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대학연구네트워크, 학생의 새로운 길을 향하다.[각주:1]

 




최민석[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준비위원장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대학과 학생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연구자들의 모임인 대학연구네트워크는 2017년 초, 열세 명의 학생 활동가와 청년 연구자들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핵심적인 목표는 학생의 시각을 반영하여 대학의 미래를 만드는 것으로, 2018년 초 경에 정식으로 발족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으로 국내외 대학 사례 수집을 포함해 대학·고등교육에 대한 기존 문헌을 검토하고 대학과 학생 사회의 역사를 살피며 대학 거버넌스·학생 자치가 원활하게 작동할 방법을 탐색하는 것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운영 및 관련 정책에서 대학을 구성하는 한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은 없었습니다. 등록금 등의 극히 제한적인 이슈가 국가적으로 논의된 바는 있으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포함해 학생의 교육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안건에 관해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청취 된 적도, 그것들이 반영될 통로도 사실상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는 제도의 미발전 못지않게 학생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길러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학생의 싱크탱크, 이것이 대학연구네트워크의 목표입니다.

 

학생 운동의 시신 위에서

 

저는 2010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도 오래 했습니다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직업을 7년째 어디건 서류를 접수할 때 쓰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오면서 저는 또한 운동권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해 미욱하게나마 제가 서 있는 장소부터 바꿔가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의 싸움을 겪고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학생 운동은 쇠퇴는 자명합니다. 제가 입학하던 당시 이미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었으며 이제는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조차 드뭅니다. 경쟁적으로 학생회를 수권하려던 정파들은 무너졌고 나아가 학생 자치 자체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회가 유지되어 오던 대학들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 학생회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학생회 간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습니다만 소위 수도권 주요 대학 총학생회들조차 제대로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2000년대 후반 반값등록금이후 학생 사회에서 더 이상의 전국 단위 의제는 없었을뿐더러 그러한 의제를 만들려는 시도 또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학우들과 일반 여론이 호응할 만한 의제를 발굴하지 못했는지에 대하여 질문은 계속되었지만 깔끔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50%의 투표율조차도 채우지 못해 선거가 연거푸 무산된 것은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회에서는 이제 누구도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그저 산업예비군에 불과하고 여러 취업 관련 정책의 수혜자에 불과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청년 관련 각종 위원회 등을 만들거나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가 청년 정책 관련 제언을 하도록 하는 등의 행정적·정치적 몸짓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조치입니다. 학생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다기보다는 행정이 사회 취약계층으로서의 학생을 돌보는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변화에 무뎠기에,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상실되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구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대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을 정의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대학이라는 현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졌습니다. 이 현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화 이후, 학생 사회를 수권하던 운동 정파들이 학생들의 정치 피로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운동권의 등장으로 인한 복지 공약 경쟁에 지나지 않았고 대학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전략적인 고민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 피로는 커져만 갔고, 마침내 운동이 조직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습니다. 이윽고 지금의 붕괴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호황기가 끝나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급속도로 하락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기로 불리는 지금에 와서는 취업이냐 창업이냐가 대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둘뿐인 선택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각종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을지, 아니면 창업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서 인맥을 쌓고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맬지. 이들 이외의 선택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략이, 그리고 그를 위해 대학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하나의 원인은 바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 사회가 제대로 답하려 한 적이 없었던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며, 고등교육은 중등교육을 마친 자에게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전문성을 부여하는 교육으로 규정됩니다. 한국의 대학은 90년대 말까지 이러한 규정에 기초하여 고도발전에 필요한 사회 엘리트의 수요를 충당하는 장치로 존재해왔습니다. 고도발전기의 종결과 함께 이러한 기능이 자연스레 약화하였음에도 이제껏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대학은 매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기를 계속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학생은 유휴인력 내지는 산업예비군으로 재규정 되었습니다. 학생 사회의 중요성은 약화하였고, 위기설이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과 학생사회는 이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대학이 현장이자 동시에 신분으로 받아들여지던 관습에 머물렀습니다.

 

주어진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안주하자 자연스레 학생 사회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었습니다. 일부 교육권 문제나 등록금 문제, 학내 복지 문제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외에는 사회에 연대하는 기특한 학생이라는 이미지에 충실하였습니다. 대학들이 사회의 변화와 정책의 요동침을 따라 모습을 바꿔 갈 때, 학생들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묻지 않는 사이 대학은 낯설고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대학들은 앞다투어 여러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이 세계 몇 위임을 자랑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학생들은 실적평가를 위해 수치화되어야 하는 항목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거쳐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는 대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한국은 이제 아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의무는 무엇이며,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바로 이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이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어떤 교육이 어떻게 고민되어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끝에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목적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만이 아니라 재구성 또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가 고민하는 학생의 대학을 위한 전략의 토대는 이러한 질문에 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학생·연구자들과 함께 미래로 전진하겠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멸망의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가는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기나긴 모험은 원활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지만, 끝내 우주비행사들은 인류의 미래를 찾아 전진합니다. 대학 사회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영화에서의 우주비행사들과 같이 길을 찾는 이들의 NASA이자 우주선이 되고자 합니다.

 

정식 발족하는 내년에는 대학 관련 국내외에서 발간된 문헌으로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에서부터 각국의 학생 자치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2월에는 일본으로 1년간 연구위원을 파견하여 각지의 대학 연구자를 만나고 학생 활동가를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근대 한국 교육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이니만큼 한국 대학의 미래에의 시사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지의 독립적인 연구자들과 만나 협업할 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해주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그래왔습니다. 그네들이 학생 운동에 참여해왔건 하지 않았건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모두 소중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학생들은 이미 교육 과정에 참가하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고자 지금껏 분투해왔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소리를 다시 낼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를 바꾸어나가겠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대학연구네트워크(준) 준비위원장.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전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산하 학생위원회 연석회의 의장. 전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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