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외줄산책 편집장)





1.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는 예산권편집권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동국대학교 학생 자치언론기구로, 1986년부터 교지 東國(이하 동국교지)을 발행해 왔다.[각주:1] 교지는 한 학기 동안의 학내외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출판물로 1년에 두 차례, 3월과 9월에 발간된다. 최근에는 필요한 경우 속보성을 위해 페이스북으로 단신 보도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각주:2]


나는 2014년에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발간했다. 마지막 교지 편집후기에 다시 돌아와 잡지를 만들 생각이라고 적은지 2년이 지나 잡지 <외줄산책> 창간호에 교지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잡지를 함께 하는 편집진인 심기용과 박규민은 대학교 1학년 때 각각 학과와 교지를 통해 만난 가까운 친구들로, 오랫동안 글과 말로 교류해온 사이다. 우리의 잡지는, 나의 입장에서 단적으로 말해보자면 교지를 만들 때 느꼈던 한계에서 시작됐다. 학내 언론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을 담아야만 한다는 당위는 굳건히 설 지반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머물러야 할 곳이 구획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 그 영역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장의 현실이었다.



2.


2014, 교지 출판에 온 힘을 쏟았던 그 한 해를 떠올리면,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가려고 했던 어린 내가 기억의 중심에 있다. 편집장은 그다음 학기 초에 배포하게 되는 교지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수습편집위원들을 이끌어가고, 교지가 완성되면 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잡다한 일 모두를 처리해야 했다.) 수습위원을 모집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첫 과제였다.


조지오웰은 썼죠. 나는 왜 쓰는가. 왜 우리는 글을 쓸까요? 당신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인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중 어느 것에 끌리셨나요? 잘 모르겠어도 상관없어요. 어느 이유가 먼저인지도 상관없어요. 교지는 당신 그 자체로 만들어진답니다. 즐겁게 글을 써요!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왜 쓰고 싶은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봅시다.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들어와도 되는 거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들어와도 되는 거예요. (룰루) 그저 잉여력이 쩔어서 들어오고 싶어도 괜찮아요. 그 잉여력을 으로 쓰고 싶다면요.


20143월 동국교지 수습위원 모집 공고문 내용 발췌


쓰고 싶은 글을 쓰자고 외치며 사람들을 모았고, 어떤 목적으로 들어오든 개개인 자체가 한 학기 동안 함께 어우러져서 한 권의 교지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앓는 소리를 내는 청년담론이 아직 신선하게 느껴지던 대학교 1, 2학년 때에도, 신자유주의 체제에 몰려 생존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불행한 청년세대를 지칭하기 위한 용어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공고에 쓴 잉여도 그중 하나였다. 최태섭의 잉여사회[각주:3]를 읽고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각주:4]을 기웃거리던 시절이었다.[각주:5]


자소서에 쓸 스펙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학교로부터 출판비용은 물론이고 장학금도 받지 못하는 학생 독립언론이었기에 동국교지는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을 선택해왔다. 불과 몇 년 전에 사람이 없어 폐간될 위기를 겪은 적 있었기에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아무 보상 없이, 좋아서 할 수 있는 정도에 머무르자 싶었고 대의를 위해 희생할 사람도, 책임지지 못한다면 희생시킬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동국교지는 막 30줄에 들어서려고 하는 교내 유일의 학생 독립언론기구이기도 했다. 편집장이 된 나는 교내외 담론이 있다면 싣고, 동국대를 비롯한 대학가의 소식을 전하고, 학교와 학생회를 감시하는 학내 언론기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따라가기 벅찼었다고, 이제야 고백한다. 스스로부터도 단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과 잡지의 방향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윗대 선배들은 그깟 교지 안 나와도 된다, 너희가 즐겁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일렀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어느 새부터인가 약해져버린 학내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싶었다.


