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심기용



 

아마, 우리는 탈대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여러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미래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며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학인입니다."

 

각 대학의 슬로건들은 언제나 듣기 좋다. 대학들이 슬로건처럼 운영되는가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대학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학의 의미는 대학이 사회의 취업관문처럼 기능할 때부터 많은 부분 상실되었다. 대학은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 발전을 이끄는 기관이 아니라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거쳐야 할 길목이 되었다. 별다른 삶의 비전 없이 막연하게 가야 하는 곳. 많은 학생들이 그런 기관에서 졸업하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돈을 내가며 다니고 있다. 의미도 상실되고 빚까지 지는 이 상황에서 탈대학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물론 탈대학을 상상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 탈대학부터가 무엇일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라는 것일까? 대학을 자퇴하라는 얘길까? 아니면 대학의 기능을 대안적인 공동체 형성을 통하여 대체해야 한다는 것일까? 대학 졸업장 없이 잘살아 보자는 것일까? 탈대학이란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 개인들이 천문학적인 자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얻는 것은 막연한 미래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인으로 성장하면서도 그 중 대다수가 사회담론과 괴리되어 있거나 기여하지 못한다. 구조가 비합리적인 비용을 과도하게 발생시키고 있으면서도 이 구조가 아니고서는 다른 사회적인 구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작금의 상황은 참 모순적이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비판이 대학의 폐기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대학의 기능하지 않음, 효용감 없음, 또는 의미 없음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반드시 대학을 폐기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대학이라는 훌륭한 인프라를 다시 전유해야 한다. 이미 구성된 것을 다시 다른 맥락에 배치하는 것을 재전유라고 한다면, 탈대학의 진정한 의미는 대학의 재전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반동적인 폐기는 풍성함보다는 삭막함과 빈곤을 형성할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유하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학문을 요구하는 존재인 한, 대학의 필요성은 유령처럼 이 사회를 배회할 것이다. 대학의 폐기는 어차피 또 다른 대학의 구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인 반달리즘은 유효하다고 보기 힘들다.

 

대안적 상상력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현재의 대학교 기능은 고등학교 수준에서 해소하도록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대한민국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고등학교 기간을 대학교 입시를 위한 3년의 기간으로 설정할 것이 아니라 아예 대학 강의 수준을 조정해서 고등학교를 현재의 대학 과정처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사회적 시간 낭비를 줄이면서도, 현재의 대학들을 대학원의 개념으로 운용해 사회적 리더 양성과 학문 연구를 깊이 있게 진행할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진로선택 과정에서 대학원을 선택하는 것만큼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것이 신중한 일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문제들이 선결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 해결을 막는 장애물은 밖보다는 안에 있다. 두 가지. 대학생들이 돈이 되지 않아서 인문학에 관심이 없다거나 가난하기에 탈정치화 되었다거나 하는 분석은 현재 상황을 낭만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이 두 분석은 역으로 뒤엎어 생각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정치가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된 것인지 말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태만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자. 단순히 대학교를 대학원처럼 만드는 것이 대학 재전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이 담론 생성과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특히 대학생 사회에서 주목받는 소통의 코드는 취업 시장에서의 생존 또는 연애 정도다. 대학 생활을 다루는 웹툰들만 보아도, 그 두 가지만이 작가들이 읽어내는 현실의 대학 코드이다. 그것은 낭만화되거나 비극화되며 대학의 주요한 사회성으로서 인정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어떤 고갈과 갈증을 느끼면서도, 대학 사회가 잘못된 예감으로 이 현상을 호명해왔다는 것이다.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호들갑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중들이 인문학적으로 사유할 여유가 없고, 인문학적 텍스트와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거나, 생산되어도 소비되지 않는 현실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문학이 대중과 유리된 특별한 것이고 특정한 인물들의 글과 말만이 인문학적으로 유효한 것이라는 오만함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인문 분야에 연구지원이 빈약해지거나 인문연구서에 대한 소비가 왕성하지 않은 것은 인문 연구자들의 위기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정은 모두가 비슷한데, 인문학을 경시한다며 불특정 대중을 비난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지적 도피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은 모두가 나름의 수준에서 사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인문 연구자의 것이 아니다. 인문 연구자의 경제적 위기가 곧 인문학 자체의 위기라곤 할 수 없다.

