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집중연재 : 대학 안의 노동 2편

2018년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을 돌아보며

윤회│고려대학교

 

희망찬 새해를 이야기하기 어렵기만 했던 2018년의 1월이었다. 고려대학교 학교본부는 2017 12 21일, 학내 청소노동자 중 정년 퇴임자 10명의 일자리를 단기 아르바이트로 대체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적정 노동자 수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합의를 뒤엎는 통보였다. 당연하게도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는 것만이 반발의 이유는 아니었다. 학교의 통보는인원 감축을 통한 학내 청소 노조의 힘을 약화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도 했다. 노조 측의 이와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학교는 단기 알바 투입을 강행하였다. 노조는 맞서 싸웠다. 학생들도 함께 나섰다. 2018 1 2 새벽부터 고려대학교의 7개 건물에서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동이 트기 전부터 피켓을 들고 날마다 3시간에 걸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단기 알바 업체 직원들이 건물에 들어올 수 없도록 몸싸움마저 벌여야 했다. 선전전은 같은 달 30일, 양 측이 합의를 이뤄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정말이지 희망찬 새해를 이야기하기 어렵기만 했던 2018년의 1월이 해야겠.

 

3700억 적립금의 재정난

고려대학교 학교 당국은 위와 같은 통보의 이유로 재정난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재정난을 일으킨 원인으로 최저임금 상승과 등록금 동결을 지목하였다. 노조 측 자료에 따르면 정년 퇴임자의 자리를 단기 알바로 대체할 경우 예상되는 연간 비용 절감 효과는 몇천만 에 불과하다. 학교 당국의 재정난 호소는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도 반복되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학생 등록금 동결로 인해 노동자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동자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각각의 테이블에서 내세운 셈이다. 이 정도면 학교의 협상 기술을 노학 양면 전술로 부름 직하다. 물론 고려대학교 적립금 현황에 대해 알아보자면,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에 이어 국내 4위로 3700에 달다. 어쩌면 이 모습이야말로 작금의 대학 행정이 교육보다는 경영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인지 모른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이 기존의 수익분을 충당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고용 불안, 저질 일자리 양산, 노조 약화를 앞장서서 자행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

물론 이 모든 풍경이 생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고용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학내 노동자 사안에 앞장서서 연대해온 학생 단체인 고려대학교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이하 학대위)의 구성원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고려대학교 학교 당국이 비용 절감을 명목으로 악질 고용주의 행태를 저질러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다.이번에도 학대위 구성원들은 학내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투쟁을 진행하였다. 새벽 선전전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학내 의제 활성화를 위해 각 단과대 학생회를 돌며 간담회를 진행하고 대자보를 작성하였다. 또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차원의 견해 표명을 위해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소집하게끔 하였고, 그를 통해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결의문이 발표되고 이틀 후 학교 당국은 정년 퇴임자 자리를 단기 알바를 투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타협을 제안하였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결의문이 실제로 학교 당국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며, 학생사회의 섣부른 승리감은 경계해 마땅. 그러나 양대 노조가 연대해서 같이 싸울 줄은, 학생들이 이 쟁점에 이렇게나 연대할 줄은 몰랐다는 학교 측 실무자의 말처럼, 적어도 학생들의 연대 협상 중 노조 측 주장의 든든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마침내, 1월의 끝에서 고려대학교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작은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절반의 승리, 그럼에도 얻은 것들

투쟁하는 당사자들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지점에서 고려대학교 투쟁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다. 다만, 완전한 승리라 평하기에는 아쉬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고용 안정 방안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빠지고 지속적으로 강구한다는 느슨한 문구에 그쳤으며, 신축 건물에 대한 협의는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다. 그럼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던 학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다는 지점은 오롯이 평가받아야 마땅다. 고려대학교뿐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노동자 투쟁이 전개되고 있기에, 이러한 승리가 대학가 노동자 투쟁 전반에 가져올 긍정적 여파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다.

