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대학연구네트워크, 학생의 새로운 길을 향하다.[각주:1]

 




최민석[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준비위원장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대학과 학생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연구자들의 모임인 대학연구네트워크는 2017년 초, 열세 명의 학생 활동가와 청년 연구자들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핵심적인 목표는 학생의 시각을 반영하여 대학의 미래를 만드는 것으로, 2018년 초 경에 정식으로 발족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으로 국내외 대학 사례 수집을 포함해 대학·고등교육에 대한 기존 문헌을 검토하고 대학과 학생 사회의 역사를 살피며 대학 거버넌스·학생 자치가 원활하게 작동할 방법을 탐색하는 것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운영 및 관련 정책에서 대학을 구성하는 한 주체인 학생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은 없었습니다. 등록금 등의 극히 제한적인 이슈가 국가적으로 논의된 바는 있으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포함해 학생의 교육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안건에 관해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청취 된 적도, 그것들이 반영될 통로도 사실상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는 제도의 미발전 못지않게 학생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길러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학생의 싱크탱크, 이것이 대학연구네트워크의 목표입니다.

 

학생 운동의 시신 위에서

 

저는 2010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휴학도 오래 했습니다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직업을 7년째 어디건 서류를 접수할 때 쓰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오면서 저는 또한 운동권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해 미욱하게나마 제가 서 있는 장소부터 바꿔가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의 싸움을 겪고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학생 운동은 쇠퇴는 자명합니다. 제가 입학하던 당시 이미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었으며 이제는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조차 드뭅니다. 경쟁적으로 학생회를 수권하려던 정파들은 무너졌고 나아가 학생 자치 자체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회가 유지되어 오던 대학들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 학생회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학생회 간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습니다만 소위 수도권 주요 대학 총학생회들조차 제대로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2000년대 후반 반값등록금이후 학생 사회에서 더 이상의 전국 단위 의제는 없었을뿐더러 그러한 의제를 만들려는 시도 또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학우들과 일반 여론이 호응할 만한 의제를 발굴하지 못했는지에 대하여 질문은 계속되었지만 깔끔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50%의 투표율조차도 채우지 못해 선거가 연거푸 무산된 것은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회에서는 이제 누구도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그저 산업예비군에 불과하고 여러 취업 관련 정책의 수혜자에 불과합니다. 중앙정부에서 청년 관련 각종 위원회 등을 만들거나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가 청년 정책 관련 제언을 하도록 하는 등의 행정적·정치적 몸짓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조치입니다. 학생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구성된다기보다는 행정이 사회 취약계층으로서의 학생을 돌보는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변화에 무뎠기에, 대학생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상실되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의 구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학생의 시각에서 대학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을 정의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대학이라는 현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졌습니다. 이 현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화 이후, 학생 사회를 수권하던 운동 정파들이 학생들의 정치 피로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운동권의 등장으로 인한 복지 공약 경쟁에 지나지 않았고 대학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전략적인 고민이 부재한 가운데 정치 피로는 커져만 갔고, 마침내 운동이 조직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습니다. 이윽고 지금의 붕괴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호황기가 끝나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급속도로 하락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기로 불리는 지금에 와서는 취업이냐 창업이냐가 대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둘뿐인 선택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각종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을지, 아니면 창업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서 인맥을 쌓고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맬지. 이들 이외의 선택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략이, 그리고 그를 위해 대학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하나의 원인은 바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 사회가 제대로 답하려 한 적이 없었던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며, 고등교육은 중등교육을 마친 자에게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전문성을 부여하는 교육으로 규정됩니다. 한국의 대학은 90년대 말까지 이러한 규정에 기초하여 고도발전에 필요한 사회 엘리트의 수요를 충당하는 장치로 존재해왔습니다. 고도발전기의 종결과 함께 이러한 기능이 자연스레 약화하였음에도 이제껏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대학은 매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기를 계속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학생은 유휴인력 내지는 산업예비군으로 재규정 되었습니다. 학생 사회의 중요성은 약화하였고, 위기설이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과 학생사회는 이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대학이 현장이자 동시에 신분으로 받아들여지던 관습에 머물렀습니다.