 

대학의 위기를 인문학의 위기라는 분석과 연관 짓는 것은 위험하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극복된다고 대학의 위기가 극복되는 것인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인문학 시장이 확보되는 것이 인문학 위기의 극복인가? 그래서 결국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은 취업시장에서 인문학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허구적 기대감뿐이었다. "구글과 애플이 창의력을 본다고 하니 창의력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창의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유가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그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인문학의 시장성을 어필할 때, 그것은 취업관문으로서의 대학이라는 위치를 더 강고히 만들 뿐이다. 그것은 도리어 현재의 대학 문제를 심화하는 일이다.

 

 

탈정치의 정치



대학인이 인문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나오는 것이 대학인의 탈정치적 성격이다. "저희 총학생회는 학우 분들을 위한 학생회로, 정치적 성격을 띠지 않습니다"는 식의 중립성 주장에서 대표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경향이다. 처음엔 탈정치라는 말을 수용해서 사용했지만, 몇 년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한 후로 나는 이것을 탈정치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주로 이런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영리함에서 나온 정치성일 뿐이다.

 

이런 정치성은 주로 매카시즘을 정치적 방식으로써 차용한다. 동국대학교 2017년도 총학생회장은 지난 9월 대뜸 기자회견을 열어 전 총학생회, 학내 사회주의 정당 활동을 하는 학생들, 기존에 학교 본부에 투쟁하던 학생들, 그리고 한 자치언론을 싸잡아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단단히 연결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학우 분들을 대의하면서 정파적 이해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냐고 몰아붙였다. 재밌는 것은 이것이 총학생회장이 장학금 특혜 의혹이 터진 것에 해명하면서 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나한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불순한 단체가 소유한 언론이다! 라는 주장과 함께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역시나, 나는 순수하다는 것이다. 총학생회장이기 이전에 한 개인임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것을 순결 정치나 순수 정치라고 부른다.

 

또 하나 유형은 총학생회가 모든 갈등을 방관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연대, 학내 갈등 사안, 사회 이슈 등에 대해서 함구한다. 이들이 하는 것은 시설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 축제를 무난히 여는 것, 간식 사업을 진행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경우 총학생회는 대부분 무능한 민원기구가 되어 간다. 이렇게 학생회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갈등을 겪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갈등을 겪어가면서 권력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함구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함구 정치는 때로 유용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반쪽짜리 학생회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는 성장하지 않으며, 학생들이 오히려 정치적 공백만을 심하게 느껴 학생사회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권력 유지 자체가 정치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난 이들의 정치성과 연결망들을 적극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의 정치성은 나름의 사회성을 대학 안에 구축하고 있다. 이 사회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대학의 생존 미학으로서 구성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학생 계층의 성격을 미리 규정하고 비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관일 뿐이다. 수많은 대학 내 사회성들의 재편이 필요하다. 순수 정치, 함구 정치 등의 작동을 알고, 그것이 문제적이라면 사회망 내부에서 고장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동감 있는 현장과의 열렬한 교감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 대학 사회성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차용하고 재전유하면서 착취하는 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현장의 생동감을 통해 욕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대학인의 지도그리기: 현장을 가지는 일



나는 탈대학이 대학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어떤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학은 현장을 다시 찾아야 한다. 현장을 구성하고, 현장에 개입하고, 현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인문학 담론의 활성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다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현장은 대학 밖의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자신이 긴밀히 호흡하는 어떤 배치를 의미한다. 관계망, 공동체, 담론의 지형 등. 학문이 질문하고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것들의 총합이라면, 우리는 좋은 문제의식들을 발전시킬 자극들이 필요하다. 현장이란 그런 자극들의 현장이다. 담론의 지형을 파악하고 지형 안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적절히 위치시키는 일도 역시 현장성을 갖는 일이다. 어떤 현장으로부터 문제의식이 발현될 수도 있으며, 현장의 문제의식을 종합해내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장성이야말로 대학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예를 들어, 위안부에 대해 의미 있는 주장을 하거나 연구를 한다면 위안부와 관련 있는 현장 속에 대학인들이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한다면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질문들을 발전시키고 또 그것으로 기여할 수 있는 현장을 가져야 한다. 즉 어떤 판 속에 대학인이 자신을 위치시켜야 한다. 판에 자극되어야 하며, 새롭게 판의 현상을 포착하고, 개념을 생산하거나 유효한 분석을 판에서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그러한 대학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회망이 되어야 한다.