시선을 고려대학교 내부로 집중하여도 이번 승리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영향이 존재한다. 여전히 고려대학교 학내에서는 수많은 행정이 학내 구성원들과의 소통 없이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테면, 외국인 등록금 인상은 그다.현행 구조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 결과 작년 간신히 막아냈던 외국인 학생 등록금 인상이 올해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통해 끝끝내 통과되었다. 등록금 문제가 이러한데, 다른 분야라고 소통이 이뤄질 리 없다. 수강 신청 제도나 전공과목 개설 등 교육권 제 역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만다. 런 상황 속에서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함께 싸웠던 1월의 기억은 승리의 경험치이자 투쟁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다. 완전한 승리는 아닐지라도, 2018년 학내 민주주의는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3월, 투쟁은 이제 시작

우리는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초입에 서 있다.  말인즉슨, 노조의 단체 교섭과 학생회의 교육권 투쟁 역시 점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많은 학우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해야 할 때다. 고려대학교 교정에 다시 한번 승리의 함성이 들릴 수 있을까?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1월의 투쟁과 승리는 노조와 학생회 모두에게 상황을 아주 조금, 그러나 동시에 분명하게 바꿔놓았다.

*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대학연구네트워크, 학생의 새로운 길을 향하다.[각주:1]

 




최민석[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준비위원장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대학과 학생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연구자들의 모임인 대학연구네트워크는 2017년 초, 열세 명의 학생 활동가와 청년 연구자들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핵심적인 목표는 학생의 시각을 반영하여 대학의 미래를 만드는 것으로, 2018년 초 경에 정식으로 발족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으로 국내외 대학 사례 수집을 포함해 대학·고등교육에 대한 기존 문헌을 검토하고 대학과 학생 사회의 역사를 살피며 대학 거버넌스·학생 자치가 원활하게 작동할 방법을 탐색하는 것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운영 및 관련 정책에서 대학을 구성하는 한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은 없었습니다. 등록금 등의 극히 제한적인 이슈가 국가적으로 논의된 바는 있으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포함해 학생의 교육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안건에 관해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청취 된 적도, 그것들이 반영될 통로도 사실상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는 제도의 미발전 못지않게 학생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길러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학생의 싱크탱크, 이것이 대학연구네트워크의 목표입니다.

 

학생 운동의 시신 위에서

 

저는 2010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도 오래 했습니다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직업을 7년째 어디건 서류를 접수할 때 쓰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오면서 저는 또한 운동권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해 미욱하게나마 제가 서 있는 장소부터 바꿔가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의 싸움을 겪고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학생 운동은 쇠퇴는 자명합니다. 제가 입학하던 당시 이미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었으며 이제는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조차 드뭅니다. 경쟁적으로 학생회를 수권하려던 정파들은 무너졌고 나아가 학생 자치 자체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회가 유지되어 오던 대학들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 학생회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학생회 간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습니다만 소위 수도권 주요 대학 총학생회들조차 제대로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2000년대 후반 반값등록금이후 학생 사회에서 더 이상의 전국 단위 의제는 없었을뿐더러 그러한 의제를 만들려는 시도 또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학우들과 일반 여론이 호응할 만한 의제를 발굴하지 못했는지에 대하여 질문은 계속되었지만 깔끔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50%의 투표율조차도 채우지 못해 선거가 연거푸 무산된 것은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회에서는 이제 누구도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그저 산업예비군에 불과하고 여러 취업 관련 정책의 수혜자에 불과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청년 관련 각종 위원회 등을 만들거나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가 청년 정책 관련 제언을 하도록 하는 등의 행정적·정치적 몸짓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조치입니다. 학생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다기보다는 행정이 사회 취약계층으로서의 학생을 돌보는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변화에 무뎠기에,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상실되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구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대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을 정의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대학이라는 현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졌습니다. 이 현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화 이후, 학생 사회를 수권하던 운동 정파들이 학생들의 정치 피로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운동권의 등장으로 인한 복지 공약 경쟁에 지나지 않았고 대학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전략적인 고민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 피로는 커져만 갔고, 마침내 운동이 조직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습니다. 이윽고 지금의 붕괴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호황기가 끝나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급속도로 하락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기로 불리는 지금에 와서는 취업이냐 창업이냐가 대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둘뿐인 선택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각종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을지, 아니면 창업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서 인맥을 쌓고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맬지. 이들 이외의 선택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략이, 그리고 그를 위해 대학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하나의 원인은 바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 사회가 제대로 답하려 한 적이 없었던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며, 고등교육은 중등교육을 마친 자에게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전문성을 부여하는 교육으로 규정됩니다. 한국의 대학은 90년대 말까지 이러한 규정에 기초하여 고도발전에 필요한 사회 엘리트의 수요를 충당하는 장치로 존재해왔습니다. 고도발전기의 종결과 함께 이러한 기능이 자연스레 약화하였음에도 이제껏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대학은 매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기를 계속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학생은 유휴인력 내지는 산업예비군으로 재규정 되었습니다. 학생 사회의 중요성은 약화하였고, 위기설이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과 학생사회는 이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대학이 현장이자 동시에 신분으로 받아들여지던 관습에 머물렀습니다.

