 타도와 민주화 쟁취를 이뤄낸 지금, 학생회의 일상적 조직 기능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즉 엘리트라 불리기도 멋쩍은 대학생들이, 반독재 투쟁 등 사회적 직무도 없는 마당에, 투쟁기구도 아닌 학생회를 어떻게, 그것보다 왜 유지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학생회 모델이 일명 복지학생회다. 이 학생회 모델은 학생회를 학생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보고, 학내 복지, 거버넌스 조금 더 확장하자면 한국의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이슈파이팅을 하고 학우들을 조직한다. 하지만 권리를 찾아오겠다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많은 경우 학교 행정에 학생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반영되지 않는다.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 보직 교수들은 힘들다, 어렵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학내 주요 의사결정 기구에 학생들은 겨우 참관권이나 아주 일부의 의결권만을 가진다. 교육권리의제 역시 학우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학우 파편화가 또 문제다. 성과가 뒤처지니 학생회는 또 위기를 맞는다.


  이렇듯 학우 대중이 텅 빈 집단이 되고, 의제를 중심으로 학생회의 역량을 모으는데 큰 비용이 드는 현재, 학생회의 정당성과 존재 의미는 옅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는 학우들과 괴리되어 있고 집행부 하는 사람들은 학생회 하는 사람들이라고 명명되어 타자화 된다. 이제 학생회는 학생회장과 집행부뿐 아니라 학생회원 전원과 그 의사결정 구조를 모두 포괄한다는 선언적 수사가 지겨울 정도다. 학내 투쟁기이거나 투표율 50%를 끌어 모아야하는 선거 기간이 아닌 이상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에 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 번 흔들리면 어지럽다


천 번을 흔들리면 그냥 사람들이 짜증나서 떠난다


  대학생이 살아남기 어렵다보니 학우가 안 모인다. 이 점은 학생회를 운영할 때 생기는 애로상황 대부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강연사업을 굴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요. 개강총회에 사람들이 안 와요. 정족수가 안 차요. 등등대중 동원이 어렵다보니 2, 3차 문제들도 생긴다. 학우들의 지지를 힘입어 전개되는 교육 투쟁이든, 학생회 공약사업이든,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니 기획한 입장에선 야속하기만 하다. 이렇게 학생회에 데인 사람들은 집행부를 떠나고, 빈약해진 기획과 미미한 성과에 학우들은 또 등을 돌리고, 잘 해도 욕을 먹고 못 해도 욕을 먹고 더 많은 경우 아무런 피드백도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떠한 성장도 성취도 손에 넣지 못 한 채 학생회를 떠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렇게 학생회를 하기 힘들다보니, 집행부원들은 누굴 위한 사업을 굴리고 누굴 위한 기조를 짜는지 회의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많은 경우 대중 사업의 참석자 대부분이 그것을 기획한 집행부,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며, 결국 사업은 집행부의 부흥회가 되고 만다. 교양 사업을 굴려서 오늘도 집행부의 지식은 향상되지만 대중적 합의지반을 만든 것 같진 않아 씁쓸하다.


근데 넌 왜 해?


  작년 겨울, 내가 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했을 때는 우연한 불행에 빠져 방치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학생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에게 직면한 문제를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공동체가 함께 대안을 모색하거나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업 문제든 인권 문제든 혹은 좀 더 거대한 이야기든 개인이 해결하긴 어려우니까. 학생회가 의제도 생산하고 시스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일단 내 기층 단위가 상상된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 제일 먼저 부딪혔다. 반 사람들은 소속감도 없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집행부 친구들만 애쓰고 상처받았다. 우리가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했고 개선도 많이 하려 했다. 원래도 나이주의와 권위주의를 경계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더욱 조심했다.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마음껏 했고 TF팀도 굴려서 참여 벽도 낮췄다. 근데 운영위원회든 회의든 사람들이 오질 않았다. 학생회가 무너진 것의 여파인지 뭔지, 학회도 같이 쓰러져갔다. 시스템을 만들고 의제를 굴려봐야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과/반 등 기층 단위 학생회의 경우 학생회장과 집행부원들이 학생회원들을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차적 신뢰 형성이 자치의 기본이다. 때문에 돈과 시간 등 가용 자원이 많고 진로에 관해 큰 걱정이 없거나 없어도 되는 처지의 사람들, 활동 증명서가 발급되는지 안 되는지, 스펙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불분명한 학생회 활동에 자신의 여유를 투자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것들을 희생시킬 결의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학생회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은 얼마 없다. 따라서 소수의 사람들이 갈려나가게 되고, 특히 학생회장에게 가중되는 부담은 점점 심해진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잠수를 타거나, 임기 중에 다른 활동을 모색함으로써 자아를 찾으러 가거나, 모든 것을 꾹 참고 안고 가는 선택지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학생회장의 고단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리고 대중 참여가 거의 없는 부흥회가 지겨운 사람들은 차마 다음 학생회를 꿈꿀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되거나 최소한의 기능만을 유지하는 형식 학생회만 남게 된다.