 

주어진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안주하자 자연스레 학생 사회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었습니다. 일부 교육권 문제나 등록금 문제, 학내 복지 문제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외에는 사회에 연대하는 기특한 학생이라는 이미지에 충실하였습니다. 대학들이 사회의 변화와 정책의 요동침을 따라 모습을 바꿔 갈 때, 학생들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묻지 않는 사이 대학은 낯설고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대학들은 앞다투어 여러 사기업에서 진행하는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자신들이 세계 몇 위임을 자랑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학생들은 실적평가를 위해 수치화되어야 하는 항목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거쳐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는 대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한국은 이제 아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의무는 무엇이며,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바로 이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생의 관점에서 대학이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어떤 교육이 어떻게 고민되어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끝에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목적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교육은 사회의 재생산만이 아니라 재구성 또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가 고민하는 학생의 대학을 위한 전략의 토대는 이러한 질문에 있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학생·연구자들과 함께 미래로 전진하겠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멸망의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가는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기나긴 모험은 원활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지만, 끝내 우주비행사들은 인류의 미래를 찾아 전진합니다. 대학 사회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영화에서의 우주비행사들과 같이 길을 찾는 이들의 NASA이자 우주선이 되고자 합니다.

 

정식 발족하는 내년에는 대학 관련 국내외에서 발간된 문헌으로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에서부터 각국의 학생 자치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2월에는 일본으로 1년간 연구위원을 파견하여 각지의 대학 연구자를 만나고 학생 활동가를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근대 한국 교육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이니만큼 한국 대학의 미래에의 시사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지의 독립적인 연구자들과 만나 협업할 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해주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그래왔습니다. 그네들이 학생 운동에 참여해왔건 하지 않았건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모두 소중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학생들은 이미 교육 과정에 참가하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고자 지금껏 분투해왔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이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소리를 다시 낼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를 바꾸어나가겠습니다. 대학연구네트워크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대학연구네트워크(준) 준비위원장.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전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산하 학생위원회 연석회의 의장. 전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본문으로]

* 2018년 1월에 발행 되는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의 최민석 준비위원장과 김한빛찬 연구위원의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학연구네트워크(준)>는 한국대학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두 연구위원의 글을 대연넷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글의 공개배포를 허락해주시고 게재와 편집에 많은 도움 주신 한국대학학회와 편집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 대학연구네트워크(준) -




학생 자치의 노력과 한계[각주:1]

학생회 활동에 대한 한 보고



김한빛찬[각주:2]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



학생 자치를 통한 대학 자율성 수호대학의 학생회칙 전문에 자주 나오는 문구다. 멋진 말이지만 현재 우리의 대학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강릉과 원주에 자리 잡고 있는 강릉원주대학교는 학생 자치부터 쉽지 않았다. 작년, 2016년도 강릉원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은 공금횡령 문제로 탄핵되었다. 그는 학생공청회에서 공금횡령을 관습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변호해 많은 학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총학생회가 공금횡령을 관습처럼 생각하며 부정을 일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우리 대학교 학생 자치의 현실이었다

 

사실 대학의 문제는 학생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OECD평균과 정반대인 국립대학의 비율과 고등교육비의 과도한 민간부담률, 무분별한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같은 국가 대학정책의 문제부터 대학본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과 총장선출제도, 실적 위주 학과에 편향된 예산지원과 같은 개별대학의 문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향한 교수의 갑질 문제, 수시로 일어나는 성범죄, 선후배간의 위계적 군사문화 등 일상 문제까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있다

 