 

주어진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안주하자 자연스레 학생 사회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었습니다. 일부 교육권 문제나 등록금 문제, 학내 복지 문제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외에는 사회에 연대하는 기특한 학생이라는 이미지에 충실하였습니다. 대학들이 사회의 변화와 정책의 요동침을 따라 모습을 바꿔 갈 때, 학생들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묻지 않는 사이 대학은 낯설고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대학들은 앞다투어 여러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이 세계 몇 위임을 자랑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학생들은 실적평가를 위해 수치화되어야 하는 항목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거쳐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는 대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한국은 이제 아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의무는 무엇이며,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바로 이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이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어떤 교육이 어떻게 고민되어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끝에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목적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만이 아니라 재구성 또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가 고민하는 학생의 대학을 위한 전략의 토대는 이러한 질문에 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학생·연구자들과 함께 미래로 전진하겠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멸망의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가는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기나긴 모험은 원활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지만, 끝내 우주비행사들은 인류의 미래를 찾아 전진합니다. 대학 사회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영화에서의 우주비행사들과 같이 길을 찾는 이들의 NASA이자 우주선이 되고자 합니다.

 

정식 발족하는 내년에는 대학 관련 국내외에서 발간된 문헌으로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에서부터 각국의 학생 자치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2월에는 일본으로 1년간 연구위원을 파견하여 각지의 대학 연구자를 만나고 학생 활동가를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근대 한국 교육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이니만큼 한국 대학의 미래에의 시사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지의 독립적인 연구자들과 만나 협업할 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해주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그래왔습니다. 그네들이 학생 운동에 참여해왔건 하지 않았건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모두 소중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학생들은 이미 교육 과정에 참가하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고자 지금껏 분투해왔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소리를 다시 낼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를 바꾸어나가겠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대학연구네트워크(준) 준비위원장.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전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산하 학생위원회 연석회의 의장. 전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본문으로]



 