 

최근의 페미니즘에 대한 열망들이 바로 현장의 발생으로부터 발화되었던 점을 기억해보자. 수년간 여성운동가들의 기여가 있었지만 메갈리아 커뮤니티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의 여성운동은 그 확장성이 남달랐다. 대학가에도 페미니즘이 주요한 담론으로서 수용되었다. 유효하게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담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난파선마냥 홀로 주목받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을 위치시키고 발화하고 행동했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 숨쉬는 이야기,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호기심과 질문들을 현장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이 유통되거나 생산되었다. 담론 생산자로서의 대학인은 그런 배치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유행하고 주류적인, 지금 당장의 현안에 대해서만 대학인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제의 긴박함이나 중요도와 별개로 대학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사유함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인들이 그 문제의식에 맞는 현장을 구성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의식에 생동감을 부여해야 한다. 의례적인 질문들만 반복되고 계승되면 학문은 생동감을 잃고 문제의식은 발전하지 않는다. 현장은 그런 생동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세상을 뻔하게 바라보지 않게 해주는 배치. 그 배치 안에서 대학인은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지금 대학은 질문의 생동성을 잃어버린 사막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대학의 위기는 그 점에서부터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극복의 실마리가 막연한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학인들, 학교의 불통 행정을 비판하고 행동하는 대학인들, 어떻게든 대학과 사회 현안을 연결해 목소리를 내려는 작고 큰 움직임들, 생동감 있는 현장을 살아내는 대학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대학은 대학의 순위, 대학의 시장성, 대학의 국제적 평점에 더 큰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 생동감의 현장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인들의 현장을 지원하는 사회망이 되어주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현장을 되찾을 수 있을 때, 이 현장들과 함께 숨 쉴 수 있을 때 대학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심기용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게이로서 살아가다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 중.

동국대학교 큗 초대 회장.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7대 의장.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공동저자.



<외줄산책>은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생각들을 모아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잡지입니다창간호는 대학을 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탈대학이라는 키워드를 던진 것은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보다는대학의 기능과 위치와 역할을 다시 사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가볍기만 한 글들은 아니지만독자들이 하루 종일 함께 산책하듯 읽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메일 wonderinglee@gmail.com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singlelinewalk



[바로가기]

2017/12/12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대학연구네트워크 연재를 시작하며

2017/12/18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 머리말(이재임)

2017/12/25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실패한 인터뷰 - 몽상(박규민)

2018/01/09 - [[특별연재]외줄산책:탈대학] - <외줄산책: 탈대학>‘이상과 현실 사이’, 그 이후 - - 다시 한 번 더 쓰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생존기 (이재임)




* 이 글은 외줄산책 편집위원회의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해당 글은 <대학연구네트워크(준)>과 더불어 한국대학학회가 발행하는 <대학: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 내부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연재가 한 주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들과 외줄산책 편집위원회 여러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대학연구네트워크, 학생의 새로운 길을 향하다.[각주:1]

 




최민석[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준비위원장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대학과 학생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연구자들의 모임인 대학연구네트워크는 2017년 초, 열세 명의 학생 활동가와 청년 연구자들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핵심적인 목표는 학생의 시각을 반영하여 대학의 미래를 만드는 것으로, 2018년 초 경에 정식으로 발족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으로 국내외 대학 사례 수집을 포함해 대학·고등교육에 대한 기존 문헌을 검토하고 대학과 학생 사회의 역사를 살피며 대학 거버넌스·학생 자치가 원활하게 작동할 방법을 탐색하는 것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운영 및 관련 정책에서 대학을 구성하는 한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은 없었습니다. 등록금 등의 극히 제한적인 이슈가 국가적으로 논의된 바는 있으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포함해 학생의 교육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안건에 관해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청취 된 적도, 그것들이 반영될 통로도 사실상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는 제도의 미발전 못지않게 학생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길러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학생의 싱크탱크, 이것이 대학연구네트워크의 목표입니다.

