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7 학생사회 양날의 검, 친목


  우리는 지금껏 학생회 재생산의 실패, 동기부여의 실패, 선거무산, 학생회와 학교당국의 관계에서의 전략 부재, 학생회비 납부율 하락, 학생회 예·결산안의 부실함 등 굵직한 문제들을 다뤄왔다. 이들 문제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학생회의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느낌이 다른, 새로운 문제점 하나를 더 짚고자 한다. 바로 학생회 집행기구의 친목기구화라는 문제다. 누군가의 당혹감이 담긴 질문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 친목이 무슨 대수라는 거야?”

 

학생회의 친목, 나쁠 게 있나?


아니, 친목이 뭐 어쨌다는 건가?


  사실 이러한 반응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친목(親睦)이란 말은 서로 친하여 화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학생회 집행부도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인데 서로 친밀감이 있어서 화목해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만약 집행부 구성원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심해서 제대로 분업이 이뤄지지 않고 각자가 일을 떠맡아서 진행한다면 그 집단의 업무효율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친목은 학생회라는 조직에게 있어서 플러스가 되는, 아니 더 강조하자면 필수불가결한 요소면 요소였지 문제적인 요소라고 생각되기는 곤란할 것이다.


  필자도 어느 정도의 친목이 학생회의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목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단에서는 언제나 양날의 검으로 작동한다. 친목이란 개인의 기호와 공동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친목에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기 마련이며 결국 경험의 코드를 공유할 수 없는 누군가가 소외되는 형태로 집단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전체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친목은 전체집단 내부에 여러 개의 소집단을 만들어 이들 간의 사이에서 충돌을 빚어낼 수도 있다. 결국 규모가 있는 집단에서는 단순한 개인적 기호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동경험을 넘어서서 다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중심축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학생회의 기조가 되고 목표가 된다.


  결국 함께 모여서 일하고 있는 우리 집행부 구성원들이 어떤 학생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동기부여가 없는 상황에서 친목만을 조장하려고 한다면 언제든 그 친목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소집단의 집단사고라는 문제점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공통의 목표가 뚜렷하고 단합이 뛰어난 학생회라 하더라도 친목집단으로 변질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학생회가 처해있는 구조적 조건과 친목집단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만나서 학생회의 크나큰 걸림돌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학생회가 처한 구조적인 조건이란 무엇일까? 첫째 조건은 학생회 집행부에 대한 학우들의 무관심이라는 조건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연재분(1)에서 충분히 다뤘으므로 더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둘째 조건은 학생회 집행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책의 부재이다. 이 역시 바로 지난 에피소드(6)에서 다뤘던 내용이다. 복잡한 예·결산안 처리와 같은 문제에서 학생회 집행부의 활동을 학우들이 혹은 학생 대표자들이 견제하고 감시할만한 제도적 방안들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학생회 집행부의 양심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공적 사안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마치 화약처럼 깔려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넌 아닐 것 같지? ㅎㅎ....


  여기에 도화선을 놓는 것은 바로 집단사고(groupthink)의 문제점이다. 한국심리학회가 2014년 발간한 심리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집단사고란 집단 의사 결정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응집력과 획일성을 강조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의사 결정 양식을 말한다. 이러한 집단사고의 대표적인 예시이자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 외교정책결정과정이론에 한 획을 그은 제니스(Janis, 1982, 1989)의 연구였다. 제니스는 1961년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의 특별자문위원회가 쿠바의 픽스만 침공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가 큰 낭패를 본 사건을 분석했다. 미국 대통령의 정책자문위원회라면 분명히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전문가들이 참가했을 텐데 왜 픽스만 침공이라는 황당한 작전에 만장일치로 찬성을 하게 된 것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제니스는 서로 강한 유대감으로 묶여있는 집단에서 이러한 유대감을 깨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심리적 기제가 반대의견을 위축시키고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집단사고가 비합리적인 정책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규명된 것이다.