실패한 인터뷰 몽상





박규민





졸업반 K는 협박에 면역이 된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유년기를 거쳐 서로의 변화를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우린 학교가 파하면 습관적으로 음반 가게로 가서는 음악에 대해 온종일 떠들곤 했다. 나는 얼마 뒤 문학에 빠져서 활자와 활자를 연결하는 일에만 골몰했으나 K는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음악을 섭렵, 패션과 미술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다방면의 문화를 체득했다.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하자 그는 나를 이태원으로 불러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K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이태원 거리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인간의 머리털로 구현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빡빡 밀었고 열대 우림에서나 어울릴 법한 반팔 셔츠, 그리고 쇠 장식이 매달린 까만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이 년 만이었나? 오래된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긴 간격을 두고 만난 참이었다. 어떻게 지냈냐, 오랜만이다 하는 통상적인 인사들을 빠르게 나누자마자 그는 좋은 술집을 알고 있다면서 어느 골목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이태원에는 커다랗고 높은 건물에 한 잔에 최소 만 원은 하는 비싼 펍들만 즐비한 줄 알았는데, 그는 자신이 그 동네에서 구른 경력을 증명하듯 뒷골목 구석에서 생맥주를 싼값에 파는 술집을 찾아냈다. 워낙에 복잡한 길목을 수차례 꺾어 들어갔으므로 나는 거길 다시 찾아가진 못할 듯하다. 이 글은 그곳에서 나눈 취중 대화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K가 무슨 협박을 듣고 살았느냐고? 그에 대해 더 상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그는 대학에서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전공했다. K의 대학 생활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시쳇말로 현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와 노래를 좋아해서 어느 노래패에 가입했더니 거긴 알고 보니 민중가요를 부르는 곳이었다. 그가 노래를 퍽 잘하는 걸 보고는 80년대 끝자락에 길거리에서 경찰이랑 백병전을 펼쳤던, 명절마다 무덤을 향해 대장정을 펼치는 한국인들처럼 여전히 대학에 얼굴을 비추는 선배들의 의식화가 시작되었다. K는 도대체 이 인간들이 뭘 경험했길래 이렇게 열을 내나 싶은 궁금증에 열심히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NL이니 PD니 하는 거대한 계보를 그때 알게 되었고, 도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 살기 힘든지가 궁금해졌다. 그 문제에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이러다가는 국보법으로 잡혀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갖 반국가적인 책과 논문을 읽어댔다. 하지만 K는 어느 순간 자기만의 망상에 빠지는 것 같다는 자각이 들어서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로부터 멀어졌다. 이후 페미니즘에도 탐닉했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즉 혼자 이루어지지 않을 변혁을 상상하는 기분이 씁쓸해서 사상에의 관심을 끊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K의 인생을 걱정해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남 걱정해주는 인간들이 많은데 왜 사회는 이 모양인가 싶을 정도로 풍부한 충고, 대놓고 말하면 꼰대질을 겪은 것이었다. 가령 문과가 취업할 길은 어차피 없으니 학점 따위 챙길 필요 없다는 선배들의 낭만적인 자조라든지 반대로 저렇듯 불만만 많은 놈들이나 안 되지 스펙을 잘 챙기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너도 좀 더 노력해서 살아보라는 질책, 혹은 우리 때만 해도 대자보도 좀 활발하게 붙이고 했는데 니네는 SNS에나 빠져 있으니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고학번 화석들의 힐난 같은 것. K는 그 걱정을 빙자한 협박들에 휘둘린 적도 있으나 결국은 다 쓸모없는 소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학에서의 시간들은 그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으니까.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사실 왜 대학을 와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었거든.” K는 그냥 중산층의 자식으로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대학에 와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 중에서 못나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 대학은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학문을 붙들겠다는 열의는커녕 그냥 대학에 가면 노는 줄 아는 연놈들이 태반이었고, 그러니까 수업 시간이 되면 신입생들은 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게 쓸모가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말은 비약이겠지만, 다양한 아카데미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유튜브로 언어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이 유일한 학문적 창구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K는 현재 서브컬쳐와 관련된 매거진에서 필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는 마지막 학기만 남긴 채 무한정 휴학 상태였고, 타투나 마이너 음악 같은 소수 문화에 대해 글을 쓰노라면 학교를 졸업하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다고 했다.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물론 학위는 받겠지. 그런데?” 나는 K가 지금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혼자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에 감정이 격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묘한 반항심이 일었다. 애당초 이 인터뷰의 주제는어차피 의미가 없어졌으니 본문에도 언급하지 않았지만당신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인가를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K는 대학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줄창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의 면전에서 대학을 변호하고 싶었다. 아주 무의미하고 허무한 공간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책 없이 대학의 쓸모없음만을 주장하는 건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만 해도 총장과 이사진의 비리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누군가는 단식 투쟁을 했고, 어떤 이는 45일간 고공 농성을 치렀다. K의 말대로 이제는 대학이 단지 제도권 교육 경쟁의 승리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 가는 축하 파티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괜한 희생을 치렀다는 건가?