 

학생 운동의 시신 위에서

 

저는 2010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도 오래 했습니다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직업을 7년째 어디건 서류를 접수할 때 쓰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오면서 저는 또한 운동권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해 미욱하게나마 제가 서 있는 장소부터 바꿔가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의 싸움을 겪고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학생 운동은 쇠퇴는 자명합니다. 제가 입학하던 당시 이미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었으며 이제는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조차 드뭅니다. 경쟁적으로 학생회를 수권하려던 정파들은 무너졌고 나아가 학생 자치 자체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회가 유지되어 오던 대학들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 학생회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학생회 간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습니다만 소위 수도권 주요 대학 총학생회들조차 제대로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2000년대 후반 반값등록금이후 학생 사회에서 더 이상의 전국 단위 의제는 없었을뿐더러 그러한 의제를 만들려는 시도 또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학우들과 일반 여론이 호응할 만한 의제를 발굴하지 못했는지에 대하여 질문은 계속되었지만 깔끔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50%의 투표율조차도 채우지 못해 선거가 연거푸 무산된 것은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회에서는 이제 누구도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그저 산업예비군에 불과하고 여러 취업 관련 정책의 수혜자에 불과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청년 관련 각종 위원회 등을 만들거나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가 청년 정책 관련 제언을 하도록 하는 등의 행정적·정치적 몸짓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조치입니다. 학생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다기보다는 행정이 사회 취약계층으로서의 학생을 돌보는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변화에 무뎠기에,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상실되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구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대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을 정의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대학이라는 현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졌습니다. 이 현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화 이후, 학생 사회를 수권하던 운동 정파들이 학생들의 정치 피로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운동권의 등장으로 인한 복지 공약 경쟁에 지나지 않았고 대학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전략적인 고민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 피로는 커져만 갔고, 마침내 운동이 조직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습니다. 이윽고 지금의 붕괴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호황기가 끝나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급속도로 하락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기로 불리는 지금에 와서는 취업이냐 창업이냐가 대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둘뿐인 선택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각종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을지, 아니면 창업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서 인맥을 쌓고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맬지. 이들 이외의 선택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략이, 그리고 그를 위해 대학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하나의 원인은 바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 사회가 제대로 답하려 한 적이 없었던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며, 고등교육은 중등교육을 마친 자에게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전문성을 부여하는 교육으로 규정됩니다. 한국의 대학은 90년대 말까지 이러한 규정에 기초하여 고도발전에 필요한 사회 엘리트의 수요를 충당하는 장치로 존재해왔습니다. 고도발전기의 종결과 함께 이러한 기능이 자연스레 약화하였음에도 이제껏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대학은 매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기를 계속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학생은 유휴인력 내지는 산업예비군으로 재규정 되었습니다. 학생 사회의 중요성은 약화하였고, 위기설이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과 학생사회는 이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대학이 현장이자 동시에 신분으로 받아들여지던 관습에 머물렀습니다.

 

주어진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안주하자 자연스레 학생 사회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었습니다. 일부 교육권 문제나 등록금 문제, 학내 복지 문제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외에는 사회에 연대하는 기특한 학생이라는 이미지에 충실하였습니다. 대학들이 사회의 변화와 정책의 요동침을 따라 모습을 바꿔 갈 때, 학생들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묻지 않는 사이 대학은 낯설고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대학들은 앞다투어 여러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이 세계 몇 위임을 자랑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학생들은 실적평가를 위해 수치화되어야 하는 항목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거쳐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는 대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한국은 이제 아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의무는 무엇이며,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바로 이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이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어떤 교육이 어떻게 고민되어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끝에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목적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만이 아니라 재구성 또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가 고민하는 학생의 대학을 위한 전략의 토대는 이러한 질문에 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학생·연구자들과 함께 미래로 전진하겠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멸망의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가는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기나긴 모험은 원활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지만, 끝내 우주비행사들은 인류의 미래를 찾아 전진합니다. 대학 사회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영화에서의 우주비행사들과 같이 길을 찾는 이들의 NASA이자 우주선이 되고자 합니다.