대학의 문제가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일단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총학생회라는 학생자치기구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나는 1년 전 강릉원주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하면서공금횡령을 관습이라고 여기는 폐단만은 꼭 끊어 내겠다고 생각했다. 그 적폐는 뿌리가 깊어 근절하기가 쉬울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분노를 잘 조직해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들에서 재정 투명성을 높이고 민주 절차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아직 학생회의 역할과 목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총학생회장 당선 후 참여연대에서 주최한 알록달록 등록금캠프에 참가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 곳에서 나는 전국의 여러 국립, 사립대학 대표자들과 대학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고 학생회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 후 동료 학생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학생 자치와 대학 민주화를 위해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에 소개하는 활동들은 성공의 미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실패의 자학도 아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다. 이 보고는 강원도라는 지역 특징 또는 지방 국립대의 특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겠지만 대학생의 관점에서 본 대학의 비민주적 현실과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총학생회를 대표해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캠퍼스 간 학생회 분리였다. 우리 학교는 캠퍼스가 2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총학생회는 하나다. 두 캠퍼스는 자가용으로 약 2시간 정도의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나의 캠퍼스처럼 운영되고 있기에 교류와 협력이 쉽지 않다. 또한 양 캠퍼스 간의 인원 비율이 3 :1(강릉:원주)이기에 의견 피력부터 의사결정 및 선거에 이르기까지 인원이 적은 쪽이 상당히 불리했다. 따라서 학생회를 캠퍼스에 따라 둘로 분리하자는 여론이 높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학생회칙 에서 해당 내용의 개정이 필요했다. , 학생회 분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학생회칙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바로 이 학생회칙 개정 과정에서 나는 학생회의 근본 문제들에 직면했고 학생자치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총학생회장의 권한으로 학생회칙 개정안을 발의할 수도 있었지만 개정 과정에서 여러 단위의 대표들과 함께 준비를 하면 더 많은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각 자치기구별 대표 1인으로 학생회칙 개정 TF팀원을 모집했다. 15인의 인원으로 3월 초부터 매주 1회 회의를 진행했고 10여개의 국립대학교 학생회칙을 비교, 분석하며 개정안을 만들었다. 1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회칙 개정안이 완성되었고 개정을 담당하는 자치 기구에서 발의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해당자치기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제출된 개정안은 2학기가 시작하고도 처리되지 못했다. 그 개정안은 10월 중순에야 비로소 임시총회에 상정될 수 있었지만 임시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대다수의 팀원은 우리학교 학생회칙이 세부적으로는 미비한 부분이 너무 많으며,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도많고, 특히 학생회칙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대학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학생회칙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교수들로 이루어진 학생지도상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만했다. 우리가 비교한 10여개의 국립대 학생회칙 중 학생회칙 개정에 대학본부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학생회칙 개정 TF팀 활동을 하며, 학생회칙은 우리학교 모든 학생자치의 근간이며 여러 문제들 중 가장 빠른 시일에 해결해야만 학생자치가 자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칙이 개정되지 못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임시총회 정족수 미달이지만 근본 문제는 학생자치의 붕괴에 있다. 대의원회를 구성하는 대의원은 각 학과의 학년별 과대표로 구성되어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학과에서 과대표가 대의원으로서 업무와 권한이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학과에서 학생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학과 학생회의 붕괴는 구성원들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대학본부도 문제의 한 근원이다. 대학당국은 학과 학생회를 학생사회의 자치기구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학과 학생회비를 징수하는 것도 여러 방식으로 막고 있다. 그 동안 학생회 대표자들의 공금 횡령 등의 문제가 불거져 왔기에 대학당국이 우려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이 대학본부가 학과 학생회를 인정하지 않는 식이면 곤란하다. 성인인 대학생들을 통제와 규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대학 공동체의 여러 주체들은 학과 학생회의 자치 활동을 적극 인정하고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논의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토론하고 비판해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학본부로부터 학생자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다. 20171학기 초 우리 대학의 학사운영과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학사운영과가 신입생 수강신청을 책임졌는데 담당자의 부주의로 상당 시간의 수강신청 지연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피해가 발생했고 불만이 높았다. 이에 총학생회에서는 대학본분의 담당 부서에 문제 파악, 책임자의 공개 사과와 담당자 징계 및 학생피해보상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 부서는 수강신청 시스템 담당자의 실수를 시스템의 오류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총학생회에서 요구한 것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이 모든 것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서면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공문이오가는 상황에서 대학본부는 총학생회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그들은 모든 논의 과정을 학생지원과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했고 그래야만 총학생회 공문을 공식 문서로 인정한다고 횡포를 부렸다. 우리는 대학본부가 학생회를 학생지원과의 통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우 분노했다. 하지만 당시 총학생회는 요구 사항들을 관철하기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히 불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총학생회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총학생회는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고 각 단과대학과 여러 학과 학생회들이 연명을 통해 지지를 표명했다. 그 끝에 학사운영과는 학교 홈페이지에 교무처장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시했고 보상을 제외한 요구사항들을 실행했다.

