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5 학생회비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들

 

  학생회의 성격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지향해야하는가에 관하여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에 이르러 학생회가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속하는 학생으로 구성된 조합으로 주로 기능하며, 또한 시대의 변화나 역량의 한계로 말미암아 조합으로서의 역할이라도 충실히 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오늘은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여 학생회비에 관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합니다.


학생회비 납부는 의무인가 자율인가


모든 학생들아! 부탁한다!! 제발 부탁이니 학생회비를 납부해줘!!


  조합으로서의 학생회는 학생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을 하게 됩니다. 사업은 새터나 MT 같은 내부 조직 및 교육일 수도 있고, 야식과 같은 내부 공제일 수도 있으며, 대학당국이나 정부를 상대로 학생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조합의 사업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조합의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조합이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대내적으로는 조합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조합은 조합원의 회비로 운영하는 것이 옳습니다.[각주:1] 따라서 학생회비 납부는 학생회원의 정치적 의무입니다. 만약 회비를 내지 않는다면 학생회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 급부로 학생회에서 임원의 선거권·피선거권이나 사업의 수혜권 등 회원으로서의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할 의무도 없어집니다. 극단적으로는 학생회의 내부규정에 따라서 제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닙니다.[각주:2]

  반면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나오는 학생회비 고지서에는 학생회비 납부가 자율이라고 쓰여있으며, 어떤 선배들은 학생회비를 반드시 납부할 필요가 없다고 종종 말합니다. 대학당국이 학생회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서 또는 선배들이 학생회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검토해봅시다.

  조합이 조합원을 상대로 조합비의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둘 중 어느 하나를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는 조합원이 자신의 명시적인 의사로서 조합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조합원과 조합이 권리의무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방은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법에 따라서 조합으로의 가입이 아예 의무화되는 것입니다.[각주:3]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회는 의무가입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각주:4] 특정 대학이나 학과에 입학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히 그 대학이나 학과의 학생회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가법은 학생회 의무가입제도를 규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학생회는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강제적인 방식으로―직접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납자 명단을 제한 없이 공개하는 등의 간접적인 위력 행사도 포함합니다―회비를 징수한다면 오히려 현행 형법상 강요나 공갈의 죄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생회비 납부가 정치적으로는 분명 의무이면서도 국가법적으로는 자율이게 되는 근본적인 까닭입니다.


학생회비 납부를 국가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면, 간부는 어떻게 해야하나


"학생회비 납부 좀..." "나한테 돈 맡겨놨어요?" "...."


  이제 학생회 간부의 입장에서 학생회비의 납부를 극대화하거나 적어도 이를 합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학생회가 법제화되는 것이겠지만 고등교육에 관한 수 많은 제도 개혁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난망(難望)합니다. 또한 학생회가 법제화되면 권리를 보장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법적 의무와 행정적 규제가 같이 따라오게 되므로 마냥 좋아라 할 해결책은 아닙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학생회를 자율가입제로 바꾸되 가입한 학생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비를 수납하는 것인데, 언뜻 쉽고 간단해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신입생들을 상대로 매년 가입원서를 받아야 하는 행정 상의 부담이 커집니다. 더군다나 많은 학생들이 귀찮음이라든가 효용을 느끼지 못한다는 까닭의 이유로 가입을 꺼리게 되어 학생회의 규모가 축소될 수 있습니다. 학생회 규모의 축소는 운영 가능한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당국과의 대립이 있을 때 투쟁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나의 사업체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듯이 하나의 대학 또는 학과에 복수의 학생회가 설립될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물론 복수의 학생회가 적어도 조합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한다면 학생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만약 대학당국에서 특정 학생회만을 금전적·정치적으로 지원한다면―이른바 어용 학생회를 만드는 것입니다―학생사회는 자율성을 급격히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학우들이 저절로 학생회비를 납부하고 싶게끔 할 수는 없는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무엇을 하란 말인가? 세 번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원론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허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회의 필요성을 학우들에게 설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설득이라 함은 학기 초마다 홍보를 많이 하는 것 외에, 학우들에게 유의미한 사업의 진행 그리고 투명한 회계 처리를 통하여 학우들의 신뢰를 얻는 것 전체를 포함합니다. 혹시 이것만으로는 학생회비를 내지 않는 학우들이 무임승차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지 않는 학우에 대해서는 사업 참여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수준의 불이익을 부과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낮은 회비 납부율도 개선하고 “나는 학생회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라는 취지로 빗발치는 회비 환급 요청도 줄어들 것입니다.