 

정식 발족하는 내년에는 대학 관련 국내외에서 발간된 문헌으로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에서부터 각국의 학생 자치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2월에는 일본으로 1년간 연구위원을 파견하여 각지의 대학 연구자를 만나고 학생 활동가를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근대 한국 교육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이니만큼 한국 대학의 미래에의 시사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지의 독립적인 연구자들과 만나 협업할 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해주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그래왔습니다. 그네들이 학생 운동에 참여해왔건 하지 않았건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모두 소중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학생들은 이미 교육 과정에 참가하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고자 지금껏 분투해왔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소리를 다시 낼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를 바꾸어나가겠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대학연구네트워크(준) 준비위원장.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전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산하 학생위원회 연석회의 의장. 전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본문으로]

*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학생 자치의 노력과 한계[각주:1]

학생회 활동에 대한 한 보고



김한빛찬[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



학생 자치를 통한 대학 자율성 수호대학의 학생회칙 전문에 자주 나오는 문구다. 멋진 말이지만 현재 우리의 대학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강릉과 원주에 자리 잡고 있는 강릉원주대학교는 학생 자치부터 쉽지 않았다. 작년, 2016년도 강릉원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은 공금횡령 문제로 탄핵되었다. 그는 학생공청회에서 공금횡령을 관습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변호해 많은 학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총학생회가 공금횡령을 관습처럼 생각하며 부정을 일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우리 대학교 학생 자치의 현실이었다

 

사실 대학의 문제는 학생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OECD평균과 정반대인 국립대학의 비율과 고등교육비의 과도한 민간부담률, 무분별한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같은 국가 대학정책의 문제부터 대학본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과 총장선출제도, 실적 위주 학과에 편향된 예산지원과 같은 개별대학의 문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향한 교수의 갑질 문제, 수시로 일어나는 성범죄, 선후배간의 위계적 군사문화 등 일상 문제까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있다

 

대학의 문제가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일단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총학생회라는 학생자치기구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나는 1년 전 강릉원주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하면서공금횡령을 관습이라고 여기는 폐단만은 꼭 끊어 내겠다고 생각했다. 그 적폐는 뿌리가 깊어 근절하기가 쉬울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분노를 잘 조직해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들에서 재정 투명성을 높이고 민주 절차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아직 학생회의 역할과 목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총학생회장 당선 후 참여연대에서 주최한 알록달록 등록금캠프에 참가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 곳에서 나는 전국의 여러 국립, 사립대학 대표자들과 대학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고 학생회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 후 동료 학생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학생 자치와 대학 민주화를 위해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에 소개하는 활동들은 성공의 미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실패의 자학도 아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다. 이 보고는 강원도라는 지역 특징 또는 지방 국립대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겠지만 대학생의 관점에서 본 대학의 비민주적 현실과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총학생회를 대표해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캠퍼스 간 학생회 분리였다. 우리 학교는 캠퍼스가 2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총학생회는 하나다. 두 캠퍼스는 자가용으로 약 2시간 정도의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나의 캠퍼스처럼 운영되고 있기에 교류와 협력이 쉽지 않다. 또한 양 캠퍼스 간의 인원 비율이 3 :1(강릉:원주)이기에 의견 피력부터 의사결정 및 선거에 이르기까지 인원이 적은 쪽이 상당히 불리했다. 따라서 학생회를 캠퍼스에 따라 둘로 분리하자는 여론이 높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학생회칙 에서 해당 내용의 개정이 필요했다. , 학생회 분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학생회칙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바로 이 학생회칙 개정 과정에서 나는 학생회의 근본 문제들에 직면했고 학생자치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총학생회장의 권한으로 학생회칙 개정안을 발의할 수도 있었지만 개정 과정에서 여러 단위의 대표들과 함께 준비를 하면 더 많은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각 자치기구별 대표 1인으로 학생회칙 개정 TF팀원을 모집했다. 15인의 인원으로 3월 초부터 매주 1회 회의를 진행했고 10여개의 국립대학교 학생회칙을 비교, 분석하며 개정안을 만들었다. 1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회칙 개정안이 완성되었고 개정을 담당하는 자치 기구에서 발의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해당자치기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제출된 개정안은 2학기가 시작하고도 처리되지 못했다. 그 개정안은 10월 중순에야 비로소 임시총회에 상정될 수 있었지만 임시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대다수의 팀원은 우리학교 학생회칙이 세부적으로는 미비한 부분이 너무 많으며,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도많고, 특히 학생회칙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대학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학생회칙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교수들로 이루어진 학생지도상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만했다. 우리가 비교한 10여개의 국립대 학생회칙 중 학생회칙 개정에 대학본부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학생회칙 개정 TF팀 활동을 하며, 학생회칙은 우리학교 모든 학생자치의 근간이며 여러 문제들 중 가장 빠른 시일에 해결해야만 학생자치가 자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칙이 개정되지 못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임시총회 정족수 미달이지만 근본 문제는 학생자치의 붕괴에 있다. 대의원회를 구성하는 대의원은 각 학과의 학년별 과대표로 구성되어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학과에서 과대표가 대의원으로서 업무와 권한이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학과에서 학생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학과 학생회의 붕괴는 구성원들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대학본부도 문제의 한 근원이다. 대학당국은 학과 학생회를 학생사회의 자치기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학과 학생회비를 징수하는 것도 여러 방식으로 막고 있다. 그 동안 학생회 대표자들의 공금 횡령 등의 문제가 불거져 왔기에 대학당국이 우려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이 대학본부가 학과 학생회를 인정하지 않는 식이면 곤란하다. 성인인 대학생들을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대학 공동체의 여러 주체들은 학과 학생회의 자치 활동을 적극 인정하고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논의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토론하고 비판해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학본부로부터 학생자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다. 20171학기 초 우리 대학의 학사운영과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학사운영과가 신입생 수강신청을 책임졌는데 담당자의 부주의로 상당 시간의 수강신청 지연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피해가 발생했고 불만이 높았다. 이에 총학생회에서는 대학본분의 담당 부서에 문제 파악, 책임자의 공개 사과와 담당자 징계 및 학생피해보상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 부서는 수강신청 시스템 담당자의 실수를 시스템의 오류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총학생회에서 요구한 것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이 모든 것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서면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공문이오가는 상황에서 대학본부는 총학생회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그들은 모든 논의 과정을 학생지원과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했고 그래야만 총학생회 공문을 공식 문서로 인정한다고 횡포를 부렸다. 우리는 대학본부가 학생회를 학생지원과의 통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우 분노했다. 하지만 당시 총학생회는 요구 사항들을 관철하기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히 불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총학생회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총학생회는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고 각 단과대학과 여러 학과 학생회들이 연명을 통해 지지를 표명했다. 그 끝에 학사운영과는 학교 홈페이지에 교무처장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시했고 보상을 제외한 요구사항들을 실행했다.