 

언뜻 보면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 대학의 학생자치와 대학행정의 근본 문제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우리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심리적 압박을 받았고 시간적 비용을 들였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 대학본부 직원의 명백한 행정 오류를 들어 사과를 요구했는데, 그 책임자의 사과문 한 장 받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총학생회 차원에서는 그 문제 해결 과정에서 대학본부의 담당 부서와 공문을 직접 주고 받지도 못했다. 대학 당국이 총학생회를 대학공동체의 한 주체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학생사회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학생사회 인권의식 강화를 위한 노력이다. 최근 몇 년간 전국의 학생사회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의식 향상을 위해 여러 노력들을 펼쳤다. 대학본부 차원에서 노력하는 곳도 있었고 학생사회 자체적으로 노력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그 동안 양쪽 모두 어떤 노력도 없었다.그래서 우리는 총학생회 차원에서 1학기 초 전체 학생 대표자(자치기구와 단과대학 학생회 임원진과 학과 학생회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인권과 성평등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다. 250여명이 학생대표들이 교육에 참석했고 참여자들의 강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강의 후 우리 총학생회는 또 다른 인권 주제 행사를 논의하고 계획했다. 하지만 학기 초 담당 부서의 내부 사정으로 담당자들이 학생회를 사퇴한 뒤 대체할 인원이 없어 행사들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학생인권복지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학생인권복지위원회의 활동은 주로 복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인권은 무시되었다. 초기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도 결국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총학생회 내에서 인권의제를 끌고 갈 책임자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총학생회는 대학구성원들과 학생사회에 다양하게 인권의

제를 던지고 관심을 제고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총학생회를 구성하면 꼭 인권의제를 이끌어갈 책임 인원들을 집행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기숙사 생활의 개혁을 위한 노력이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각 생활관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평균적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의 통금시간이 있고 매주 2회의 점호가 있다. 게다가 기숙사 행정 당국은 관생들에게 사전 공지 없이 방 안까지 검열하는 불시 점호를 진행하고 있다. 1학기 초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한 학생이 총학생회에 관생수칙을 검토해 줄 것