 

학생회비,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 하나? 

  학생회비를 얼마나 또 어떻게 걷어야하는지도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합비는 조합원들에게 지우는 경제적 부담이므로 그 정도와 방법은 조합원의 의사에 기초해야합니다. 따라서 회비의 액수와 납부방법은 총회를 열든 대표자회의를 열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공식적인 의결기구가 없는 경우라면 차선책으로 학우 전체를 상대로 하는 공개설문조사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원칙으로 항상 돌아가야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대나무숲 등에서 회비의 징수와 관련하여 흔히 등장하는 문제들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회비 4년치를 일시납하는 제도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국가법적으로 일시납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실무 역량이 제한적인 학생회의 입장에서는 1학년들에게만 회비 납부를 권유해도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납 제도는 1학년에게 일시적으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는 점, 또 학우들이 학생회를 향한 지지 또는 비판을 표시할 중요한 방법을 하나 없앤다는 점에서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다분합니다. 따라서 일시납 제도가 학우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우들을 분납 허용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편입학·자퇴·조기졸업 등으로 말미암아 4년을 전부 채우지 않는 학우들을 환급 등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시납을 한 1학년들이 4년 동안 학생회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인수인계를 잘 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적당한 학생회비의 액수입니다. 학생회비의 액수를 산정하는 문제에는 참으로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기준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회원의 규모: 회원이 많을수록 집행간부나 사업의 규모도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지출은 증가합니다만, 회원 증가에 따른 회비 수입 증가분이 집행간부나 사업의 확대에 따른 지출의 증가분보다 높은 경우에는 1인당 회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② 학생회비의 납부율: 회원을 납부하는 회원들이 많아질수록 1인이 부담하는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수입의 규모입니다. 대학당국의 보조금이나 제휴사업의 수입이 많을수록 회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대학당국과의 분규로 말미암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회비 인상 압력이 커집니다. 네 번째는 사업의 종류와 규모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체계적으로 감안하여 회비의 액수를 책정한다면 정치적 반발이 줄어들 것입니다.

 

  실은 쓰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집행간부의 인건비를 주어야 하는지, 주어야 한다면 학생회 재정 특히 학생회비 재정에서 지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다루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되거니와, 이 연재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부디 이 글이 학생회비에 관하여 고민이 많은 학생회의 간부와 일반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y 위키



  1.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회가 재정 부족으로 대학당국으로부터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지원금을 들여오기는 하지만, 교육투쟁이 있을 때 잠재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당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아쓰는데에는 본래 신중해야합니다. [본문으로]
  2. 예컨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상의 조합은 같은 법 제19조에 의하여 출자금 또는 경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을 총회의 결의에 따라 제명할 수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2조는 노동조합이 규약으로써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는 조합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3. 왜 국가법적으로 보호받는 의무가입제도를 실시하려면 이를 법률로 정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부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결사를 형성하거나 가입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고(헌법재판소 2008. 7. 31. 결정 2006헌마666 등), 결사의 자유는 해석상 국가와 국민 뿐만 아니라 시민 간의 관계에서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국가는 스스로 국민에게 특정한 조합으로의 의무가입을 강제하거나, 어떠한 조합이 다른 시민을 상대로 가입을 강제하는 경우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의 해석상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전부 인정될 때에는 입법으로써 의무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사례가 바로 「변호사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입니다. 예컨대 「변호사법」 제7조는 변호사로 개업한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국가적 차원의 조합에 등록하도록 규정합니다. 변호사가 되는 순간 조합원의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이므로, 만약 협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관으로 변호사들에게 회비를 납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를 준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가법의 도움을 받아 집행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2호는 특정한 노동조합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3분의 2 이상을 대표하며 미리 단체협약으로 정한 때에는 새로이 채용되는 노동자가 그 노동조합에 의무가입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4. 1980년대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민주적인 학생회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대학당국을 상대로 내부적인 교육투쟁을 전개하거나 외부적인 사회정치운동을 할 때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생긴 규정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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