 

언뜻 보면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 대학의 학생자치와 대학행정의 근본 문제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우리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심리적 압박을 받았고 시간적 비용을 들였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 대학본부 직원의 명백한 행정 오류를 들어 사과를 요구했는데, 그 책임자의 사과문 한 장 받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총학생회 차원에서는 그 문제 해결 과정에서 대학본부의 담당 부서와 공문을 직접 주고 받지도 못했다. 대학 당국이 총학생회를 대학공동체의 한 주체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학생사회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학생사회 인권의식 강화를 위한 노력이다. 최근 몇 년간 전국의 학생사회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의식 향상을 위해 여러 노력들을 펼쳤다. 대학본부 차원에서 노력하는 곳도 있었고 학생사회 자체적으로 노력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그 동안 양쪽 모두 어떤 노력도 없었다.그래서 우리는 총학생회 차원에서 1학기 초 전체 학생 대표자(자치기구와 단과대학 학생회 임원진과 학과 학생회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인권과 성평등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다. 250여명이 학생대표들이 교육에 참석했고 참여자들의 강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강의 후 우리 총학생회는 또 다른 인권 주제 행사를 논의하고 계획했다. 하지만 학기 초 담당 부서의 내부 사정으로 담당자들이 학생회를 사퇴한 뒤 대체할 인원이 없어 행사들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학생인권복지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학생인권복지위원회의 활동은 주로 복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인권은 무시되었다. 초기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도 결국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총학생회 내에서 인권의제를 끌고 갈 책임자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총학생회는 대학구성원들과 학생사회에 다양하게 인권의

제를 던지고 관심을 제고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총학생회를 구성하면 꼭 인권의제를 이끌어갈 책임 인원들을 집행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기숙사 생활의 개혁을 위한 노력이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각 생활관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평균적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의 통금시간이 있고 매주 2회의 점호가 있다. 게다가 기숙사 행정 당국은 관생들에게 사전 공지 없이 방 안까지 검열하는 불시 점호를 진행하고 있다. 1학기 초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이 총학생회에 관생수칙을 검토해 줄 것