  애초에 그 분석의 대상이 정책결정이었던 만큼 이 문제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학생회에게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내부 집단의 결속력이 뛰어난 것도 좋지만 친목집단으로 점점 변화할수록 학생회 집행부 역시 집단사고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집행부 전체 회의를 가정해보자. 다른 부서에서 낸 사업이 맹렬한 비판을 받고 나아가서는 완전백지화까지 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친목과 유대감으로 묶여있는 학생회 집행부라면 실제로 이를 비판하는 정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결국 결함투성이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채 집행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는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관심사와 문제에 대한 비교적 유사한 관점을 공유하는 학생회 집행부에서 야심차게 사업을 준비했지만 학우들의 반응이 차갑기 그지없는 사업들 말이다. 이런 사례는 주로 강연사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연사업을 기획하는 당사자들에게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자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우들에게는 인지도가 부족한 연사를 섭외하는 경우다. 집행부 내부에서의 집단사고가 일반 학우들의 관심사와 괴리된 결정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업으로 좋은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학생회비를 낭비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이렇게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도화선은 곧장 화약과 만나 맹렬하게 폭발한다. 먼저 학생회를 견제할 만한 충분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졸속사업에 투입되고 낭비되는 자원들이 늘어난다. 다음으로 이러한 학생회의 행태가 누적되다가 폭로되거나 터져 나오면서 학우들의 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다시 곤두박질치게 된다.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줄어들고 학생회 집행부는 다시 고립되면서 응원을 받지 못하지만 견제도 받지 않는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학생회 집행부가 내집단의 결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생들과 소통을 단절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로 후퇴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학생회의 집단사고가 불러일으키는 비합리적 정책결정들은 이렇듯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버린다.

 

동성사회적 사고까지 더해진다면

  그런데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고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흔히 호모소셜(homosocial)’이라고 부르는 동성사회의 폐쇄성이라는 문제이다. 동성사회란 미국의 비평가인 이브 세지윅(Sedgwick, 1985)이 제시한 용어로서 사회적으로 성별이 동일하다고 인정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사회적 유대 내지 연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들 동성사회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젠더 역할을 서로 확인하고 이에 미달하는 이들을 배척하면서 점점 젠더 역할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남톡방 문제를 통해서 불거진 대학사회 내 동성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의 문제


  예컨대 한동안 대학가를 뜨겁게 달궜던 남톡방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남톡방 사건을 통해서 남학생들이 카톡방에 모여서 서로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평가하며, 소위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취향들(ex. 축구, 게임 등)을 서로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강화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남성성이 주로 여성에 대한 통제력, 여성에 대한 우위 내지 지도력을 갖추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바로 그 남성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강화해주는 과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성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과정이 폐쇄적인 단톡방의 구조(, 외부에 대한 익명성)와 폭력적인 문화(포르노 등을 통해 재현되는 성폭력에 친화적인 문화)라는 기폭제를 만나 폭력적인 언행들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학생회 집행부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2015년과 2016년을 달궜던 남톡방 사건들 중에서는 학생회에서 인권관련 문제들을 다루던 집행부원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들도 있었다. 이는 친목을 위해 조장한 동성사회적인 유대감이 언제든 폭력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실제로 오늘날 학생회 중에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와 잦은 회의를 거치면서 소위 뒤풀이로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여학생들은 (집에서의 통금시간이라던가 자취금지 등의 이유로) 빨리 귀가해야 하는 반면에 남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술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집행부 안에서의 성비와 무관하게 친목을 다지는 공간에서 남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동성사회적인 유대를 구축하면서 여성들을 배제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사회적인 유대가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로 변화하지 않도록, 언제나 집단 내의 친목문화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신뢰를 주어야 하는 학생회 집행부라면 더더욱 말이다.

 

스스로를 견제하고 성찰하기 위한 제도적 고안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안의 친목이 건강한 것인지 아니면 폭력적인 것인지를 늘 성찰하기 위한 제도적 고안이 필요하다. 제도적 고안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거창한 것들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학생회칙을 개정한다거나 기구를 신설해야만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루틴(routine)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이 느끼고 있을 서로 다른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서로의 문제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을 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뒤풀이를 포함해서 한 주간의 학생회 친목활동에서 불편한 점이 있거나 고민이 드는 점이 있다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이때 일부러 비판점을 제시하는 데블스 어드버킷(Devil's Advocate)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러한 대화의 시간을 통해서 단위 내에서 차별과 소외를 예민하게 느끼는 구성원들(잠수함의 토끼들)이 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학생회 집행부 안의 친목이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니면 친목활동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도맡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그 사람의 취미와 취향을 중심으로 기획된 뒤풀이를 해보는 것도 좋다. 누군가는 보드게임 카페에 가보자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함께 PC방을 가자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군가는 참여할 수 있고 누군가는 참여할 수 없는 형태로 고정된 뒤풀이나 친목모임이 계속 반복되어 타성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 지금 우리 안의 친목은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평등한가? 질문하고 반성하고 대화할 시간이다.


by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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