   근데 문제는 여기다. 그럼 학생회의 부재나 최소한의 학생회가 남은 것이 나쁘냐는 것이다. 사실 나는 소수의 인원을 갈아 넣고 고통에 빠트려서라도 학생회가 존속되어야할 가치가 있는지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투사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며, 그저 함께 모여 무언가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기획 회의 몇 번 잡고 밤새 준비해서 새맞이 행사를 잡아도 1학년들은 재미없을 것 같다며 단체로 따로 저녁 먹으러 가고, 그렇다고 사업에 잘 참여하자고 독려하면 꼰대 소리, 운동권 소리 들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앞서 밝혔듯이 우리 반에는 차기 학생회장으로 나갈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비대위장 내지는 학회장을 맡아서, 차차기 학생회 재건의 기반을 다져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짓도 학생회의 기능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고민해보겠지만, 학생회를 왜 굴려야 하냐는 질문은 너무 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낼 줄 알았지?


훈훈하게 막 그렇게 끝낼 줄 알았지?


  뭐 그래도 몇 달 고민해보니 파편적으로나마 두 가지 잠정적 결론을 낼 수 있었다. 1) 단과대, 총학생회의 하위 기구로서, 학내 의제와 교육 투쟁의 힘을 싣기 위한 기층 조직으로서 과/반 학생회는 필요하다. 2) 적어도 기층 학생회만큼은, 실적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서의 동반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 있는, 이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공동체다. (혹은 그럴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결론도 얼마 안 가 깨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결론이 반드시 학생회 존속 내지는 부흥의 필요성에 무게를 실어주지는 않는다. 이 질문들이 도전받는 그 순간, 또 다시 나는 데카르트마냥 회의의 심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실 그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학생회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거나, 학생회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하거나. 후자의 경우 각자 자교의 역대 선거 홍보물을 보신다면 다 비슷비슷한 대안을 내놓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보면 사실 우리의 선배라고 해서 뾰족한 정답을 찾은 것 같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제 학생회 선거철도 슬슬 다가오고 하니 학생회를 어떻게살릴 것인지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회를 굴리는 게 너무 힘든데도 살려야 하는지 한 번 고민해보자. 관성적으로 학생회장 세우느니, 각 잡고 마주앉아 왜 학생회를 해야 하는지 집행부원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도움 될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한 번쯤 거대한 전제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by 포포



대학연구네트워크 정기연재 프로젝트 : 살아남아라! 학생회!


들어가며


  학생회, 이 말을 들으면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가나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남은 공동체일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힘들었지만 보람찬 활동으로 기억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학생회라는 말은 아무런 생각이나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멀기만 한 대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점 치열해지는 취업경쟁 속에서 이제 대학생들에게 있어 대학은 자신들의 활동이 지속되는 현장이 아니라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후에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발판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학생들이 처해있는 현실이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동안 학생회라는 조직이 이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측면도 존재합니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학생회들은 전체사회의 변화라는 큰 목표와 당장의 학생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 해결을 충분히 연결·조화시키지 못하면서 외면 받았습니다. 반대로 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학생들의 이권을 지키겠다고 출범했던 학생회들 역시 오히려 소소한 복지사업들에만 천착하면서 경직성 비용[각주:1]에 파묻히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결국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회의 패러다임 변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학생회와 학생들 사이의 거리는 차츰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학생회를 하는 사람들은 눈물 좀 닦고...