을 요청했고, 총학생회는 관생자치회 쪽으로 해당 문의를 이관했다. 하지만 관생자치회는 문의한 학우에게 소극적인 답변을 주었고, 그 학생은 다시 총학생회 쪽으로 연락을 해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관생자치회의 답변이 비합리적이고 관생자치회가 관생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총학생회는 중재에 나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관생자치회는 대화를 사실상 거부했다. 수차례의 요청 끝에 1학기 동안 단 한 번의 만남만 성사되었다. 총학생회는 관생자치회가 대화를 거부했을 때부터 중앙운영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기숙사 생활 통제 문제에 관심이 있는 관생들을 모아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자발적인 모임을 통한 기숙사 개혁 시도는 아직도 진행 증이다. 사실 기숙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은 생활관장에게 있다. 생활관장은 총장이 교수 중에 임명하게 되어있는데, 학생들이 연대하여 생활관장 또는 총장을 압박하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우리 대학의 관생자치회는 생활관 행정실로부터 근로형태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관생자치회가 생활관 행정실의 결정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 관생자치회와 총학생회가 의견을 같이 하기가 힘들다. 기숙사 생활에 대한 과도한 통제로 학생들의 인권에 침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학생들 사이에 균열과 갈등이 발생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기숙사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관생자치회와 학생회가 대립하는 양상이 빚어졌다. 학생사회는 관생자치회와 기숙사 행정실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대학 간 연대를 통한 정보 확보 및 전국적인 차원의 대학문 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다. 우리 학교는 비수도권 중에서도 학생사회 기반이 특히 열악한 강원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학생회 운영이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타 대학과의 연대 경험이 없었기에 타 대학에서는 학생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총학생회는 두 곳의 전국 단위 연대체에 가입했다. 하나는 전국 국공립대학들의 학생연대체인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이고, 다른 하나는 19대 대선 기간에 전국의 모든 대학을 참여 대상으로 한 ‘19대 대선 대학생 요구 실현을 위한 전국대학 학생회 네트워크. 후자는 대선이 종료된 후 대통령과의 대화 추진위원회를 거쳐 전국대학학생네트워크 준비위원회까지 자리 잡았지만 그 즈음 우리 학교 중앙운영위원회로부터 타 대학과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대외 활동 대상은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 하나로 줄이고 내실을 다지는데 힘쓰라는 권고를 받아 그 연대체에서는 결국 빠졌다. 처음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곧 대학 간 연대로 해결할 수 있는 대학문제들이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선 네트워크와 국공련 차원에서 대선 시기 후보들에게 정책제안서를 보냈다.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우리가 주장한 정책이 일부 포함되었다. 또한 국공련은 국립대에도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하기 위하여 전국공무원노조와 함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올해 전국단위 연대체들의 성과가 좀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일단 정기적인 회의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온라인 회의를 통해 일부 보완할 수 있겠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회의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올해도 정족수 미달로 정기회의 성원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또한 연속성이 너무 떨어진다. 대부분 학생회의 임기는 1년이기에 다음 해에도 연대 활동을 이어가려면 차기 학생회에게 계속해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요청이 없더라도 차기 학생회가 스스로 참여할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차기 학생회와 전임 학생회의 기본 생각이나 활동 방향이 같은 경우보다는 다른 경우가 더 많다. 아울러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도 여느 선거들과 다를 것 없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무수한 변수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학교의 학생회칙과 기타 여러 규정들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개정안을 다듬고 개정 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만 학기가 끝나는 즈음 과연 학생 총회가 제대로 성사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사회의 근간이 되는 회칙 개정을 계속 준비하고 의견을 모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총학생회와 대학본부와의 관계는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서 있기보다는 상하 관계와 유사했다. 학과 학생회부터 총학생회까지 학생자치 기구에 대한 학우들의 신뢰도가 낮으며 운영에 관한 정보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생사회는 자치활동에 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학생자치기구들도 활동의 기본 방향과 본질에 대해 고민을 계속해야 하며 구성원들도 관심을 이어가야 한다. 대표자를 비롯한 집행부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당국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 비록 우리 대학 학생회는 지난 1년 동안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강릉 지역 학생회의 오랜 적폐를 극복하고 학생자치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많은 장애와 한계가 있었지만 대학민주화와 관련한 작은 성취도 없지 않았다. 우리 학생공동체는 학생자치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학생회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전진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대학학회의 전자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에 수록 된 글로 <대학: 담론과 쟁점>과의 합의하에 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들의 글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에 다라 배포됩니다. 라이센스를 위반한 무단 전재와 공유 등을 하실 경우에는 민형사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한국대학학회, 2018년 1월, <대학: 담론과 쟁점> 통권 5호 수록 [본문으로]
  2. 강릉원주대 전 총학생회장. 사학과 4학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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