 

K의 웃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웃느냐고 묻자 그는 내 표정이 행사 때마다 학교에 찾아오던 노래패 선배들의 그것과 비슷했다고 대답했다. 가끔 사람들이 대학에 대해 품고 있는 기대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어마어마해서 놀랄 때가 많다고 K는 또 말했다. 어느 쪽에서는 대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인재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다른 쪽에선 사회를 뒤집어놓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사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애들은 무슨 담론을 만들고 예전처럼 사회에 저항하는 따위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데 많은 이들은 대학이 기능을 못한다느니 어쩌느니 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왜 꼭 대학에서 그런 걸 해야 되냐?” K는 술값을 계산하면서 말했다. 원하는 인터뷰이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이제는 그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진보적 담론이나 사회 저항의 문제만 놓고 본다 해도 굳이 그런 걸 대학에서 실현하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니냐고. 대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이고 또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지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꼭 대학에서만 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나는 약간 취기에 오른 채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나도 어지간한 꼰대일지도 몰랐다.

 

대학은 그냥 거대한 안방 같은 거야. 다 같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 거지.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거나, 스타트업을 한다거나, 아니면 뭐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입시의 터널을 통과한 인간들이 꼴같잖은 자신감에 취해서 공상을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꼴이지. 아침이 다 지나가버린 시각에 잠에서 깨면 수습할 길 없는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K는 담배를 피워물며 마치 그날의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이태원의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K가 그토록 대학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술을 마시던 중에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냈었고, 임기 중에 학생총회를 소집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불발된 적이 있었다. 무슨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단지 낮잠이나 실컷 자려고 모인 인간들의 집합소. K는 서브컬쳐판에 몸담고 살다가 학교는 가능한 늦게 졸업할 예정이었다. 학교를 비로소 떠났을 때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일 것 같아서 두렵다고.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게으른 오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전부 패배주의자가 되어 있는 현실이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필자 소개]


박규민

1993년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영문과 재학.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등단.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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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말




이재임(외줄산책 편집장)


 

잡지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다. 산책자는 마주치는 것들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고 관찰하는 자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하나에 몰두하다가 갈 길을 잊지 않고, 감정과 사념들에 휩쓸려 주저앉지 않고, 권위나 원칙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지 않기를 바랐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고 오랫동안 몸담아 온 곳인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데 절박함을 느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다. 이 모호한 제호를 권영민 선생님의 글이 잘 규명해주신 듯하다. 결국 대학의 바깥은 없으며 탈구축으로서의 비판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빌려 머리말에 적는다. 심기용 편집위원은 글에서 탈대학이란 대학의 폐기보다는 대학의 재전유가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으니 필진들 간은 물론 잡지 전반적으로 공유된 취지라고 할 수 있겠다.

 

글들은 각각이 어느 하루의 시간대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실었다. 그것이 분명히 드러난 건 첫 번째와 마지막 원고이고, 묘하게도 겹쳐 보이지만 다른 패배주의를 이 잡지의 전체 분위기로 가져오게 되었다. 박규민 편집위원의 대학 졸업이란 마치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게으른 오전과 같다는 묘사에서 시작해서, 늦은 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해있는 지방대생의 이야기까지. 대학이라는 주제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슬픔, 좌절감이 깃들 수밖에 없는 듯하다. 두 번째 글에서 다룬 것처럼, 우리의 대학에서는 학내 언론 기구가 쓰러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일 수 있지만, 서울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에서 고민하는 지점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보았고, 오히려 지방 대학에서 하는 고민들이 대학의 문제들을 더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시훈 선생님의 글은 한정된 지면에도 불구하고 (지방) 대학 및 (지방) 대학생과 한국 현대사와의 관계와 그 변화를 고찰하면서 대학과 지방대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하기도 한 김현진 편집위원의 원고는 서울 수도권 대학생들과 지방대생들이 어떤 출구를 앞에 두고 마주하고 있기만 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출구는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마냥 읽기 쉽지는 않지만, 필진들이 오랫동안 해온 고민들을 압축적으로 풀어낸 원고들이다.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한다.