 

  이렇게 보면 현재 학생회라는 조직 혹은 운동이 처해있는 현실이 결코 밝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러면 학생회는 사회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조직일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학생회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학생회는 도대체 어떤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학도호국단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건전한 학생자치단체입니다!

 

  본래 학생회는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 학원민주화운동과 함께 시작된 단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승만 독재정권은 사상통일과 애국심 함양이라는 명분하에서 중등교육 이상의 학교들에 어용 학생자치조직인 학도호국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상통일은 말이야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승만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반공주의 이념을 모든 학생들에게 주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도호국단은 군사문화를 바탕에 두고 교련과 같은 군사교육을 수행하는 기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이승만의 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은 커져갔고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학생들의 총의를 모으고 정치운동에 학생들을 결집시키는 단체를 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생회의 뿌리입니다. 당시 제대로 된 근대교육을 이수한 사람 자체가 희소했던 상황에서 학생들은 억압받는 대중들의 현실을 설명하고 운동을 직접 조직할 수 있는 주체들로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이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과 더불어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와 학생운동의 성장은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 독재정권의 역사를 따라 이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학생회라는 조직의 탄생과 성장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 희생된 절대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과 시민들과 함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더 평등한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열망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따라서 운동의 언어를 구축할 지성인의 역할이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 오늘날 학생회는 더 이상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사회가 불평등 속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운동이나 정치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되어도 학생회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2011년 만평인데 2017년에도 적용되는 건 무슨 상황...?

(출처 : 201161일자 한겨레 만평)

 

  학생회가 이어져야 할 이유는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에 입각해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당위적인 측면에서 대학 역시 민주주의의 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란 그 조어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demos)의 자기통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학교 역시 민주주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구성원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소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학생회라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필요의 측면에서 여전히 학생들이 당사자로서 직접 피부로 느끼는 사회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민주화나 관료제적 합리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학생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이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여전히 학생사회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인권침해문제의 경우에는 (학교당국이 운영하는 인권센터들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구제·처벌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학생들의 직접적인 의견교환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사건의 재발을 막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운동, 등록금을 낮춤으로써 좀 더 많은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어내는 운동 등은 누군가가 대리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학생회와 같은 정치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대학이 갖는 전사회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교육기관임과 동시에 한 국가의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대학이라는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는 곧 지식과 기술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확산되며 실현됩니다. 따라서 대학을 지배하는 논리를 두고 토론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정치적인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단기적인 이윤의 논리에 의해서만 대학이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단기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학문과 예술들은 점점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위축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는 학문·예술의 자유와 다양성은 위축되어버리겠죠.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함께 논의를 통해 극복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시민들, 즉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조직으로서 학생회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다. 한동안 유행을 끌었던 이 게임이 제목의 모티브다.

 

  결국 정치의 필요성과 그 공간이자 현장으로서의 대학이 갖는 중요성·특수성들이 겹쳐질 때 그곳에서 학생회의 필요성이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중요한 학생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개복치 마냥 돌연사하는 학생회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도대체 문제가 뭘까요?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자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남아라! 학생회!>에서는 앞으로 총 3부에 걸쳐서 연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1위기의 학생회에서는 학생회가 제대로 설립조차 되지 않거나 재생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학생회장단 투표가 무산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워본 경험이 있는 많은 학우들에게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무기력한 학생회에서는 학생회는 여차저차 세워졌더라도 운영에 있어서의 미숙함이나 실패가 학생회의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3오늘날의 학생회에서는 사례를 중심으로 학생회의 역할과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이제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경직성 경비(uncontrollable expenditures). 행정기관 등의 조직에서 과거에 진행했던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음대로 삭감하거나 조정할 수 없는 경비를 말한다. 예컨대 과거에 간식사업을 진행했다면 매년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지출을 간식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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