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라! 학생회! 1부 위기의 학생회

Ep.4 학생회는 평화로운 임기의 꿈을 꾸는가



캐릭터 생성을 축하합니다


이제 열렙하는 일만 남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추석 연휴를 앞두면, 찬바람이 잠깐 불어오고 사람들이 옷깃을 여밀 때면, 으레 학생회실은 한산해지고 빈 공간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 생긴다. 11월에 있을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는 선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기조는 당연하게도 선본의 기반이다. 선본들이 인권, 생활복지, 교육권, 사회참여 등의 다양한 기조를 내걸고 움직이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적어도 ‘학생사회’에서는─단연 대학본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움직일지에 대한 것이다. 학생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견은 학생회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적어도 학생회가 학생들의 자치기구임은 공통적이었으며, 필연적으로 대학공간의 4주체(교원-직원-학생-본부) 중 학생과 본부는 끊임없이 아웅다웅 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이다.


아무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는 당신의 몫이다. 선거에서 당선된 당신, 캐릭터 생성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최종컨텐츠의 결말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내 맘을 들었다놨다

 

당신의 캐릭터-집행부가 좋을지 나쁠지는 당신이 선택한 길에 달렸다. 시대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좋은선택이었을 수도, 안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학생회의 대본부 노선을 크고 거칠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투쟁이라는 한 축과 협력/개량이라는 나머지 한 축이다.(그 외 어용은 단호하게 무시하도록 하자) 2000년대 비권과 반권이 대두되었을 때에서야 협력노선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역사는 해방공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47년의 국대안 정국에서부터 시작하여, 4·19의 와중에도, 군사정권과 학원자율화의 수많은 격변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때의 논의를 지금과 그대로 비교하며 맥락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반민주세력이라는 거악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역량도 한미해졌다. 수 년 동안 언급되어온 ‘학생회의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대중들은 탈정치화·파편화되었고 과거의 경험들은 실전, 활동가의 재생산도 언제나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많은 학생회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역량은 줄었고 시대의 요구는 바뀌었으니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텐데 전인미답의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학교당국은 투쟁현안을 뿌려라!!


수많은 부침 속에서 ‘고맙게도’ 대학본부와 정부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반-자치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학생회를 견인한다. 국정화 교과서, 학사 엄정화, 사학비리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서 결집된 학생 주체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며 학생조직을 소생시키고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물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와해시키려 하지만, 그럴수록 학생자치와 학생조직의 몸집을 키워내기 일쑤이다. 여러 사학재단이 그런 길을 걸었다. 상지대나 동국대와 같은 곳에서 사학비리는 시대를 역행하여 기층조직을 활성화하고 학생회의 지속에 분명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와는 다르게, 대학본부가 사고─제2캠퍼스를 지으려 한다든가 학사제도를 개악한다든가─를 안 쳤을 때, 좋든 싫든 학내의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학생회는 무엇을 해야하는가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다시 말해 강제로 주어진 사명이 존재하지 않으니 스스로 개척하고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보통의 학생회는 공통의 의견을 구성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거악은 사라졌다. 모두가 염원하던 민주화는 이루어졌고 이전보다 세상은 많이 나아진 듯 하다. 또한 대학생이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보편적인 신분이 됨에 따라 이해관계도 다를뿐더러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제2캠퍼스를 짓는 게 학교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학생에게 부담이 전가될지, 페미니즘과 정체성정치에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낮은 등록금을 선택할지 좀더 부담하여 좋은 교육환경을 누릴지 등의 문제가 대표적일 것이다.


학교당국의 지원없이 무엇 하나 굴리기 힘든 복지행사 및 축제...


탈정치를 요구받는 시대의 많은 비권 학생회는 이 상황에서 학내복지 혹은 오락적 행사라는 길을 쉽게 택할 수 있다. 단과대 학생회, 총학생회의 많은 수가 간식행사, 축제, 초청강연, 시설개선 등을 공약하고 당선되어 추진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대학본부에 의존해야만 한다. 자치공간 확충, 동아리지원금, 축제 예산, 셔틀버스 운영비 등 돈은 들어가고 실무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은 한도 끝도 없는데 학생회의 재정은 튼실하기는커녕 본부의 협조없이는 징수조차 힘들고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본부와의 친밀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 아니 능력이 된다. 특히 스스로 재생산에 성공해낸 선본이라면, 그 이전부터 있었던 논의들과 협력을 이어가서 쉽게 공약을 이행하곤 한다. 더욱이 단과대, 학과 단위로 내려가며 작아지면서 공약 이행의 많은 부분을 학교측에 의지하게 되며, 사실상 행정실의 부속기구화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항상 학생회의 자체적인 역량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작게는 학생회원 명부에서부터 학생회비, 공간 이용 등 절대적인 부분은 최종적으론 학교에 권한이 있다. 학생회원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고 조직하고 결집하지 않은 채로, 협력의 꿀맛에 길들여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지속되면 어느샌가 예속되어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학교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문화·복지·시설 사업이 주축이 된 학생회를 말이다. 투쟁의 과업이 주어지게 된다면, 누가 쉬이 투쟁을 위해 나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을 포기하고 언제나 대립각을 세우는 학생회가 지속적으로 학우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한다. 1) 고전적 관계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과 역량에서, 2) 극도로 다원화되고 탈정치화되고 무관심한 학생대중의 여론에서, 3) 본부와의 긴밀한 협조라는 양날의 검을 앞에 두고, 4) 담론을 재생산하고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그래서 어쩌라고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


뭔가 앞에서 거창하게 말을 했지만, 나도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랬으면 제가 회장을 했겠죠….) 다만 우리가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언급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이미 숱하게 반복된 문제들이다. 학생회 위기론은 등장한지 꽤 됐으며, 사회참여-반동-복지-교육권리-대학참정권-인권 등의 순으로 등장하는 담론들도 이미 십여 년 전에 등장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학습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기록해야 할 뿐이다. 맥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진 이유를 찾아내고, 현실에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소속 단위의 자치가 완전히 망가졌다면, 본부와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해나가며 학생회의 역량을 몇 년에 걸쳐 강화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학생자치가 활성화된 단위라면 이를 기반으로 대본부 투쟁사업을 기획할 수도 있다. 선택의 자유는 여러분의 몫이다. 그저 길들여지지만 않으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평화로운 임기를 꿈꾼다. 당신의 한 해 임기는 어떨 것인가. 단 꿈을 꿀 것인가, 현실에 있을 것인가, 꿈을 꾸되 현실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인가.


by 완도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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