 



[필자 소개]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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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연재취지문]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10월에 발간된 독립잡지 <외줄산책: 탈대학>(이하 <외줄산책>)은 이 시대 대학과 대학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잡지이다. 탈대학이라는 도발적인 부제가 달렸음에도 <외줄산책>은 대학 외부로 부터의 변화나 대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다시 한번 새롭게 대학을 생각하기 위한 온기와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시대 대학은 쓸모없음의 쓸모마저 증명해야하는 수월성으로부터의 공세와 순수한 대학이라는 낡은 관념의 냉소 사이에서 무력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대학을 가득 채웠던 배움과 탐구를 통한 해방과 자유에 대한 열정도, 세계의 변화를 위해 시대를 몸으로 받아내던 투지도, 사회적 역동성과 성공에 대한 활기도 지금의 대학에선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거대한 받아쓰기 학원과 패배와 냉소, 회의, 빚의 행렬 하지만 그런데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짜증 섞인 강박감이 우리의 대학 위를 부유하고 있다. 대학은 대학생에게 어떠한 구체적인 상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들 스스로가 그렇듯 가토 슈이치의 표현처럼 기계적인 노예의 삶, 아주 성공한 기계적 노예의 삶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 누구도 우리가 거쳐 왔고 지금도 발 딛고 있는 이 공간의 퇴락에 대해 말하거나 묻거나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질문하고 비판하고 성찰하기보단 받아들이고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대학의 본령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대신 대학 포위한 수월성 우선주의와 타락한 실력주의의 신화가 이 물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지에 대한 물음보다 이것이 무슨 쓸모와 미래 소득을 주는지 모두가 그 질문에 매달릴 뿐이다.

 

  이처럼 퇴락하고 죽어가는 대학, 대학사회, 교육의 위기를 명분으로 한동안 많은 이들이 대학으로 벗어나기 전략을 대안적이라 여겨왔다. 김예슬 선언이 대표하는 대학자퇴 운동, 소장파 비전임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대학 외부의 지식과 학문을 위한 대안공간 운동 같은 것들이 바로 이 탈-대학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탈 대학은 대학 바깥에 해방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대학을 둘러싼 거대한 인식의 지층들에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대학이라는 지층을 쌓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이 싸움은 구체적 전선도, 후방도, 적도 아군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잔디밭과 카페의 테라스에서, 우리의 마음과 의식 속에서, 너와 나의 만남 속에서 지층을 새로 쌓고 기존의 퇴적층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외줄산책: 탈대학>은 세상에 딱 200부만이 존재하는 아주 작은 독립출판물이다. 그렇기에 접하기도,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지나쳐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출판물이다. 이에 대학을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대학연구네트워크>란 공간을 통해 <외줄산책>의 고민과 모색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연재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떠들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연재의 가장 중요한 취지이며 목표일 것이다. 이번 <외줄산책> 연재가 강의실과 잔디밭과 카페에서 함께 싸울 우리에게 공동의 발판이자 서로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가 되길 바라본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에 <대학연구네트워크>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연재 될 <외줄산책>에 많은 응답과 관심을!


by 시훈

 

 

[연재 계획]

 

20171218머리말(이재임)

201712251. 실패한 인터뷰 몽상(박규민)

2018112.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이재임)

2018183. 현장으로의 초대(심기용)

20181154. 외줄타기_대학 바깥은 없다(권영민)

20181225. 만들어진 2부리그(이시훈)

20181296. 없는 출구(김현진)

201825맺음말(이재임)

 

[외줄산책 소개]

 

<외줄산책>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 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 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 wonderinglee@gmail.com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pg/singlelinewalk

 

 

[필자 소개]

 

박규민

1993년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영문과 재학.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등단.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심기용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게이로서 살아가다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 중.

동국대학교 큗 초대 회장.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7대 의장.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공동저자.

 

권영민

작가.

대학원에서 현상학을 전공했다.

저서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 공저셀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속 대담의 대담자 중 한 사람.

한국일보와 매일신문에 정기칼럼을 썼고, 쓰고 있다.

 

이시훈

대구에서 20대를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언저리 라이프로 보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 공동 창립자와 대표를 맡았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공동 설립 제안자를 맡고 있다.

 

김현진

영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학내 언론사인 영대신문기자로 1년간 재직.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에 다년간 참여.

서울과 대구의 전시회에 다수 참여했으며, 경제적 독립 후 대구에서

페미니즘 공부와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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