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인터뷰 몽상





박규민





졸업반 K는 협박에 면역이 된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유년기를 거쳐 서로의 변화를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우린 학교가 파하면 습관적으로 음반 가게로 가서는 음악에 대해 온종일 떠들곤 했다. 나는 얼마 뒤 문학에 빠져서 활자와 활자를 연결하는 일에만 골몰했으나 K는 이후로도 계속 다양한 음악을 섭렵, 패션과 미술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다방면의 문화를 체득했다.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하자 그는 나를 이태원으로 불러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K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이태원 거리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인간의 머리털로 구현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빡빡 밀었고 열대 우림에서나 어울릴 법한 반팔 셔츠, 그리고 쇠 장식이 매달린 까만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이 년 만이었나? 오래된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긴 간격을 두고 만난 참이었다. 어떻게 지냈냐, 오랜만이다 하는 통상적인 인사들을 빠르게 나누자마자 그는 좋은 술집을 알고 있다면서 어느 골목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나는 이태원에는 커다랗고 높은 건물에 한 잔에 최소 만 원은 하는 비싼 펍들만 즐비한 줄 알았는데, 그는 자신이 그 동네에서 구른 경력을 증명하듯 뒷골목 구석에서 생맥주를 싼값에 파는 술집을 찾아냈다. 워낙에 복잡한 길목을 수차례 꺾어 들어갔으므로 나는 거길 다시 찾아가진 못할 듯하다. 이 글은 그곳에서 나눈 취중 대화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K가 무슨 협박을 듣고 살았느냐고? 그에 대해 더 상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그는 대학에서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전공했다. K의 대학 생활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시쳇말로 현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와 노래를 좋아해서 어느 노래패에 가입했더니 거긴 알고 보니 민중가요를 부르는 곳이었다. 그가 노래를 퍽 잘하는 걸 보고는 80년대 끝자락에 길거리에서 경찰이랑 백병전을 펼쳤던, 명절마다 무덤을 향해 대장정을 펼치는 한국인들처럼 여전히 대학에 얼굴을 비추는 선배들의 의식화가 시작되었다. K는 도대체 이 인간들이 뭘 경험했길래 이렇게 열을 내나 싶은 궁금증에 열심히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NL이니 PD니 하는 거대한 계보를 그때 알게 되었고, 도대체 왜 한국은 이렇게 살기 힘든지가 궁금해졌다. 그 문제에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이러다가는 국보법으로 잡혀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갖 반국가적인 책과 논문을 읽어댔다. 하지만 K는 어느 순간 자기만의 망상에 빠지는 것 같다는 자각이 들어서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로부터 멀어졌다. 이후 페미니즘에도 탐닉했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즉 혼자 이루어지지 않을 변혁을 상상하는 기분이 씁쓸해서 사상에의 관심을 끊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K의 인생을 걱정해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남 걱정해주는 인간들이 많은데 왜 사회는 이 모양인가 싶을 정도로 풍부한 충고, 대놓고 말하면 꼰대질을 겪은 것이었다. 가령 문과가 취업할 길은 어차피 없으니 학점 따위 챙길 필요 없다는 선배들의 낭만적인 자조라든지 반대로 저렇듯 불만만 많은 놈들이나 안 되지 스펙을 잘 챙기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너도 좀 더 노력해서 살아보라는 질책, 혹은 우리 때만 해도 대자보도 좀 활발하게 붙이고 했는데 니네는 SNS에나 빠져 있으니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고학번 화석들의 힐난 같은 것. K는 그 걱정을 빙자한 협박들에 휘둘린 적도 있으나 결국은 다 쓸모없는 소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학에서의 시간들은 그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으니까.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사실 왜 대학을 와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었거든.” K는 그냥 중산층의 자식으로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대학에 와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 중에서 못나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 대학은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공간이었다. 학생들은 학문을 붙들겠다는 열의는커녕 그냥 대학에 가면 노는 줄 아는 연놈들이 태반이었고, 그러니까 수업 시간이 되면 신입생들은 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게 쓸모가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말은 비약이겠지만, 다양한 아카데미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유튜브로 언어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이 유일한 학문적 창구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K는 현재 서브컬쳐와 관련된 매거진에서 필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는 마지막 학기만 남긴 채 무한정 휴학 상태였고, 타투나 마이너 음악 같은 소수 문화에 대해 글을 쓰노라면 학교를 졸업하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다고 했다.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물론 학위는 받겠지. 그런데?” 나는 K가 지금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혼자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에 감정이 격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묘한 반항심이 일었다. 애당초 이 인터뷰의 주제는어차피 의미가 없어졌으니 본문에도 언급하지 않았지만당신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인가를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K는 대학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줄창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의 면전에서 대학을 변호하고 싶었다. 아주 무의미하고 허무한 공간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책 없이 대학의 쓸모없음만을 주장하는 건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만 해도 총장과 이사진의 비리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누군가는 단식 투쟁을 했고, 어떤 이는 45일간 고공 농성을 치렀다. K의 말대로 이제는 대학이 단지 제도권 교육 경쟁의 승리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 가는 축하 파티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괜한 희생을 치렀다는 건가?

 

K의 웃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웃느냐고 묻자 그는 내 표정이 행사 때마다 학교에 찾아오던 노래패 선배들의 그것과 비슷했다고 대답했다. 가끔 사람들이 대학에 대해 품고 있는 기대가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어마어마해서 놀랄 때가 많다고 K는 또 말했다. 어느 쪽에서는 대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인재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다른 쪽에선 사회를 뒤집어놓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사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애들은 무슨 담론을 만들고 예전처럼 사회에 저항하는 따위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데 많은 이들은 대학이 기능을 못한다느니 어쩌느니 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왜 꼭 대학에서 그런 걸 해야 되냐?” K는 술값을 계산하면서 말했다. 원하는 인터뷰이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이제는 그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진보적 담론이나 사회 저항의 문제만 놓고 본다 해도 굳이 그런 걸 대학에서 실현하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니냐고. 대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이고 또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지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꼭 대학에서만 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나는 약간 취기에 오른 채로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나도 어지간한 꼰대일지도 몰랐다.

 

대학은 그냥 거대한 안방 같은 거야. 다 같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 거지.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거나, 스타트업을 한다거나, 아니면 뭐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입시의 터널을 통과한 인간들이 꼴같잖은 자신감에 취해서 공상을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꼴이지. 아침이 다 지나가버린 시각에 잠에서 깨면 수습할 길 없는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K는 담배를 피워물며 마치 그날의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이태원의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K가 그토록 대학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술을 마시던 중에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냈었고, 임기 중에 학생총회를 소집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불발된 적이 있었다. 무슨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단지 낮잠이나 실컷 자려고 모인 인간들의 집합소. K는 서브컬쳐판에 몸담고 살다가 학교는 가능한 늦게 졸업할 예정이었다. 학교를 비로소 떠났을 때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일 것 같아서 두렵다고.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게으른 오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전부 패배주의자가 되어 있는 현실이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필자 소개]


박규민

1993년생. 서울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영문과 재학.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등단.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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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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