그렇게 모은 수습위원들의 글쓰기 실력은 차이가 컸고, 교지를 읽어본 적 없거나 글을 써본 적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같은 취미를 공유한 학생들이 모이는 동아리에서처럼 사람을 만나고 싶어 온 친구들이 많았다. 교지 내부에는 수습위원들에게 저널리즘, 기사작성과 콘텐츠 기획을 가르쳐줄 능력 있는 선배나 잘 짜인 교육체계가 없었다. 회의하는 동안에는 뭐라도 시켜 먹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편집위원들의 회비를 걷었다. 학번이 훌쩍 높은 선배들과 일 년에 두 번씩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말씀드렸더니 모금을 해주셔서 운영비를 댈 수 있었다. 광고대행회사는 광고비를 몇 달씩 늦게 주기 일쑤여서 디자인회사(발행까지 담당했다)와 광고대행회사 사이에서 끙끙거려야 했다. 장학금에 미국 연수까지 보내주는 다른 학내 언론 기구와 동국교지를 비교하며 불만을 터트리는 친구가 있으면, 마치 내 잘못인 것인 마냥 움츠러들었다. 비판에는 욕이 날아들었다. 내 생일날 한 단과대 학생회장이 흥분했는지 맞춤법을 틀려가며 욕이 섞인 문자를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전화를 주시거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더니 그 이후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한 학기와 이어진 방학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낡은 학생회관의 1층 교지편집실에서는 긴 회색 책상을 둘러싸고 회의가 열렸다.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는데 왜 시간과 돈을 바쳐가며 했는지, 우리가 만드는 이 교지가 왜 굳이 학내 언론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했는지에 대한 답을 하라면 명확한 것은 없다. 그냥 좋아서 했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전통과 의무감, 당위는 그다음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집장인 나에게는 교지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질문이 던져 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글은 교지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지점에서의 답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대학언론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대학 언론이 기성 언론이나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SNS와 달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대학언론의 시대적 역할은 무엇인가?



3.


그것을 말하기 위해 20149, 두 번째 교지를 만드는 중에 동국교지의 이름으로 대자보를 붙였다. 동국교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학 내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수행할 가장 좋은 매체는 글이기에, 학내언론이야말로 공론장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내 언론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동국대 언론 간담회를 열고 범 동국대 언론 연대체를 만들려고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함께 하려고 하는 다른 독립 언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술이나 먹자고 하거나, 처음부터 단칼에 거절하는 곳도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각자 자기 언론 매체에 대한 알량한 자존심만이 있었지 대학 언론의 역할이나 위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없었다.


동국대학교 교지는 학교 건물 입구의 가판대에 배치되어 무인 배포되는데, 주 독자층은 동국대학교 학생이다. 당시 나는 교지의 경쟁자가 교내의 학보 및 독립 잡지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동국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이하 대나무숲)[각주:6]의 기세를 넘볼 학내 언론은 없어 보인다.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인 페이스북에서, 대나무숲은 익명의 제보자와 관리자로 운영되는 공론장이다. 대나무숲이 정식 언론기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요즘 시대에 학우들의 의견을 모으고 전파하는데 가장 적합한 매체가 아닌가. 투고 글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 학기 주기의 출판물을 존재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동국 교지는 기록의 역할에 특화된 매체다.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페이스북 보도에 힘을 싣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고, 그것을 2017년의 교지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내 문제들이 소비되고 논의되는 주된 공간이 된 페이스북 자체는 현실의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적 소통 채널이기에, 학생들이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단순히 개인적인 삶의 불평과 불만으로만 사고하고 소비하는 경향에 일조하고 만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문제의식이 희박한 사회에서, 대학교의 주권을 가지는 학생으로서의 주인의식이 얼마나 생성될 수 있고, 그리고 생성되어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윤리와 규범, 가치와 정의를 대학과 사회 문제와 연결해 논하는 대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교내 언론, 특히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짧지 않은 맥락을 지닌 책을 펴내는 교지편집위원회는 그런 학생들을 기르는 현장의 공간이자, 그 지점들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줄 수 있는 담론의 장이 될 수 있다. 동국대학교의 종단개입 사태와 이에 저항하고자 몇 년째 분투하는 구성원들에 대해, 시간이 얼마나 흐르더라도 논의하고 정리하고 기록할 힘은 분명 교지만이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이들은 한 학기 한 권 출판에도 휘청거린다. 대학언론은 기성 언론과 분명 다르다. 그러나 어떻게 다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그 대학의 학생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대학가의 이슈를 주로 다룬다는 형식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의 대학, 대학 내에서의 언론이라는 관계에 따르는 역할과 위치를 고찰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때의 교지는 학생 운동을 위한 담론을 수입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국교지 편집실 한쪽의 벽을 다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학생들에게 빌려주곤 했다던 인문학사회과학 서적들이 빼곡히 차 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은 더 이상 이러한 담론들이 필요한 운동의 현장이 아니다. 내가 교지편집위에 몸담고 있을 때 서울대학교 교지 관악의 폐간호를 받았으니 당시 다른 교지들의 상황 역시 동국교지와 다른 바 없었다고 보이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와 대학 본부와의 공간 배정 문제는 최근에 일단락되었고, 교지 연합체는 뚜렷한 조직체계 없이 페이스북 그룹으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 언론이 박근혜 국정농단에 낸 의견서와 기자회견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고, 대학 학보 연합이 취재할 수 있었던 대선 후보는 심상정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교지를 비롯한 대학 언론이 생존에 실패한 것인가? 라는 질문 대신, 이는 대학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4.