을 요청했고, 총학생회는 관생자치회 쪽으로 해당 문의를 이관했다. 하지만 관생자치회는 문의한 학우에게 소극적인 답변을 주었고, 그 학생은 다시 총학생회 쪽으로 연락을 해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관생자치회의 답변이 비합리적이고 관생자치회가 관생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총학생회는 중재에 나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관생자치회는 대화를 사실상 거부했다. 수차례의 요청 끝에 1학기 동안 단 한 번의 만남만 성사되었다. 총학생회는 관생자치회가 대화를 거부했을 때부터 중앙운영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기숙사 생활 통제 문제에 관심이 있는 관생들을 모아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자발적인 모임을 통한 기숙사 개혁 시도는 아직도 진행 증이다. 사실 기숙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은 생활관장에게 있다. 생활관장은 총장이 교수 중에 임명하게 되어있는데, 학생들이 연대하여 생활관장 또는 총장을 압박하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우리 대학의 관생자치회는 생활관 행정실로부터 근로형태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관생자치회가 생활관 행정실의 결정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 관생자치회와 총학생회가 의견을 같이 하기가 힘들다. 기숙사 생활에 대한 과도한 통제로 학생들의 인권에 침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생들 사이에 균열과 갈등이 발생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기숙사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관생자치회와 학생회가 대립하는 양상이 빚어졌다. 학생사회는 관생자치회와 기숙사 행정실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대학 간 연대를 통한 정보 확보 및 전국적인 차원의 대학문 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다. 우리 학교는 비수도권 중에서도 학생사회 기반이 특히 열악한 강원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학생회 운영이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타 대학과의 연대 경험이 없었기에 타 대학에서는 학생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총학생회는 두 곳의 전국 단위 연대체에 가입했다. 하나는 전국 국공립대학들의 학생연대체인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이고, 다른 하나는 19대 대선 기간에 전국의 모든 대학을 참여 대상으로 한 ‘19대 대선 대학생 요구 실현을 위한 전국대학 학생회 네트워크. 후자는 대선이 종료된 후 대통령과의 대화 추진위원회를 거쳐 전국대학학생네트워크 준비위원회까지 자리 잡았지만 그 즈음 우리 학교 중앙운영위원회로부터 타 대학과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대외 활동 대상은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 하나로 줄이고 내실을 다지는데 힘쓰라는 권고를 받아 그 연대체에서는 결국 빠졌다. 처음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곧 대학 간 연대로 해결할 수 있는 대학문제들이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선 네트워크와 국공련 차원에서 대선 시기 후보들에게 정책제안서를 보냈다.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우리가 주장한 정책이 일부 포함되었다. 또한 국공련은 국립대에도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하기 위하여 전국공무원노조와 함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올해 전국단위 연대체들의 성과가 좀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일단 정기적인 회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온라인 회의를 통해 일부 보완할 수 있겠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회의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올해도 정족수 미달로 정기회의 성원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또한 연속성이 너무 떨어진다. 대부분 학생회의 임기는 1년이기에 다음 해에도 연대 활동을 이어가려면 차기 학생회에게 계속해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요청이 없더라도 차기 학생회가 스스로 참여할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차기 학생회와 전임 학생회의 기본 생각이나 활동 방향이 같은 경우보다는 다른 경우가 더 많다. 아울러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도 여느 선거들과 다를 것 없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무수한 변수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학교의 학생회칙과 기타 여러 규정들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개정안을 다듬고 개정 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만 학기가 끝나는 즈음 과연 학생 총회가 제대로 성사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사회의 근간이 되는 회칙 개정을 계속 준비하고 의견을 모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총학생회와 대학본부와의 관계는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서 있기보다는 상하 관계와 유사했다. 학과 학생회부터 총학생회까지 학생자치 기구에 대한 학우들의 신뢰도가 낮으며 운영에 관한 정보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생사회는 자치활동에 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학생자치기구들도 활동의 기본 방향과 본질에 대해 고민을 계속해야 하며 구성원들도 관심을 이어가야 한다. 대표자를 비롯한 집행부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당국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 비록 우리 대학 학생회는 지난 1년 동안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강릉 지역 학생회의 오랜 적폐를 극복하고 학생자치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많은 장애와 한계가 있었지만 대학민주화와 관련한 작은 성취도 없지 않았다. 우리 학생공동체는 학생자치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학생회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강릉원주대 전 총학생회장. 사학과 4학년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