사회현실과 척을 두고 대립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대학이 과연 지금 존재하는가? 사회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와 무기로서의 학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학문은 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가? (실상 그것들은 대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의 주인은 어디에 있나? 조용하고 성실히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가는 대다수 학생들 외에도 지금의 학생운동에서 당장의 싸움 너머에 새로운 대학과 사회상에 대한 지향점과 상상력을 가진 것이 얼마나 있는지, 대학 내부에 페미니즘과 퀴어 이외의 주제로 세미나나 행사가 얼마나 열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절망적이다. 교지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 내부에서의 사유의 실종과 파편화된 학생 사회 내 정치적 주체임을 자각하지 못한 개인들의 사이에서 허물어져 가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첫 번째 교지의 머리말에 적었듯,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가 여전히 눈감고 귀막지 않으면 비명이 들려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본부 역시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기업의 논리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 머리말에 나는 이 시대의 교지를 프리모 레비에 빗대어 썼다.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겪은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덕분이었다고. 꽤 비장한 결심이었다. 그러나 6개월 뒤 발간한 두 번째 교지의 머리말에는 그런 결심과 노력에 되돌아오는 비난들이 힘겹고 무거웠다고 썼다. 그래도 우리의 고발이 동국교지의 막다른 길이 아니라, 독자들의 더 깊은 소통과 연대로 이어지길바랐다. 두 번째 교지의 제호는 이상과 현실 사이였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는 지금도 살아있다.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바로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필자 소개]


이재임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 준비 중.

2014년 동국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맡아 두 권의 교지를 펴낸 바 있다.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singleline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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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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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한 주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1. 1981년 학도호국단 산하 문예반에서 매년 겨울방학에 모여 교지를 내는 임시기구였다가 1986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상설 기구로 변경, 1988년 교지편집위원회와 총학생회, 학교 간 삼자 합의로 학생회비와 별도로 교지대를 걷으면서 정식 언론기구가 되었다. 그러나 교지 배포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는 2007년 1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교지대 항목을 삭제했고,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교지편집위를 학내 언론사와 자치기구로 인정하지 않으며 언론사 통합과정에서도 제외되었다고 통보했다. 이후 광고비로 출판비를 충당하고, 교지 선배들의 모금과 편집위원들의 회비로 운영비를 대고 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노란 책을 들고 편집실을 찾은 사람들”, 『東國』 72집, 2015.03, p.93. [본문으로]
  2. 동국대학교 대학 미디어센터 산하에 소속된 학내 언론사는 <동대신문>, 교육방송국 , 영자신문사 , 동국대학원신문이 있다. 이외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와 학생자치언론 <앞담화>가 현재 활동하고 있다. (2017년 9월 기준) [본문으로]
  3. 2013년 9월 출간. [본문으로]
  4. 2013년 11월 개봉 [본문으로]
  5. 첫 교지 역시 그 고민에서 나온 산물로, ‘노답’이라는 제호 아래 대학의 의미, 아르바이트와 최저임금 1만 원, 우울과 학생 상담센터, 취업 문제를 한데 묶어 다뤘다 [본문으로]
  6. 2013년 12월 서울대를 필두로 대학마다 생기기 시작했다. ‘동국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비롯한 동국대의 대나무숲 부류의 페이지는 2014년 말에 생겼다. 기성 언론들 역시 2014년 말부터 카드뉴스를 앞다투어 제작하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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